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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묘연 Jul 28. 2017

어마어마한 행운

그렇게 엄마가 된다.

숨 쉴 틈 없이 벽면 가득 진열된 기저귀들.

우리 아이의 뽀송한 엉덩이를 책임질 기저귀를 고르느라 눈이 새빨개지도록 보고 또 들여다본다. 

밴드형을 살까 팬티형을 살까 이 브랜드를 살까 저 브랜드를 살까 고민하고 있는데 문득 한편에 진열되어 있는 시니어 패드가 눈에 들어온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물건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언젠가는 저걸 사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괜스레 마음이 무겁다.

오늘따라 유난히 마트에 진열된 인생사가 눈에 거슬리고 또 거슬린다.

이제 막 삶을 시작한 아이들의 용품들이 이제 삶을 거의 마쳐가는 노인들에게도 필요하다는 사실이 짧은 인생을 대변하는 것 같아 마음이 꾹꾹 눌려진다.    


어쩌면 정말 인생의 시작과 끝은 데칼코마니처럼 서로 맞닿아 있을지 모른다.    

무덤의 봉분이 아기를 품은 엄마의 배와 꼭 닮아있는 것처럼

염을 한 아버지의 얼굴이 갓 태어난 아들의 얼굴이 꼭 닮아있는 것처럼

누워서 엄마의 손길만 기다리는 아이의 모습이 거동을 못하고 누워있던 할머니와 닮아있었던 것처럼.

아이를 낳으며 겪은 어마어마한 고통이 아버지를 떠나보낼 때 겪었던 마음의 고통과 견줄만했던 것처럼.

그렇게 생과 사가 다르지 않은 것처럼 인생은 서로 맞닿아 순식간에 흘러간다.    

생각보다 길지 않은 우리의 시간들.

지구의 억만 겁의 시간 속에 티끌 같은 우리의 인생. 

나의 아버지가 나의 아들을 만나지 못했던 것처럼 우리는 꼭 만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삶의 주기가 엇갈려 서로 사랑할 기회를 잃었을 수도 있는데 이렇게 서로의 눈을 보며 살을 맞대며 살아갈 수 있는 인연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스럽게 고맙고 소중해진다. 

더구나 우리가 이렇게 부모와 자식으로 만나 평생 죽을 때까지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것은 행운이라는 말로는 설명이 부족한 어마어마한 운명일지 모른다.

말도 안 되는 확률로 당첨된 행운. 

어마어마한 행운.


그렇게 생각해보면 하루의 일상들이 행운의 연속이다. 

오늘은 새벽에 칭얼거리는 아이를 달랠 행운을 가졌고.

배고파서 우는 아이에게 젖을 물릴 행운을 가졌다.

아이와 씨름하면서 이유식을 만들 행운을 가졌고

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줄 행운을 가졌다.

특별히 오늘은 아이의 기저귀를 살 수 있는 행운을 가졌고

마트에 올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마트 벽면에 가득 진열된 기저귀를 보며 특별히 이렇게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여지도 가졌다.

그것만으로 멋지고 근사한 행복에 당첨된 내 삶...


오늘도 이렇게 감사한 하루가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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