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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웅 Nov 16. 2021

그 해 고3 교실은 차가웠네

절대 임직원들을 화나게 하면 안 돼

제가 고3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던 시절, 200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마무리한 한 학년 위 선배들이 머무르던 교실에선 종종 바닥을 훑는 묵직한 냉기가 새어 나오곤 했습니다. 물론 시기가 겨울 초입이었던 만큼 학교 어느 곳을 지나건 찬 기운이 스미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만. 고3 교실 안쪽에서부터 몰아치는 한기는 계절을 감안하더라도 정상적인 수준이 아니었는데요.


이는 선배들이 시린 초겨울 날씨를 무릅쓰고 교실 에어컨을 최저 온도로 가동했던 바람에 벌어졌던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두터운 파카를 감아 두르고선 날씨 탓에 한층 더 싸늘했던 에어컨 바람을 오기로 견뎠는데요. 창 너머로 그 꼴을 구경하던 저희 입장에서야 그저 저게 뭐하는 짓일까 싶을 뿐이었습니다만. 훗날 사연을 듣고 나니 아주 이유 없이 부린 패악질까진 아니라는 생각이 들긴 했습니다.


까닭인즉, 선배들이 한창 수험생이던 시절 학부모들로부터 돈을 걷어 설치했던 에어컨을, 학교 측에선 그들의 고3 여름이 다 지나도록 한 번도 틀어 주질 않았다는 것입니다. 당시 국내 학원가에서 복지를 삭감하는 주된 명분이었던, ‘비용 절약’을 이유로 내세우며 말이죠.


오랜 공사 끝에 교실마다 달린 것은 나름 최신식이던 천장형 에어컨이었습니다만. 학생들 입장에서야 어차피 자린고비네 서까래에 묶인 썩다 만 굴비나 다름없는 데코레이션일 뿐이었죠. 게다가 이렇게 놀리고 있는 에어컨을 대외적으론 ‘학교의 자랑’ 중 하나로 삼아 홍보하니 선배들은 더욱 못마땅했던 것이고요.


/게티이미지뱅크


들려오는 바에 따르면 선배들은 수능 바로 다음날부터 집에서 리모컨을 가져와 에어컨을 마구 틀어댔다 하는데요. 선생님들 입장에서야 달가울 일은 전혀 아니었겠습니다만. 우리나라 풍토에서 수능 끝난 고3을 그 누가 저지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도 그들이 뜻을 함께하며 단체로 움직이는 상황에서 말이죠. 아무튼 주동자 격이던 선배들이 입시를 완전히 마치고 발길을 끊은 뒤에야, 3학년 교실로 쓰던 층에선 비로소 스산한 기운이 흩어지며 자취를 감췄다 합니다.




사람인이 지난 2019년 9월 직장인 201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 50.2%가 재직 중인 직장에 불만이 있다는 답을 내놓았다 합니다. 응답자 전체의 회사 만족도를 점수로 환산한 값도 평균 51점(100점 만점)에 그쳤는데요.


학생들뿐 아니라 어른도 조직에 불만이 쌓이다 보면 누적된 화가 어느 시점에 어떤 형태로 터져 나올지는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무슨 영광을 보겠다고 굳이 난동까지 부리려나 싶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사람 행동이 꼭 이성적이고 상식적인 방향으로만 흐를 것이라 장담하기도 쉽진 않습니다. 득 될 것 하나 없고 오히려 상당한 추위와 불편만 감당해야 할 상황이었는데도 고집스레 에어컨을 틀고서 버텼던 선배들처럼 말이죠.


그러니 서로 얼굴도 붉히지 않고 상호간에 불필요한 손해를 보는 꼴도 피하려면, 조직 차원에서 늘 임직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그들의 불만 해소에 적극적으로 임할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적어도 ‘화난다고 덤벼봐야 자기들도 다치는데 설마 망동을 하겠어’ 정도로 가벼이 생각하며 넘길 일은 아니라는 것이죠. 내가 좀 긁히거나 피를 볼지언정, 미운 상대에게 어떻게든 시린 한 방을 먹일 각오로 달려드는 사람은 의외로 그리 드물지도 않으니까요.



*이 글은 2021년 11월 15일 개인 링크드인에 업로드한 아티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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