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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묘연 Jan 02. 2017

설레는 크리스마스를 위하여

 크리스마스엔 세상이 들떠 있는 느낌이다.

 어릴 때 크리스마스는 그 이름만으로도 무척 설레는 날이었다. 
산타 할아버지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그 짧은 시간에 선물을 나눠주신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하고 무슨 선물을 받을지 매우 기대되기도 했지만 정작 산타가 기다려지고 보고 싶은 건  
산타를 통해 혹은 그가 두고 간 선물을 통해 일 년 동안 내가 착한 아이였는지 나쁜 아이였는지 판가름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이유로 크리스마스 되기 며칠 전부터 나는 착한 아이가 되어 선물을 받기 위해 일부러 착한척했던 적도 있었다.^^ 
 그런 순수한 시절이 지나고 산타를 더 이상 기다리지 않게 됐을 때의 크리스마스는 방학 전 친구들에게 편지로 마음을 표현할 핑계이자 기회였다. 
학교 앞 문구점에서는 겨울만 되면 마치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특별한 인심을 쓰는 듯 50%세일을 하곤 했는데, 머릿속으로 돈 계산을 해가며 조악한 카드들 속에서 친구들에게 이쁘고 기쁜 카드를 주기 위해 열심히 고르던 기억이 난다.  특히 용돈을 아껴 제일 친한 친구에게는 제일 비싼 멜로디 카드를 선물하는 특별한 즐거움도 있었다. 그 해 내가 카드를 몇 장을 받았는지 언니와 경쟁하기도 하고 카드가 몇 장인지에 따라 일 년 동안 얼마나 교우관계를 잘 했는지에 대한 결과물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20대엔 크리스마스는 커플 천국 솔로 지옥인 날이었다.
 그날을 위해 남자친구를 만들기도 하는 그런 날이었다. 그날만큼은 빨간 힐을 신고 빨간 코트를 입고, 키는 멀대같이 큰 계집애가 루돌프 머리띠를 하고 다녀도 누가 이상하게 보지 않는 특별한 날이었다. 누가 꼭 그래야만 한다고 한 것처럼 거리엔 캐럴이 울려 퍼지고 남자친구의 팔짱을 꼭 끼고 그 추운 거리를 추운지도 모르고 걸어 다녔다. 
크리스마스 전용 메뉴판이 즐비한 카페에 추위를 피해 간신히 들어가 한 잔에 만 원이나 하는 커피를 사 마셨으며 명동거리에서 같은 디자인의 싸구려 목도리를 하나씩 나눠 하고는 세상 제일 행복한 표정으로 거리를 활보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그것을 위한 날이었고 그것을 하기 위해 엄청 들떠있었다.
그렇게 나의 크리스마스는 항상 설레고 들떴으며 완벽한 크리스마스 하루를 보내기 위해 12월 한 달 동안 거의 그날 만을 위해 준비하면서 설레고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하지만 서른이 넘어가면서 크리스마스는 크게 변했다. 그저 수많은 날 들 중에 하루일 뿐이고 그날은 크리스마스가 주말이 아니라면 일을 하지 않는 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무료하고 지루한 휴일일 뿐인 이번 크리스마스가 벌써 몇 번 째인지 모른다. 어른이 된다는 건 이렇게 모든 일에 무뎌지는 걸까. 
내가 겪은 크리스마스도 32번째. 그중에 적어도 스물일곱 번 정도는 특별했는데... 서른 번 넘게 하면서 지루하지 않을 일이 뭐가 있을까마는...아직 크리스마스가 어떤 날인지도 모른 채 요람에 누워 그 특별한 크리스마스를 잠으로 날려보내는 아이를 보니 더욱 씁쓸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내가 무료함이 앞으로 설렐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아이에게 전해질까 문득 겁이 났다.
어릴 적 부모님의 크리스마스를 떠올려보면 항상 기뻐하는 나와 언니를 보며 그저 크리스마스는 우리를 위해 있었던 것처럼 웃으시던 부모님의 미소가 떠올랐다. 
무료함이 감춰진 어른의 미소.
 
아이와 함께 다시 산타 할아버지를 기다리며 머리맡에 양말 걸어놓고 잠드는 설레는 크리스마스가 다시 오기를...
그런 날을 만들 수 있는 엄마가 되기를...

내년엔 산타 할아버지가 설렘을 선물해 주고 갔으면 좋겠다.

산타 할아버지 저 착한 엄마가 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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