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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웅 Mar 17. 2022

그의 흰 치아가 쌀국수처럼 빛났다

내가 반드시 온다고 했잖아

응우옌 헌터  


웹소설에서 주류로 꼽히는 장르 중 ‘헌터물’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주로 현대 한국을 배경으로 해, 그곳에 모종의 이유로 출현한 몬스터를 사냥하거나 던전을 탐색하는 초인 헌터를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군입니다. 스킬 트리나 스탯(스테이터스), 상태창 등 게임 요소를 차용하는 경우가 많아 ‘레이드(게임에서 공격대를 편성해 몬스터나 던전을 공략하는 것)물’이라 불리기도 하는데요.


헌터물에서 두드러지는 특징 중 하나는 ‘한국인 주인공 먼치킨(비상식적으로 강한 인물)’ 묘사입니다. 독자가 지루하거나 답답할 틈을 주지 않는, 이른바 ‘사이다’ 전개를 유지할 목적으로, 주인공 스펙을 극도로 올려 그가 역경을 겪거나 벽에 부딪히는 상황을 아예 없애는 통에 발생하는 부작용이죠. 필력이나 스토리 구성 능력이 부족한 작가라도 헌터물에서의 주인공 부각만큼은 포기할 수 없기에, 보색대비 효과를 노리고자 조연이나 적들을 말도 안 되게 바보로 그려내는 일도 매우 흔할 정도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불거지는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국뽕’입니다. 불가능에 가까운 문제를 거침없이 해결하는 한국인 헌터를 보며 주변 모두가 감탄하고 찬양하는 전개를 반복하는 이상, 국뽕의 농도가 짙어지는 것은 비껴갈 수 없는 필연적인 귀결이었죠. 하지만 이러한 국산 영웅의 활약은 아무래도 우리 피부에 와 닿는 현실과는 너무나도 괴리가 있었기에, 독자들 입장에선 어쩔 수 없이 위화감과 불쾌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어느 시점부터 이와 같은 ‘국뽕 전개’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점차 곳곳에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응우옌 헌터’는 그즈음 등장한 우화 중 하나의 주인공입니다. 베트남인 헌터가 삼성전자 대주주로서 주주총회 결정을 엎어버린다는 내용이 골자로, 그만큼이나 ‘국뽕 헌터물’이 말도 안 되고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라는 것을 역지사지로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참고로 응우옌은 베트남인 중 38.4%가 속해 있을 정도로 흔한 성씨로, ‘헌터 김씨’ 정도로 여겨 주시면 될 듯합니다. 사실 작중에서 밝혀진 응우옌 헌터의 풀네임은 ‘응우옌 꽝 하이’지만, 그것이 여기에서 중요하진 않겠죠.


/디시인사이드 장르소설 마이너 갤러리


문제는 역지사지 목적으로 써낸 글의 필력이 범상치 않았던 탓에, 도리어 ‘응우옌 헌터’가 일부 네티즌 사이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얻게 됐다는 것입니다. 즉, 한국에서 뭔가 나쁘게 돌아가는 일에 ‘응우옌 헌터’가 홀연히 끼어들어, 이미 한쪽으로 기운 대세를 극적으로 뒤엎는 전개가 또 하나의 클리셰로 굳어지고 말았죠.


그렇다면, 최근에 인터넷에서 ‘응우옌 헌터’가 다시 거론된 계기는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원본 글에서 묘사됐던 ‘삼성전자 주주총회’가 지난 16일에 열렸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번엔 'GOS'(게임 옵티마이징 서비스) 사태와 하락한 주가 등에 대해 회사 측의 입장을 듣고자 ‘개미’들이 몰려들었죠. 자연히 소액주주 입장에선 삼성전자의 결정을 호쾌하게 엎어 버리는, ‘응우옌 헌터’스러운 드라마틱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고조됐고요.


하지만 현실은 무겁고도 냉혹했습니다. 전원이 결집한들 4%에도 미치지 못하는 소액주주 지분은 삼성전자를 뒤엎기엔 너무나도 부족했습니다. ‘응우옌 헌터’는 끝내 오지 않았습니다. 어떤 이는 그러한 상황을 아래와 같은 문장으로 표현했습니다.


