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게 바치는 꽃 한 송이

그렇게 엄마가 된다.

by 묘연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아버지는 나무 같은 분이었다.

항상 우리에게 손해 본 듯이 살라는 말을 달고 사셨고

힘든 직장을 다니셨지만 마지막까지 열심히 셨다.

지방에서 일을 자주 하셨지만 주말마다 잊지 않고 우리를 보러 오셨고

열심히 돈을 벌으셔도 택시 한 번 마음대로 타지 않으셨다.

항상 성실하셨고 깔끔하셨고 바르셨다.

엄마에게도 언니에게도 동생에게도 나에게도 언제나 이해한다는 말을 하셨고

마음으로 가슴으로 사랑하셨다.

말씀이 많지는 않으셨지만 한마디 한마디가 깊은 울림이 있었고

손은 두껍고 투박했지만 언제나 따듯했다.

새벽엔 꼭 한 번씩 일어나 우리가 다 크도록 자는 모습을 지켜보셨고

그때마다 항상 이불을 거꾸로 덮고 자는 나를 안타까워하시며 반듯하게 덮어주시곤 하셨다.

주말엔 항상 좋은 음악으로 우리를 깨우셨고 차에는 항상 분위기 좋은 음악을 틀으셨다.

웃음이 많으셨고 출퇴근 길에 버스에서 나오는 라바를 보며 웃음을 참지 못하시는 순수한 분이셨다.

얼굴이 잘생긴 편은 아니셨지만 눈과 입은 항상 밝고 즐거우셨다.

그리고 행복하다는 말을 누구보다 많이 하셨다.

집안에 자라는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도 아주 정성스럽게 키우셨고

덕분에 우리 집 베란다는 풍성한 정원을 이루고 있었고

어항의 금붕어는 십수 년을 살았다.

아버지가 떠나시던 전날 밤,

나와 아버지는 거실에 앉아

십수 년을 살아 늙어서 힘없이 물속에 누워 갈 날만 기다리는 금붕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빠, 저 물고기가 저러고 누워있으니 다른 물고기들도 힘이 없어 보여.
까망이가 더 먼저 갈 것 만 같아. “

내가 그 말을 왜 했을까...

아버지는 그 이튿날 어항을 깨끗이 씻어 놓으시고는 물고기들을 미처 옮겨 놓지도 못한 채

늙은 물고기보다 먼저 떠나버리고 말았다.


뭐가 그리 급하셨던 걸까...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새벽에 몰래 집으로 와 물고기들을 어항에 잘 담아주고는

아버지와의 진한 이별을 했다.

나는 그 날 물고기를 어항에 넣으면서 아버지에게 다음 생에는 내 아들로 태어나 달라고 얼마나 빌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아버지가 내게 주셨던 사랑과 자식으로 못다 했던 내 마음, 엄마가 되어 다 해드리고 싶었다.

아들을 가졌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아버지에게 못 다해드린 사랑드릴 수 있을 것 같아 내심 기뻤고


아이를 낳고 외 할아버지를 닮았다는 사람들의 말에 아버지를 생각하며 지극정성으로 키우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버지에 대한 사무치던 그리움은 무뎌져 점점 옅어지고 슬픔도 가라앉는 듯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게 힘에 부칠 때마다 아버지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배운 사랑으로 나 또한 내 아들에게 진한 나무 같은 부모가 되려고 다짐한다.


어떤 부모님이 되어야 하는지 몸소 가르쳐 주셨던 아버지.

오늘은 그런 아버지가 떠난 지 만 4년 되는 날이다.

오늘도 4년 전 그날처럼 하루 종일 눈물이 목구멍을 채우고 있지만

내게 그런 아버지가 존재했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다.

살아계셨다면 화려한 꽃다발을 드리고 싶은 오늘

아버지에게 작은 꽃 한 송이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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