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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 Dec 27. 2016

광장시장 창신육회_Since1980

입맛도 사람도 바뀐다

입맛도 사람도 바뀐다,  

광장시장 창신육회_Since1980

262번 버스를 타고 종로 3가에 굴보쌈을 먹으러 가던 주말 오후였다. 이게 웬걸. 맨 뒷자리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다 날벼락을 맞았다. 맙소사. 버스가 시위 때문에 종로를 지나지 않는단다. 명동에서 내렸어야 했는데…
버스는 야속하게 을지로로 진입해 가고 가고 또 가고 있었다. 굴보쌈하고 점점 멀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러다 어디서 내려줄지 몰라 고민하고 있던 시점에 한 아주머니가 역정을 내기 시작했다. 

“아니 종로로 가야 하는데 이게 무슨 말이에요! 당장 내려줘요!”

이 말로 시작되어 기사님과 아주머니간의 몇 차례 고성이 오간 뒤, 나는 방산시장에 내리는 아주머니를 따라 후다닥 내릴 수 있었다. 
아 방산시장 오랜만이다. 예전엔 여기서 재료를 사서 초콜릿도 만들고 선물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그렇게 선물해줘 봐야 남는 게 없던 씁쓸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씁쓸했던 기억, 방산시장의 오토바이와 지게차, 사람들을 피해 도착한 곳은 광장시장. 진~짜 오랜만이다. 여전히 추운 날씨지만 북적거리는 광장시장의 활기는 굴보쌈에 대한 생각을 기억 저편으로 멀리 날려버렸다.
광장시장에 왔으면 뭘 먹을까. 이날은 날이 너무 추워 호박죽과 빈대떡을 찾았지만 사실 나의 ‘광장시장 스타일’의 메뉴는 창신육회 육회비빔밥이다.
   
학교 다닐 때 창신육회 고정멤버가 있었다. 나와 몇 살은 더 많은 선배 오빠 두 명. 학교에서 ‘육회 콜?’ 하고 얘기를 나눈 뒤 택시를 잡아타면 금방 종로5가에 도착한다. 
아, 우정약국 골목 사이로 자매집이 보인다. 물론 자매집도 엄청나게 유명한 가게지만 우리의 선택은 항상 바로 옆집인 창신육회였다.

창신육회에서 육회 한 접시, 육회비빔밥 하나, 소주를 시키고 딸려 나오는 소고기 뭇국을 떠먹는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아 비싼 육사시미는 입맛만 다신다. 육회를 좋아하지 않던 내 입맛을 바꾼 가게다. 육우를 써 저렴한 가격이 매력적이다. 
소주와 곁들이며 나누는 이야기들은 시시콜콜하다. 시시콜콜한 얘기 한 숟갈 육회 한 점. 밥 한 입. 후추 향 가득한 국물도 후루룩 마신다. 목을 타고 내려가는 싸구려 소주의 맛에 육회는 술꾼들의 영원한 소울메이트다.
   
좁고 시끄러운 가게지만 의외로 술꾼들만 있는 건 아니다. 재밌는 광경도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광경은 육회집에서 헤어지는 연인이었다. 옆 테이블에서 큰 소리가 나서 얘기를 멈추고 귀를 기울이자 이야기가 들렸다. 

“여기까지야!”

육회집 티슈로 눈물을 닦던 아가씨는 뛰쳐나가고, 우리는 육회 값은 누가 내냐? 생각하며 셋이서 낄낄거렸다. 저 남자는 애인도 잃고 먹던 육회 값도 내야겠구나. 아이고. 안타까워라. 

   
학교를 졸업하고 한강 이남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창신육회 멤버도, 육회집도 갈 일이 없었다. 몇 년 전 추석 즈음인가. 전통시장 취재 건으로 광장시장을 찾았다. 사진도 찍고 인터뷰도 끝내고. 여기자 셋이 모여 수다를 떨다 오랜만에 육회 집을 찾았다. 학생 때 찾던 집을 직장인이 되어 찾으니 호기롭게 육사시미를 먹을 수 있었다. 아싸! 

            

아름다운 육사시미의 자태



이날도 학교 다닐 때처럼, 기분 좋게, 거나하게 취했다. 
지금은 그 때 이곳에서 술잔을 기울이던 학교에서의 고정 멤버나 직장에서 같이 일했던 사람들과 매일같이 얼굴을 맞대지는 못한다. 하지만 난 또 누군가와 저기서 술 한 잔에 육사시미를 먹고 있을 거고, 계속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거다. 내 주변 사람들과 풍경이 바뀌듯 내 입맛도 함께 바뀐다.
   
내가 오래된 집을 좋아하는 데에는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어서다. 오랜만에 찾는 집이 같은 모습일 때, 그 편안함이 좋다. 이 편안함을 즐긴다. 그때는 비릿한 간, 천엽을 먹을 수 있을지도.
   
   
   
*개점 연도를 정확히 알 수 없어 블루리본서베이에 기재된 1980년도라고 기재합니다. 



오래된 집들은 맛있다. 
   
1년 이내 문을 닫는 음식점이 50%고 5년 이상 살아남는 음식점은 30%라고 하는 시대다. 요식업계는 이렇게 경쟁이 치열하다. 그럼 이 수많은 음식점들 사이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뭘까. 
식품업계에 몸담은 이들을 만나 이 질문을 던지면 한결같이 가장 먼저 말하는 핵심은 '맛'이다. 오랜 시간 동안 고객들에게 사랑받는 음식점들은 뭐가 있을까. 이 글은 이런 궁금증에서 출발한다.

글을 시작하기 전에 ‘오래된’이라는 말의 정의를 고민했다. 
사전적 정의로 ‘오래되다’의 뜻은 아래와 같다.
[형] 오래-되다 ‘시간이 지나간 동안이 길다.’ 
   
한국에서 음식점이 15년 이상 되면 한 지역(동네)에서 터줏대감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더 오랜 시간 동안 운영된 가게들이 많긴 하지만, 일단 15년 이상 맛을 지켜온 가게들을 기준으로 삼는다. 맛과 서비스에 대한 평가는 각기 다를 수 있으나, 글의 성격상 최대한 경험에 의거해 작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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