‘응우옌 헌터의 표정이 너무 삶은 쌀국수처럼 일그러졌다.’


포켓몬빵  


1999년에 처음 출시돼 세기말의 아이들을 뒤흔들었던, ‘띠부띠부씰’이 든 SCP삼립의 ‘포켓몬빵’이 지난 2월 23일부로 부활했습니다.


그깟 포켓몬 스티커 하나 끼운 빵이 별거냐 싶으실 수도 있겠지만, 이래 봬도 전성기 시절엔 매달 무려 500만개가 팔려나간 초히트 상품이었습니다. 물론 아이들이 노리는 것은 스티커 쪽이었고, 이 때문에 스티커를 샀더니 빵을 덤으로 줬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죠.


당시엔 몇 푼 안되는 용돈을 쪼개 몇 안 되는 빵을 간신히 샀던 아이들이, 이제는 대부분 스스로 돈을 벌어 주체적인 소비를 하는 어엿한 사회인이 됐습니다. 어릴 적 힘겹게 빵을 샀던 아이들의 설움과 한은 군자의 복수만큼이나 무서웠고, 급기야는 오프라인은 물론 홈쇼핑에서까지 포켓몬빵이 모습을 보이는 족족 매진되는 사태로 이어졌습니다.

/SPC삼립


코로나 19 감염자가 연일 늘어나는 상황에서도, 포켓몬빵을 판매하는 편의점 3사(CU‧GS25‧세븐일레븐) 매장에서 사람들이 입고 시간에 맞춰 줄을 서는 ‘오픈런’까지 발생하고 있다 합니다. SPC삼립 관계자는 “SPC삼립 베이커리 신제품 출시 일주일 매출보다 600% 많이 팔리고 있고 품귀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버튜버  


‘버추얼 유튜버’의 준말로, 실제 사람 대신 움직이는 2D 혹은 3D 캐릭터를 내세워 방송을 진행하는 인터넷 방송인을 말합니다.


국내 언론에선 버튜버를 흔히 ‘가상 인간’처럼 설명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버튜버가 전면에 내세우는 캐릭터 뒤엔 반드시 인간이 있습니다. 인형 옷을 입고 인형 탈을 쓴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의복 대신 그래픽을 사용할 뿐이죠.


전설적인 1세대 버튜버 ‘키즈나 아이’./야후 재팬


우리 눈에 보이는 버튜버의 모습은, 모션 캡처 기기를 활용해 사람의 움직임을 수집하고, 이를 실시간 렌더링 기술을 써서 2D 혹은 3D 애니메이션으로 변환해 출력한 것입니다. 심지어 안면의 움직임과 표정까지도 실제 사람의 그것을 따내 구현하는 방식으로 표현합니다.


즉, ‘버튜버는 출연할 인력을 섭외하지 않고도 콘텐츠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언론의 설명은 완전히 틀린 것입니다. 귀엽고 아름다운 버튜버 뒤엔 반드시 누군가가 있습니다. 특히나 소녀 캐릭터를 연기하는 남자들이 많아, 그 쪽 바닥에선 ‘버미육(버추얼 미소녀의 육체를 입은 아저씨들)’이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주제로 다룬 만화까지 있을 정도입니다./영상출판미디어

 

그렇기에 버튜버를 두고 ‘AI다’, ‘사람이 아니다’, ‘법적 문제에서 자유롭다’는 식으로 논하는 이야기는 모두 거짓입니다. 만일 기업 차원에서 버튜버에게 섭외를 하거나 광고를 맡길 일이 있더라도, AI나 가상 인간보다는 ‘인격체’로 간주하고 접근하는 것이 훨씬 옳은 태도라는 것이죠.



*이것은 신규 코너 발굴 차원에서 최근 인터넷 이슈나 트렌드 용어를 몇 개 짚어 정리해, '지금 인터넷에서는' 타이틀을 THE PL:LAB INSIGHT에  업로드한 아티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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