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2
이제 정말 막달이라 산부인과에 일주일에 한 번씩 간다.
임신과 출산의 영역은 삼신할머니의 관할의 신의 영역인 것인가.
예측불허의 돌발상황이 언제나 펼쳐진다.
그것을 예측하고 만일의 사고를 대비하기 위해 병원에 이토록 열심히 다니는 것이 아닌가.
초음파 기계로 보이지 않는 뱃속의 아이의 모습을 관찰하고 아이의 크기와 임신 주수를 맞추어 보고
피와 소변을 뽑아 내 몸의 이상을 살피고 그것이 정상범위의 수치에 들지 않을 때는
약을 먹든지, 주사를 맞든 지, 음식을 가려먹든지, 운동을 하든지.
임산부는 늘 그 수치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산모가 벗어난 수치에 불안을 느낄 때마다 병원에서는 많은 해결책을 제시한다.
나는 이미 그 숫자에서 많이 벗어난 편이다.
일단 임신적정나이에서 2살이나 많아서 노산으로 들어간 데다 초반 아이의 목투명대가 3.1로 조금 두꺼웠다.
그리고 임신 초기 다른 태아에 비해 자리를 일찍 잡아서 그런지 태아 크기가 90프로가 넘는 수준이었다. 니프티 검사를 했고 다행히 이상소견은 발견하지 못했다.
임신성 당뇨에서 142이라는 수치를 받아 임당 산모가 되어 매일 피를 뽑아 내분비 내과에 숙제 검사하듯이 혈당을 체크해 보냈고 어젠 철분이 10.8로 평균 11에서 0.2 벗어난 수치로 철분주사를 맞았고 막달 혈압이 140에 100이 넘어 며칠 뒤 순환기 내과 검진을 기다리고 있다.
병원에 가지 않았다면 몰랐을까.
임신을 하고 별 이벤트 없이 달려왔다 생각했는데 매주 병원을 갈 때마다 생기는 이벤트에 적잖이 당황스러워진다.
숫자에 가려진 내 마음과 컨디션과 기분은 별로 중요하지 않게만 느껴진다. 이 수치들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아이에 대한 죄책감이 들고 산모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 같아 자책감이 든다.
그리고 이러다 아이가 아프거나 잘못됐을 경우를 생각하면 이 수치를 외면할 수도 없다.
하지만 정확하게 눈에 보이는 이 숫자들의 범위에 들지 못하면 말로 다 할 수 없는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나의 몫. 아이가 태어나면 몇 주, 며칠에 태어났는지 아이의 출산 체중이 얼마였는지, 또 아이가 커갈 때 영유아 검진을 하면서 키와 체중이 전체 몇 퍼센트인지 그놈의 숫자는 평생을 따라다닌다.
한 인간을 창조하고 키워나가는데 이 숫자들이 도대체 뭐란 말인가.
아이의 목투명대가 두꺼워 니프티 검사를 결정하면서 남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만에 하나 아이가 기형아 판정을 받게 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누군가는 쉽게 말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이미 14주-16주나 된 태아를 우리가 어떻게 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에... 더구나 아이를 둘이나 키워본 엄마의 입장으로서 아이가 아프다고 해서 내손으로 아이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는 없는 일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니프티 검사를 하기 전 엄청 망설였다. 하지만 그 검사를 하기로 마음먹은 건 만약 이 아이가 아픈 아이라면 이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한 마음을 준비하고 싶어서였다. 기형아 검사를 통과했다고 해서 아이가 아프지 말란 법은 없다. 이 아이가 어떤 아이건 간에 온전히 나의 자식으로 받아들이고 잘 키워볼 마음을 가지는 것이...
하늘이 내게 준 소명이며 삼신할머니가 주시는 축복의 열매를 누리는 삶이라는 걸 잘 알기에 나의 인생을 걸고 지키고 싶어졌다.
그러므로 더 이상 수치에 연연해하지 말고 건강하게 아이를 잘 지킬 것이다. 앞으로 예정일까지 3주 정도 남은 시간.
어떤 이벤트가 우릴 기다리더라도... 행복하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