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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웅 Nov 22. 2021

같은 거짓말을 매년 하는 사람들

이제 누가 믿어주냐

올해도 수능 출제위원장은 "고교 교육 과정 수준에서 예년 출제 기조를 유지했다"고 말했습니다만. 하지만 실제론 이번 수능은 6차 교육과정 이래 가장 어려웠던 '불수능'이었다는 평이 지배적입니다. 시험이 한창 진행 중이던 때까진 언어는 평이했고 수리와 외국어 영역 정도만이 약간 까다로웠다는 보도도 꽤 나왔지만, 응시를 마친 학생들의 증언이 나오자 대부분은 지난해에 비해 난도가 훨씬 올랐다 평하는 쪽으로 기사 방향을 틀었습니다.


/유튜브 채널 '공부의 신 강성태'


제가 기억하기론 역대 평가원장이나 수능 출제위원장 발언은 거의 매년 비슷했습니다. 수능이 탄생한 이래 "고교 교육 과정 수준에 맞췄다" "가급적 평이한 난도를 유지했다" "수험생 부담을 최소화했다" "작년 수능 난도와 비슷하다" "올해 앞서 치렀던 모의평가와 크게 차이 없다" "초고난도 문항은 없다"는 식의 말을 하지 않았던 때가 있기나 했나 싶습니다.


첫 수능이 1993년째였으니 같은 레퍼토리가 무려 30년 가까이 반복된 셈인데요. 첫 수능 세대의 자녀가 자라 수능을 보고도 남을 정도로 시간이 흘렀건만, 출제위원들이 하는 소리는 딱히 변함이 없었으니 그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게다가 정말 무난했다는 평을 받은 수능은 오히려 드물었고, 실제론 난이도 조절에 실패해 불수능이나 물수능 논란이 터졌던 해가 훨씬 많았는데 말이죠.


/대전시교육청


평가원장이나 수능 출제위원장이 진심으로 문제 수준이 평이했다 믿었기에 매년 같은 발언을 했던 것이라면, 그 자체가 안타까운 희극이 아닐까 싶습니다. 본인들은 정말로 목표를 달성했다 여겼으나 실제론 그들의 낙관에 동감한 이가 거의 없었을뿐더러, 결과조차 오히려 믿지 않은 쪽이 옳았던 것으로 거의 매해 판명이 난 꼴이었으니까요. 그저 되는 순진한 이들만이 헛된 희망을 품다 이내 절망을 맛보는, 그리 좋게 평가하긴 어려운 부작용만 발생했을 뿐, 의도만큼은 좋았다는 말조차 감히  민망할 따름이고요.




학생들조차 거듭되는 빈말은 믿질 않는데, 어른들을 상대로 반복하는 공염불마저 우리 사회 전반에 왜 그리도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경영 상황이 나아지면 고생한 만큼 보상하겠다, 올해 연봉은 동결이지만 내년 연봉 인상엔 그만큼을 반영하겠다, 지금 당장은 비상이라 할 일이 많지만 정상 궤도에 오르면 여유가 생길 것이다, 다음 부서 배치 때엔 이번에 양보해 줬던 것을 꼭 고려하겠다 등등 말이죠.


아무튼 오랜 세월에 걸쳐 남발만 됐을 뿐 지켜진 적은 없는 헛말을 되풀이하면서도, 사원들은 왜 이렇게 경영진에 대한 믿음이 없냐며 하소연하는 기업이나 조직이 실제로도 적지 않은데요. 어른의 사정을 아주 이해 못할 바는 아닙니다만. 그럼에도 지키지 못할 말, 특히나 예전에 장담했음에도 실천 없이 내팽개친 말은 다시 주워섬기지 않는 편이 차라리 장기적으론 유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순간이야 어떻게든 무마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결국에 세월이 흘러 맞이할 결과는 양치기 소년과 딱히 다를 바가 없을 테니까요. 이젠 학부모도 수험생도 학원가에서도 믿어 주질 않는 출제위원장의 '예년 출제 기조 유지' 약속처럼 말이죠.



*이 글은 2021년 11월 19일 개인 링크드인에 업로드한 아티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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