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묘연 Sep 06. 2023

영원의 물고기


가슴 아래서 뭔가 모를 불편함이 올라온다.

“그래.” 이 한마디면 푹신했을 마음이... 모두들 그 단어에 자물쇠를 단 것처럼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나의 목소리는 애초에 투명했고 애꿎은 눈동자만 시끄럽게 굴러다녔다.

그곳을 빠져나와 눈을 감아 바쁘던 눈동자를 멈추었을 때 담배라도 피워야 들숨과 날숨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한 이 마음이 처음엔 손끝에 가스러진 굳은살 정도였는데, 점점 커져서 그것을 떼어내지 않으면 내 존재가 가스러질 것만 같았다. 어떻게든 괜찮아 보려고 커다란 돌덩이를 얇은 입술 위에 올렸는데 참았던 불편함이 뜨거워져 그 돌을 부수고 투명했던 목소리의 멱살을 잡았다.

그러고 나니 무언가가 흘러넘쳐 온몸에 가득 찼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젖은 몸이 무거워져 주저앉았을  때 누군가가 다가와서 마른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뭐가 그렇게 속상해. 너무 네 마음대로 다 하려고 하지 마. 조금 손해 본 듯이 살아.”

수면의 상승으로 조금은 잠잠해진 감정에 작은 돌 하나를 던진다.

하도 많이 웃어서 눈가가 물고기 꼬리처럼 생긴 남자가.

   ‘장난해? 내가 그렇게 하면 사람들은 나를 진짜 바보라고 생각한단 말이야.’

라고 쏘아붙이려는데 물고기 꼬리가 움직인다. 그리고는 작은 샘을 향해 퐁당 뛰어든다.

그리고 마른 목소리로 이어나간다.

“함께하는 곳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크게 내고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욕심껏 하는 거 나쁜 거야. 자기 마음대로 하고 산다는 건 그러기 위해 누군가의 마음을 죽이는 일이니까. 하지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잃지는 말아야지.”

그렇다.

그는 늘 그렇게 살았다.

그는 아무도 들리지 않는 아우성을 목이 쉬도록 쳤고 , 그러면서도 아무도 보지 않는 미소를 늘 간직하고 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마른 목소리와 눈가에 물고기 꼬리를 닮은 주름은 묘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마른 목소리로 젖은 눈가를 닦고  나가 들리지 않는 진심을 전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고, 절망하고 좌절하는 순간에도 그의 물고기를 떠올리며 세상을 누볐다.

그러다가도 그런 나의 모습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지면 괜스레 그에게 화풀이를 하곤 했다.


“남들이 다 바본 줄 알잖아.”

“허허허. 그러라 그래. 너만 아니면 되잖아.”

“엉엉 엉엉 진짜 짜증 나.”

 

세상은 생각보다 어둡고 차가웠고 쉽지 않았다. 그 속에서 발이 시리고, 무섭고, 허기질 때마다 사람들의 웃고 떠드는 소리가 잔인하게 들렸다. 그때마다 그들이 찍어 올리는 아름다운 풍경을 위해 손이 부르트도록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을 생각하고, 그들이 먹고 마시는 예쁜 음식들에 그들이 싸놓는 지독한 똥을 치우는 사람을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세상에 예쁘고 아름다운 것은 없었다.

 내게 아름다운 것은 그저 그의 마른 목소리와  눈가에 생긴 예쁜 꼬리를 가진 물고기뿐이었다. 그 물고기는  세상에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저 쉽게 헤엄을 쳤다. 그리고 그 꼬리가 살랑거릴 때마다 아픈 마음이 어루만져졌다.  가끔은 축 쳐진 모습일 때도 있었지만 내가 한번 들여다볼 때마다 강아지 꼬리처럼 반갑다고 흔들어댔다. 그러면 내 눈가에도 물고기가 한 마리가 헤엄치는 기분이 들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꼬리는 진해져서 이젠 좋지 않을 때도 좋은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나도 그를 따라 그를 닮은  물고기를 키우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물 좀 갈아야겠어. 어항 너무 더러워졌어.”

“내일 갈아야겠다.”

그는 또 그 꼬리를 예쁘게 살랑거리며 내게 말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 그는 커다랗고 무거운 어항에 물고기와 돌을 나누어 담고 물을 빼고 정성껏 깨끗이 어항을 씻었다. 그리고 새로운 물을 절반 정도 받아놓고는 물고기를 옮겨 담지도, 자신이 들어가지도 못한 채 말라 굳어버렸다. 물에 들어가지 못한 그의 아가미는 굳어버려 더 이상 숨을 쉬지 못했고 그렇게 모든 게 사라져 버렸다.

 

어쩌면 그가 가진 예쁜 물고기는 애초에 없었던 것이었는지도 몰랐다. 어쩌면 그 역시 잔인한 세상을 좋은 마음으로 살아가려다 곪아서 썩어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그가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 죽었다고 했다. 회사관계자가 책임을 통감한다며 돈봉투를 들고 찾아왔을 때, 정말 그는 바보같이 살다 바보같이 가버린 등신 같은 인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를 닮은 예쁜 물고기를 키우게 된  나는 그의 마음이 달랐다고 쓰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그보다 조금 더 많이 살아서 그의 생각이 정답이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가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던 날. 세상에 그의 마음을 기억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지 몰랐다.

장례식장이 미어터졌던 그날. 차고 넘치는 국화꽃 사이에서 그의 마음에 희망을 보았고, 그의 진심의 진실을 보았고, 세상 가장 아름다운 물고기 한 마리가 남긴 진한 향기를 느꼈다. 그가 남긴 진심은 너무 아름다워서 도저히 사라질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닌 것 같았다. 더 이상 그의 예쁜 꼬리는 볼 수 없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내 귓가에서 헤엄을 친다.

그리고 세상이 너무 무섭고  억울할 때마다, 너무 속상할 때마다 세상을 원망하는 대신 방 안에 앉아 무릎을 세우고 나를 끌어안으면 어김없이 나에게 다가와 꼬리를 살랑대며 내 마음을 어루만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