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by 묘연

언제 미용실을 다녀왔는지 예전에 염색한 갈색머리가 머리 중반까지 내려온 뻣뻣한 머리를 질끈 묶은 여자.

어딘가 아파 보이는 화장기 없는 얼굴.

집 냄새가 가득한 헐렁한 티셔츠에 정말 더워서 입은 것 같은 반바지.

신경 쓰지 못한 못생긴 발톱을 당당히 내놓고는 뒤축이 닳을 대로 닳은 슬리퍼를 신은 여자가 자기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것 같은 아이를, 지금 입은 옷 백 벌은 살 수 있을 것 같은 비싼 유모차에 태우고 동네를 지나간다.

그 아이를 위해서라면 어디서라도 큰 목소리를 낼 것만 같은 여자.

그 아이를 위해서라면 어떤 행색이라도 부끄럽지 않은 것 같은 여자.

야한 농담이 부끄럽지 않을 만큼 세상 부끄러울 것도 창피할 것도 없는 그런 여자가 지나간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누군가의 아내가 되고 누군가의 엄마가 되어 그들의 삶의 스며드는 사람이 되면 사랑하는 그들을 위해 어떤 일 도 할 수 있는 강인한 힘이 자동으로 생기는 줄 알았다.

그러면 예전보다 더 뻔뻔해지고 억척스러워지고 강해지는 줄 알았다.

이제는 어디 가서도 어리지 않은 나이가 되었고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이젠 신혼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한 시점에 내 모습은 영락없는 아줌마와 어울리고 말았지만 마음만큼은 내가 생각했던 강하고 억척스러운 그런 아줌마가 되지 못했다.


결혼을 하고 남편과 몇 번의 섹스를 했더라...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의 횟수... 그리고 출산을 하면서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들 앞에서 치부를 드러내고 모르는 남자에게 다리를 벌린 채로 바느질을 당하고 배고픈 아이에게 장소를 가리지 않고 가슴을 내어주고 밤새도록 젖가슴이 너덜 해질 정도로 아이에게 빨렸지만 마음은 전혀 부끄럼을 모르게 되었다거나 무뎌졌다거나 뻔뻔해질 줄을 몰랐다.

오히려 소녀였을 때보다 더 말랑말랑한 마음은 밖에 나가보지 않은 아기의 속살처럼 더 연해져 사소함에 울고 웃는 미약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지독한 첫사랑의 열병을 앓는 소녀처럼 남편과의 지독한 사랑을 통해 자식을 낳고 그 자식에게 누구와도 해본 적 없는 지독한 사랑을 처음 해보는 엄마가 된 나는 그렇게 아이를 가진 아줌마가 되면서 담대했던 마음은 온 데 간데없고 소심해지고 약해지고 섬세해져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웃고 흘러가는 빗물만 봐도 눈물을 흘리는 사춘기 소녀처럼 오늘도 사소한 일에도 울고 웃었다.

오늘은 아이가 넘어져서 다쳐서 울고

오늘은 아이가 처음 걸어서 기뻐서 웃고 울고

오늘은 아이가 내 말을 안 들어서 울고

오늘은 아이가 너무 예뻐서 웃고 울고

오늘은 아이가 울어서 울었다.

남편의 시시한 농담에 키득거리고

남편의 못생긴 얼굴이 웃겨 웃는다.

그리고 가끔은 남편의 어깨에서 삶의 무게를 발견해서 울고

남편의 코 고는 소리가 너무 고달프게 들려 울고

어느 날은 남편이 너무 미워서 울었다.


그렇게 말랑거리는 가슴을 해서는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분유를 타서 아이에게 먹이고 간단히 남편의 아침을 차리고 회사 가는 남편을 배웅하고 다시 아이를 재우고 아침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쌀을 불려 온갖 재료를 세척 손질해서 갈아서 이유식을 만들고 또 설거지를 하고 깨어난 아이를 마사지하고 아이 이유식을 먹이고 분유를 먹이고 빨래를 돌리고 빨래를 널고 핸드폰으로 장을 보고 아이 기저귀를 갈아주고 빨래를 개고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아이 유산균을 먹이고 틈틈이 물과 과일주스를 갈아 먹이고 분유를 먹이고 이유식을 먹이고 분유를 먹이고 이유식을 먹이고 분유를 먹이고 설거지를 또 하고 아이 간식을 먹이고 내 간식을 먹고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안아주고 놀아주고 목욕을 씻기고 집 청소를 하고 남편 저녁을 차리고 치우고 아이를 재우는 일을 휴가도 병가도 없이 해야만 하는 강한 여자의 삶을 살게 되어버렸다.

나 자신보다는 내 가족을 위해 이 한 몸 불사르는 여자.

아줌마.


그렇게 아줌마가 된다는 건 약한 마음을 가지고 강하게 살아야 하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바쁜 하루 일과 중에도 시원한 가을바람을 마시고 싶어 괜히 아이를 데리고 밖에 나와본다. 황급히 나오느라 화장도 못하고 씻지도 못하고 집에서 입던 옷을 입고 유모차를 끌고 밖으로 나왔지만 덜 익은 노을과 온기가 남아있는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머리칼을 느끼면서 말랑거리는 가슴을 주물럭거려본다.

유모차에 앉아있는 작은 아이는 예쁘지 않은 나를 향해 예쁜 웃음을 보이고는 세상 편하게 잠이 든다.


이 아이는 아직 내가 아줌마라는 걸 모른다.


업고 가는 길 사본.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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