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받기
탕에 뜨거운 물을 틀어 놓는다.
4분의 1 정도의 뜨거운 물이 차면 차가운 물을 틀어 적당한 온도와 물의 양을 맞춰놓는다.
목욕시키는 일은 아이들에게 목욕을 하자고 이야기하면서부터 시작이다.
하던 일을 멈추고 고분고분 말을 듣고 욕실로 직행하는 일은 절대 없으니 말이다. 한참을 씻자고 노래를 부르면 두 녀석 중에 한 명은 욕실로 향한다. 첫째 녀석은 그래도 스스로 옷을 벗고 들어가지만 둘째 녀석은 옷을 입은 채로 막무가내로 향한다.
아이들은 목욕시간을 물놀이 시간쯤으로 여긴다. 탕에 들어가 맘에 드는 장난감들을 물에 풀어 넣는다. 첫째는 무언가를 인지할 때쯤부터 물에 사는 동물들에 관심이 많았다. 고로 바다생물의 피겨도 엄청나게 많다. 고래와 상어의 종류가 그렇게 많은지 엄마가 되고 나서 알았다. 긴 수염 고래, 돌고래, 혹등고래, 상어도 백상아리, 망치상어, 황소 상어, 고블린 상어, 쿠키 커터 상어 등등 모두 나열할 수 없을 만큼 많다. 거기에 불가사리, 해마, 문어, 오징어 등등 여러 마리 친구들이 욕실에 구비되어 있고 그날그날 맘에 드는 친구들을 골라 물속에 집어넣고 헤엄을 치며 논다. 그 모습을 본 둘째도 여지없이 그 놀이에 동참한다. 한참 물에서 노느라 몸이 따듯해지면 둘째 녀석부터 물에서 건져 내, 몸에 비누를 칠하고 머리를 감는다.
둘째 씻기기
미끌미끌한 비누가 재밌고 몽글몽글 거품이 신기한 둘째는 몸에 묻은 거품을 요리조리 만져보고 내 몸에도 발라본다. 거품이 묻은 작디작은 손으로 거대한 엄마 몸을 만져보는 아이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껴안고 서로의 몸을 비빈다. 그러면 아이가 까르르 웃는다. 까르르 웃는 게 좋아서 계속 비벼본다. 작고 몽글몽글 미끌미끌한 아이가 입속에 말랑말랑, 달콤한 젤리처럼 느껴져서 콱 깨물어 주고 싶다.
아이의 눈에 거품이 들어가지 않게 조심히 머리를 감기지만 아이는 물을 머리에 붓는 순간에도 가만히 있는 법이 없다. 그러다 가끔은 눈에 거품이 들어가 한바탕 소동을 피우곤 한다.
첫째 씻기기
다 씻은 아이를 탕에 넣고 첫째 아이를 건져내 내 무릎 앞에 앉힌다. 사실 이 과정은 쉽지가 않다. 아이들에게는 관성의 법칙이 강하게 존재한다. 어떤 일을 할 때 멈추고 다른 일을 해야 할 때 쉽게 전환하지 못한다. 나는 최소 서너 번, 많으면 열 번도 이야기를 해야 하고 가끔은 소리를 지르거나, 협박을 하며 숫자를 세어야 한다. 웬만하면 이러지 않으려고 하지만 이러지 않는다면 우리의 목욕은 새벽이 되어도 끝나지 않을 거다.
그렇게 어렵게 첫째 아이를 물에서 끄집어 내, 꽉 안은 채로 물 몇 바가지 끼얹으면 싫은 소리를 하며 진이 빠져버린 나의 몸과, 애를 태우던 작고 귀여운 아이의 몸 사이에 따듯한 물이 사랑처럼 흘러내리면서 우리의 벽을 허물어 버린다. 요즘 들어 느끼는 거지만 첫째 아이와는 이렇게 목욕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 자식이건 어쨌거나 우린 성이 다른 사람이니까.
첫째 아이 역시 머리를 감기고 몸에 비누 칠을 해서 헹구는 과정을 거치지만 경험치가 높은 이 녀석은 어떻게 하면 눈에 거품이 들어가지 않는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가끔은 혼자 해보려고 한다. 그러면 나는 등은 어떻게 닦아야 좋을지, 머리를 꼼꼼하게 감는 노하우를 가르쳐 준다.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이렇게 알몸으로 안아볼 일이 없다고 생각하니 괜스레 마음이 시려 아이를 껴안고 조금 더 뜨거운 물을 우리 사이에 부어본다.
헹구기, 물기 닦기, 옷 입히기
그렇게 씻는 과정이 끝나면 샤워기로 물을 틀어 빗물 놀이를 한다. 그럴 때면 아이들은 꼭 입을 벌려 물을 맞으며 까르르 웃는다. 아이들이 왜 웃는지 궁금해 따라 해 보았더니 혀가 간질간질했다. 목욕이 끝나면 커다란 타월을 가져와 한 명씩 감싸 안고 밖으로 나가 로션을 발라주고 옷을 입힌다. 이때 둘째 녀석의 기저귀는 빨리 채우는 게 커다란 미션이다. 가끔 아무 데나 실례를 하는 녀석이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도망을 다니는 아이들을 따라다니면서 로션을 발라주고 속옷과 내의 상하의를 입히는 일은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가끔은 추워서 견디지 못하는 아이들이 먼저 다가올 때도 있지만 그런 일은 흔치 않다. 옷을 입지 않으려는 자와 입히려는 자의 치열한 사투가 벌어진다. 이 방 저 방을 뛰어다니며 도망 다니는 아이들 때문에 층간 소음이 신경 쓰이면서도 아이들이 감기에 걸릴까 봐 나 역시 쿵쿵대며 뛰어다닌다. 매트를 깔긴 했지만 그래도 이 소음이 들린다는 걸 알기에... 아이들이 이번 겨울에 감기에 걸리지 않은 것은 아랫집의 무한한 배려 덕분이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머리 말리기
옷을 입히고 나면 차례대로 머리를 말려준다. 드라이기의 바람을 미지근한 바람으로 설정하고 바람의 강하기를 제일 낮게 한 다음 아이들의 머리칼을 흔들어가며 말린다. 물에 젖었던 여린 새싹 같은 머리카락들이 제자리를 찾고 아이들의 목욕의 흔적도 그렇게 사라져 간다.
그렇게 뽀송뽀송하게 마른 아이들은 잠자리에 든다. 하루의 모든 시간이 씻겨나간 것 같은 아이의 깨끗하고 뽀송뽀송한 피부의 냄새를 맡아본다. 분명 우린 같은 하루의 시간을 보냈는데 아이의 시간은 어쩐지 흔적도 없다. 오늘의 할 일을 빠짐없이 해낸 것 같다. 그래서 정리할 것도 반성할 것도 없고 계획을 세울 필요도 없어 보인다. 그렇게 늘 깨끗하고 싱싱하고 새것 같아 보인다.
정리되지 않은 나의 하루와는 다르게 아이들은 이미 과거가 된 오늘을 뒤로하고 단잠에 빠진다. 그런 아이들을 껴안고 있으면 싱싱하고 달콤한 냄새에 빠져 나도 함께 잠이 든다.
그리고 다음 날 일어나서 깨닫게 된다.
나는 아직도 씻지 않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