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은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다.

양현준(b.1980~) Adult Child

by 묘연

“아빠. 잘 가~ 그리고 다음 생에는 내 자식으로 태어나. 내가 자식을 낳으면 아빠라 생각하고 지금 못다 한 사랑 다 해줄게.”


이미 시간은 다 되어버렸지만 아쉬움에 잠들어 있는 아빠를 흔들며 울부짖었다. 아빠가 살아 계시는 동안 평소에 내가 당신을 그렇게 사랑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부모님에 대해 생각하면 가슴 한편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올라오거나 몸속 알 수 없는 곳이 저릿저릿한 적은 있었지만 그게 사랑이라고 말하기엔 뭔가 석연치 않았다. 그건 내가 아빠를 너무 사랑해서라기보다 늘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거다.

하지만 그날 대답 없는 아빠 앞에서 울부짖었던 그 말은 진심이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비로소 나의 따듯한 봄날 같았던 시간들은 부모님의 따듯한 입김과 눈빛이 만들어내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여태 내게 주신 모든 것들이 사랑이었음을 깨닫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빠의 따듯한 숨이 갑자기 멈춰버렸을 때 나를 사랑하는 강력한 존재의 불씨가 꺼져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그 사랑은 애초에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기본으로 주어진 옵션이어서 나는 사실 그 사랑이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것 같다. 아빠가 내쉰 숨과 몸의 온기와 따듯한 눈빛이 꺼지고 나서야 그 사랑이 얼마나 진하고 따듯했는지 알게 되었고 그것을 보답하겠다며 마음을 먹었을 땐 그는 이미 사라지고 없는 뒤였다.


시간이 흘러 나는 부모가 되었다. 인생은 설명할 수 없는 우연이 켜켜이 쌓여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사고처럼 한 남자를 만나고 사랑을 했고 아이가 생겼고 열 달 동안 얼굴도 모르는 아이를 단지 내 몸속에 있다는 이유로 나 자신처럼 느끼게 됐고 아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아빠에게 그날 이야기했던 것처럼 최선을 다해 아끼고 사랑했다.

하지만 아이는 부모를 사랑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부모를 선택하지도 않았고 자신의 존재 여부도 선택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태어나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고 안아주는 사람을 의지하고 정을 붙이고 살아갔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부모가 있었고 그들이 낳은 무기력하고 작은 인간임을 알게 되었다. 부모가 준 삶 속에서 새로운 사랑을 꿈꾸고 탐색하며 주어진 시간을 소진할 뿐이었다. 그래서 자식들은 왜 부모를 사랑해야 하는지,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잘 몰랐다. 하지만 그 자식이 자라 부모가 되고 아이를 사랑하기 시작하면서 깨닫게 되었다. 부모님이 나를 태어나게 하기 위해 미친 사랑을 하고 견디고 기다리고 감수하고 인내하면서 지켰던 이유를 말이다

그러다 어느 날 헤어지게 되면 서로의 마음에 스며들어서 보이지 않았던 사랑이 밖으로 터져 나온다. 그제야 자식은 자기가 받은 사랑이 눈에 보인다. 갑작스레 보게 된 엄청난 사랑에 자기가 부모에게 준 쨉도 안 되는 크기의 사랑이 부끄럽고 감당할 수 없어서 말도 안 되게 울고불고 떼를 쓴다. 나 역시 갑작스럽게 아무 준비도 없이 맞이한 아빠의 죽음 앞에서 후회하고 반성하면서 말도 안 되게 나의 자식으로 태어나 달라고 떼를 썼던 것처럼 말이다.

내 마음과 같은 그림을 그린 작가를 발견하게 되었다.

unnamed.jpg Adult Child 130×190cm, Acrylic on Korean paper, 2018 출처:http://www.adult.net

양현준 작가(b.1980~)는 어린 소녀를 그린다.

