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6
비가 그치고 해가 나는 오늘.
오늘은 태어날 아기의 옷과 손수건 그리고 기타 용품들을 세탁했다.
세탁조 청소도 하고 인체에 무해한 비싼 세제도 사고
헹굼을 2번 정도 더 돌리고 빨랫대에 널면서 오늘의 따스한 봄볕이 아이의 옷에 닿아
태어나 이 옷을 입으면 따듯하고 아늑하기를 바랐다.
우리는 평생 옷을 입고 살고 죽을 때도 옷을 입고 죽거늘...
어째서 태어날 때 옷이라는 옵션은 선천적으로 주어지지 않는 걸까.
옷은 물론이거니와 아무 가진 것 없고 혼자 할 수 있는 능력도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채 세상에 나와야 하는 아이의 기본옵션은 너무 가혹할 만큼 박한 것이 아닐까.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연약한 생명체에게 주어지는 옵션이 겨우 엄마인 나란 말인가.
강한 책임감이 생긴다.
이미 앞서 두 번의 출산을 하고, (아직 어리긴 하지만) 혼자서 밥도 먹고 화장실도 갈 수 있는 아이들로 키워봤지만 또 작은아이를 키워야 하는 이 책임감이 왜 이렇게 나를 두렵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내가 정말 아이를 건강하고 힘들지 않게 잘 출산할 수 있을지.
그리고 아이가 불편해 울 때마다 그 메시지를 정확하게 읽어 낼 수 있을지.
나의 고통이 너무 세서 아이를 살피지 못하면 어떡할까.
나에겐 지켜야 할 아이가 이 뱃속의 아이뿐이 아니라는 사실.
그런 생각들이 매일밤 책임감을 넘어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오늘 아이의 옷을 햇볕아래 널면서 이런 두려움이 햇볕에 다 소독이 되기를...
그리고 이 거대한 대 자연이 우리 아이를 지켜주길 바라고 또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