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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엄마의 일

된장국 끓이기

by 묘연

냄비에 물을 반쯤 채우고 말라비틀어진 손가락 크기의 멸치 세 마리를 넣고 불을 켠다.

차가운 물과 함께 응축되어 있던 멸치의 아름다운 인생이 물에 녹아 펄펄 끓는다.

세련된 시판 된장 한 숟가락, 그리고 할머니의 향이 나는 시골 된장 한 숟가락, 거기다 요즘 농익은 내 사랑도 한 숟가락 수북이 쌓아 넣는다.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면 준비해둔 지조 있는 배춧잎과 말랑말랑한 감성이 녹이 있는 부드러운 두부, 그리고 대차게 썰린 파와 야무지게 다져진 마늘을 조금 넣는다.

팔팔 끓는 된장 물에 모든 재료들이 신명 나게 끓고 나면 고춧가루를 아무도 모르게 살짝 비벼 넣는데 그러면 된장이 조금 발그스름하게 화색을 띤다.

뜨거운 열기가 더는 견디지 못해 떠나가는 듯 김이 보이는 반질반질 뽀얀 쌀밥을 된장국에 살짝 개어 입김으로 뜨거운 기운은 날려버리고 대신 사랑을 담아 아이 입 속에 넣는다.

“엄마 맛있어.”

그 한마디에 쌀밥에 저장된 농부의 마음과 된장에 녹아진 멸치의 인생이, 된장이 품고 있는 된장을 만든 모두의 마음이, 그리고 여러 사람을 거쳐온 배추, 두부, 그리고 파와 마늘의 삶과 이들을 요리하는 나의 인생이 매우 가치 있게 느껴진다.

그렇게 한 숟갈에 담긴 모두의 마음이 아이의 입속으로 들어가고 '맛있다'는 말로 되돌아 나온다.

아이를 키우는 건 엄마의 마음뿐 아니라 모두의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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