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찌는 엄마

by 묘연

뱃속의 아이가 궁금해서 병원에 열심히 다니면서 초음파를 보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아이는 훌쩍 자라 나와 손을 잡고 밖을 거닐게 되었다.
이쯤 되면 모유 수유도 끝나고 이제 아이와 연결된 또 하나의 탯줄이 이렇게 끊어진다.
이제는 아이가 아닌 나에게 맞추어 음식을 골라 먹을 수 있고 살을 뺄 수도 있는 시기다. 수유를 하지 않으니 운동을 하지 않으면 살이 많이 찔 수도 있다.
'살을 빼볼까?'
이제서야 내 몸에 대해 관심이 생긴다.

낳아본 사람들만 아는 몸의 변화.
체중이 많이 늘지 않아도 넓어진 골반과 등판. 굵어진 팔뚝 후덕한 턱살...
바지 사이즈가 달라지고 브래지어 사이즈가 달라진 내 몸.
제일 많이 변한건 역시 배와 가슴.
바람 빠진 풍선같이 야들야들하게 늘어진 뱃살.
막달에 아이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터졌던 야들야들한 내 아래 뱃살엔 누가 난도질한 것처럼 하얀 칼자국 같은 흉터가 셀 수 없이 많이 생겼고 그렇게 넓어진 표면들이 늘어져 더 이상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팬티 바깥으로 흘러나왔다.
작은 가슴으로 평생 살아온 내 몸뚱어리에 몇 리터 씩의 모유를 들고 다니면서 버거웠던 등짝은 근육 대신 살을 찌웠다. 그러면서 어색하지 않게 팔과 겨드랑이에도 골고루 군살이 붙었다.
수유를 양쪽 고르게 하지 못해 잘못된 밸런스로 마지막 수유 때는 거의 두 배 정도의 크기가 차이 났던 내 짝가슴... 많이 불었던 가슴은 영락 없이 더 우울한 모습이었다.
굳이 체중계에 올라가 처녀적 몸무게와 비교하지 않아도 내 몸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이것들을 다 어떻게 해야 하나...
육아가 분명 고되고 힘들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육아를 빡세게 한다고 해서 배에 식스팩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피골이 상접하게 말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군살 위에 소복이 내려않은 포동포동한 살들이 육아가 이렇게까지 힘들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말했다.
아이를 키우느라 밥을 제때 먹지 못하고 허겁지겁 아무거나 먹는 게 화근인 걸까. 생각해보면 난 오늘 급한 대로 라면 하나 먹고 빵 하나 먹고
요플레 하나 먹고 믹스커피 한잔 마시고
급한 대로 어제 먹다 남은 피자 한 조각 먹고 치킨 그것도 순살로 한 마리 시켜 먹고
급한 대로 맥주 한 캔 마시고 과자 한 봉지 클리어
디톡스 차 한잔 영양제 한 알. 그리고 스피룰리나 노니.... 녹용!
차라리 디톡스 차 한 잔을 안 먹는 게 나을뻔했다.
그럼 피자도 치킨도 맥주도 먹지 않았을 테니까...

정말 독한 엄마들은 다이어트를 하고 운동을 하고 관리를 하겠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운동을 하고 다이어트를 한다는 건 마라톤을 뛰는 선수에게 모래주머니를 채워주는 것과 다를 게 없다. 그만큼 가혹하다. 주린 배로 신경질을 내가면서 아이를 케어할 순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이건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아이를 낳아본 엄마들만 가질 수 있는 훈장이지. 내 몸에 새겨진 아이의 흔적이지.'
이렇게 생각하니 굳이 힘들게 없애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물론 옛날처럼 비키니를 입거나 달라붙는 옷을 입지는 못하겠지만
남들은 쉽게 가질 수 없는 쪼그라든 가슴과 터진 뱃살이 엄마들만 가질 수 있는 몸이라고 생각하니 난 또 이게 그렇게 자연스럽고 예뻐 보일 수 없는 것이다...라며 멍청해 보이는 몸에 대해 관대해져 본다.
그렇게 난 몸에 살만 찐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너그러워질 만큼 마음에도 살이 찐 듯하다.

이렇게 이왕 자신에게 너그러워진 만큼, 아니 넓어진 등짝만큼이나 너그럽고 따듯한 엄마가 되고 싶어졌다.
그리고 내 자식에게 따듯하고 넓은 엄마인 만큼 다른 아이에게도 다른 엄마들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따듯하고 넓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후덕한 인상만큼이나 인품도 후덕한 사람.
항상 넉넉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
늘어진 뱃살만큼이나 야들야들하고 정이 넘치는 사람.
그런 마음으로 아이를 키우는 사람.
아이에게 보내는 사랑의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살찌는 엄마.
마음에 살찌는 엄마.

사실 다이어트를 포기한 건 아니다. 하지만 37살이 먹도록 다이어트를 매일 해왔으니... 앞으로도 쭉 다이어트를 해 볼 생각이다. 하지만 한 번도 말라깽이가 되어 본 적이 없는 것처럼. 나는 이 엄마의 훈장을 없애려야 없앨 수는 없을 것 같다.
우리 조금씩 관대하게 살아도 괜찮아요.


너그러운엄마 사본.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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