귀여운 동물을 안고 있는 코흘리개 어린아이. 귀엽고 천진난만하게 보이는 이 소녀의 정체는 바로 작가의 엄마다. 엄마는 코흘리개 어린 소녀가 되어있다. 작가는 그런 엄마에게 장난감을 선물하고 아이스크림을 선물하고 유년 시절 받았던 사랑을 돌려준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는 소녀가 품고 다니는 동물이나 소녀를 위로해줄 수 있는 커다란 동물이 되어 소녀에게 친구가 되어준다.

나는 이 작가가 결혼을 했는지 아이를 낳았는지 부모님이 돌아가셨는지 어쨌는지는 잘 모르지만이 그림을 보는 순간 돌아가신 아빠가 생각났고 남겨진 엄마가 생각났고 그리고 나의 아이들이 떠올랐다. 엄마를 아이로 표현한 발상은 돌아가신 아버지를 흔들며 다음엔 내 아들로 태어나 달라고 소리치던 그 마음과 같은 마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혼자 남은 엄마의 외로운 마음을 달래주고 싶은 나의 마음과 작고 귀여운 나의 아이들의 모습이 합쳐져 나의 인생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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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jiso gallery


그림 속 엄마는 아주 작고 어린 소녀가 되어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고 있다. 어쩌면 이 작품은 치매로 아이가 된 엄마의 모습일지도 모르고 아니면 단순히 상상 속의 엄마의 모습일 수 있겠지만 이 천진난만한 소녀가 작가의 엄마라는 걸 아는 순간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자신의 엄마를 이 그림에 비추어보며 ‘우리 엄마도 이렇게 작고 어린 소녀일 때가 있었지.’하며 엄마의 인생을 떠올리며 가슴 밑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74645246_2312917538810643_2136472712706533005_n.jpg Adult Child (raccoon ll), 2019 https://hayko.tv/p/B44bYgpJmxn?p=B44baCjgBHb


소녀는 내 어머니의 모습일 수도 있고 나중의 내 늙은 모습일 수도 있고 나의 작고 소중한 아이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 코흘리개 소녀에게서 나의 지나온 인생을 돌아보기도 하고 앞으로의 인생을 상상해보기도 한다. 캐릭터를 그린 만화적 요소가 가미된 작품이라 이 캐릭터의 대상이 누구인지 궁금할 수도 있지만 이 그림이 누구를 캐릭터화 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 모습이 엄마의 모습을 그렸다는 사실 만으로 감상자들은 이 캐릭터 앞에서 각자 본인과 부모님의 일생을 읽고 그 속에서 자신도 몰랐던 사랑을 느낀다. 작가가 전하는 것은 분명 사랑이다. 엄마의 일생을 되돌아보는 것도 사랑이고 엄마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는 것도 사랑이고 아이가 된 엄마에게 해주고픈 일들을 그린 그 마음은 숭고한 사랑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작가는 이 작품의 배경을 설명하며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을 바탕으로 그렸다고 했다.

자식은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다. 세상에 부모는 너무 많아서 우린 부모의 사랑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고 어쩌면 너무 당연해서 부족함만 찾아다니며 투정을 부릴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그 사랑을 깨달을 날은 오고 부모를 사랑할 날이 온다. 하지만 그 사랑을 오랫동안 몰라준 죄로 부모의 사랑을 깨닫게 되는 날은 늘 늦는다.아니 어쩌면 그 순간 부모를 더 많이 사랑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죄스럽고 미안한 마음이 커지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버지를 잃은 후 3년 뒤에 거짓말처럼 아빠를 닮은 아들을 낳았다. 그리고 지금 7년 전 그날 아빠에게 약속한 것처럼 최선을 다해 아이를 사랑하고 있다.

아빠가 다시 태어나지 않았다는 걸 안다. 하지만 비록 그 아이가 아빠와는 다른 존재일 지라도 아빠가 내게 준, 그 말 못 할 진한 사랑을 나는 아이에게 고스란히 돌려주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아이는 그런 내 마음을 잘 모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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