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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 Mar 03. 2017

처음 모습 그대로, 빠리하노이Since_2002

오래된 것은 맛있다

 

Since 2002_ 처음 모습 그대로 

대학로 빠리하노이    


나는 20대 초중반을 대학로에서 보냈다. 대학로는 연극을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는 참으로 매력 없는 동네다. 

혜화역 4번 출구에 나가면 맛있는 것을 밝히는 내 성에 차지 않는 허접하고 맛없는 길거리 음식이나 신생 프랜차이즈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스러지는 것이 반복된다. 

친구와 소극장 앞을 지나가면 ‘커플이세요?’ ‘연극 한 편 보세요’ 라며 호객하는 대학로의 코미디언과 배우들을 마주치게 된다. 아직 서로가 낯선 뜨내기 커플이라면 그렇게 잡아끄는 손길이 어색한 분위기를 깨줄 수 있어 반가울지 모르지만 매일 대학로를 지나치는 내 입장에선 썩 달갑지 않다. 항상 ‘저희 커플 아니에요’를 중얼거리며 지나치는 것이 일상이었다.  


하지만 이런 매력 없이 느껴지는 혜화동에도 숨은 공간들이 있다. ‘대학로’를 대학로답게 만들어주는 곳들이랄까. 나에겐 마로니에 뒤편의 아르코미술관과 학림다방, 카페 윌이 그런 공간이었다. 최근에 종로로 터를 옮긴 빠리하노이도 대학로를 대학로답게 만드는 가게 중 하나다. 


술을 잔뜩 마시거나 밤을 샌 채로 졸다 보면 어느새 이른 점심시간이 된다. 봄 날씨의 나른한 고양이처럼 기지개를 펴고 슬렁슬렁 소나무길로 나선다. 곰다방 맞은 편, 돈까스집 옆 빠리하노이에 들어선다. 숙주를 다듬고 있던 직원들이 자리를 안내해주고, 밀어 놓은 테이블을 꺼내 그 틈에 비집고 앉는다. 항상 하는 주문은 같다. 


‘분짜 레귤러 하나에 국물도 같이 주세요’    






분짜는 그야말로 나를 위한 메뉴라고 생각한다. 차갑고 탄력 있게 데친 면에 파인애플과 양상추, 당근과 오이, 새콤달콤한 소스와 양파, 숙주, 땅콩 분태가 어우러진다. 이 메뉴의 화룡점정은 접시에 빙 둘러 놓이는 짜조(베트남식 튀김 만두) 여덟 조각. 튀김에 그야말로 환장하는 나에게 바삭바삭한 라이스페이퍼로 만든 짜조는 생각만 해도 입안에 침이 고인다. 

칠리소스와 해선장을 섞어 만든 소스에 짜조를 찍어먹고 딸려 나온 쌀국수 국물을 마시고 있으면 전날의 숙취가 언제 술을 마셨냐는 듯 사라진다. 그럼 이제 새콤달콤한 면과 양파절임을 먹을 차례다. 차가운 면과 따뜻한 국물, 짭짤하면서 고소한 짜조를 번갈아 가며 먹고 있노라면 ‘대학로는 꽤 괜찮은 동네’라는 생각이 든다.

다 먹고 그릇 밑바닥의 파인애플을 하나하나 주워 먹은 후 가게를 나와 마로니에 공원 한 바퀴를 돌고 전시회를 보면 그날은 ‘꽤 괜찮은 하루’라는 생각이 든다.     


2016년 연말, 아침의 관철동으로 장소를 옮겨 보자. 대학로 빠리하노이를 찾았다가 이전 소식을 텅 빈 가게 앞에 붙은 안내문올 접한 나는 며칠간 쌀국수(정확히는 분짜) 열병을 앓았다. 좀비마냥 ‘아 쌀국수 먹고 싶다…’를 무한 반복하는 이 병에는 원하는 음식을 먹는 것 빼곤 답이 없다. 마치 음식하고 난 상사병 같은 거랄까.


관철동으로 옮긴 빠리하노이를 길눈이 어두운 나는 네이버 지도를 보고 또 봐 찾아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가게는 파티를 해도 될 만큼 널찍한 가게로 바뀌었다. 대학로에 있던 시절에는 타이밍을 잘못 맞춰 줄을 서곤 했던 것이 생각났지만 이곳에선 그럴 일이 없겠지.

널찍한 가게에 첫 손님이었다. 송구스러운 분위기로 가게 한 켠에 앉아 분짜룰 주문했다. 가게가 바뀌어서 맛이 바뀌면 어쩌나 우려했는데 맛은 여전했다. 추위를 뚫고 같이 걸어온 친구에게 부끄럽거나 미안한 맛이 아니었다. 연신 ‘여전히 맛있네’를 되뇌며 한 그릇을 비웠다.    



음식을 먹을 때는 음악을 들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많다. 나는 이소라의 ‘처음 느낌 그대로’나  라디오헤드(Radiohead)의 우울 3부작을 들으면 그 나이에 느꼈던 감정이나 풍경과 사람이 시간과 공간을 넘어 물밀 듯이 머릿속을 점령해버린다. 

음식도 비슷하다. 누군가와 함께 했던 기분이나 감정을 이 접시 안에서 고스란히 다시 느끼게 된다. 대학로에 있던 시절의 빠리하노이가 나에게 대학로에서 함께 했던 이들을 떠올리게 한다면 관철동으로 옮긴 빠리하노이는 나에게 새로운 사람과의 기억을 만들어주고 있는 셈이다.

오래된 가게가 주는 안락함과 편안함 안에서도 새 변화가 생겨난다. 그 변화를 즐기며 과거를 ‘좋았던 모습’ 그대로 기록하고 음미한다. 새로운 변화를 또 기억한다.         



오래된 집들은 맛있다.    

1년 이내 문을 닫는 음식점이 50%고 5년 이상 살아남는 음식점은 30%라고 하는 시대다. 요식업계는 이렇게 경쟁이 치열하다. 그럼 이 수많은 음식점들 사이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뭘까. 

식품업계에 몸담은 이들을 만나 이 질문을 던지면 한결같이 가장 먼저 말하는 핵심은 '맛'이다. 오랜 시간 동안 고객들에게 사랑받는 음식점들은 뭐가 있을까. 이 글은 이런 궁금증에서 출발한다.    

글을 시작하기 전에 ‘오래된’이라는 말의 정의를 고민했다. 

사전적 정의로 ‘오래되다’의 뜻은 아래와 같다.

[형] 오래-되다 ‘시간이 지나간 동안이 길다.’   

한국에서 음식점이 15년 이상 되면 한 지역(동네)에서 터줏대감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더 오랜 시간 동안 운영된 가게들이 많긴 하지만, 일단 15년 이상 맛을 지켜온 가게들을 기준으로 삼는다. 맛과 서비스에 대한 평가는 각기 다를 수 있으나, 글의 성격상 최대한 경험에 의거해 작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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