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엄마가 된다.
요즘 들어 아이가 방긋방긋 잘 웃어 보인다.
아이를 보면 내 얼굴에 미소가 생기고, 내 미소를 보는 아이는 날 따라 웃는데 그럼 난 또 그 웃음이 너무 예쁘고 행복해 아이를 따라 웃어본다.
그렇게 우리의 웃음은 끝이 없다.
아이는 처음 태어났을 때 지금처럼 웃지 못 했다. 가끔 배냇짓으로 미소를 짓곤 했지만 그것은 웃음이라기 보다 얼굴근육에 경련이 와 웃어 보이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제법 내가 하는 말과 표정과 손짓에 꺄르르 하며 웃는다.
육아 관련 서적에서 아가들은 3개월이 넘어서면 감정이 세분화된다고 쓰여있는걸 본 적이 있다. 책에 쓰여있는 대로라면 아이는 지금 예전엔 몰랐던 웃음이 나오는 감정에 대해서 알기 시작했을 수도 있다.
대부분은 혼자 이유없이 웃기보다 누군가와 감정을 공유하며 웃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걸 사회적 웃음이라고 한다나...
아이는 내 얼굴을 보며 웃는 경우가 많다.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는걸 보니 (물론 내 얼굴이 웃겨서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웃음은 결국 누군가를 따라 하며 배워지는 감정표현일지도 모르겠다.
나무 기둥에서 가지가 자라고 그 가지에서 또 다른 가지가 자라고 자라듯 열심히 넓어지고 높아지고 있는 아이의 마음.
지금 이 시기에 만들어진 가지에 앞으로 감수성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되는 거라면,
나는 아이에게 바람이 되고 비가 되고 해가 되어 주어야 겠다.
나의 미소가 바람이 되고 나의 언어가 비가 되고 나의 표정이 해가 되어 아이의 감정 나무를 살랑거리며 아름답게 키울 수 있다면 생각만 해도 벅차오른다.
때로는 힘찬 바람을 불어주고 때로는 살곰살곰 눈을 내리고 때로는 볼이 아플 만큼의 세찬 비를 내려주기도 하고 가려도 가려지지 않는 뜨거운 해를 내리쬐어 줘야지.
그러면 수많은 가지를 뻗으며 자라나 커다란 나무같은 풍요로운 아이로 자라나겠지.
비가 됐든 바람이 됐든 눈이 됐든 해가 됐든 너에게 내리는 것은 모두 사랑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