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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묘연 Aug 28. 2023

주제는 자유

삶은 자유

 초등학교 3학년 때 선생님은 시 쓰기를 숙제로 내주셨고 주제는 '자유'였다.

나는 하루 종일 시 쓰기에 대해 생각했지만 어떤 주제로 시를 쓸지 끝내 결정하지 못했고 결정했다 하더라도 한 두 줄 적으면 또 다른 주제로 써야만 잘 쓸 수 있을 것 같아 주제를 바꾸고 또 바꾸고... 그러다 결국 숙제를 하지 못했다.


 다음 날 나는 빈 공책을 들고 시로 가득가득 채워진 친구들의 공책을 살폈는데 유난히 마음에 들어오는 주제가 있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한 친구의 시의 제목은 ‘자유’였는데, 선생님의 의도를 잘못 파악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나처럼 망설이다가 재치 있게 주제를 골랐을지도 모르지만, 그 친구 성격상 전자일 확률이 더 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잘못됐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인 거고, 공책에 지우개질로만 가득 채운 나보다 검은 글씨로 자유에 관한 생각을 꾸역꾸역 마지막 문장까지 완성한 그 친구가 더 멋있어 보였다.


 ‘자유’란 언제나 달콤하고 수많은 가능성 속에 예측할 수 없는 즐거움이 있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동전의 앞 뒷면처럼 그 이면엔 막연함과 막막함이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갯속에서 혼자서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모호하고 외롭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연함과 외로움을 껴안고서라도 자유를 찾아야 한다면, 고르고 망설이는 선택의 시간보다는 그 선택 이후의 시간에 자유의 의미를 실어줘야 하지 않을까?

자유롭게 선택한 결과가 의무와 구속이 섞인, 자유와 거리가 멀어 보이는 결과를 가져오더라도 자유롭지 않은 삶에 대한 동정보다는 

막연함 속에 확신을 가지고 선택한 그 용기와 그것을 끝까지 책임지려는 외로운 책임감에 손뼉을 쳐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 친구처럼 나도 삶의 수많은 선택지에서 ‘엄마’라는 선택지를 골랐거나 아니면 어쩔 줄 모르는 자유로운 삶의 시간을 고민 없이 쓰기 위해 엄마가 된 건지도 모르지.

  어쨌든 지금 내 삶은 그다지 자유롭지 않지만, 그 이전에 분명 자유롭게 내 삶을 선택했고, 그 선택에 따른 삶을 살 뿐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자유는 그저 ‘선택 이전의 상태'를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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