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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 Apr 10. 2017

Fall in love, B&B Since1995

맞춤 수트 같은 칵테일 

Bar & Blues

합정 비앤비(B&B)_ since1995     


생각보다 어린 나이부터 운 좋게 소주와 맥주 대신 위스키와 칵테일이라는 걸 접할 수 있었다. 이런 축복받은(?)환경이 된 이유는 다양하다. 


수입맥주 붐이 일기 전 대학로에 있던 내 단골집부터 군납 술을 실컷 마시게 해준 친구(윈저와 임페리얼, 발렌타인과 화요를 엄청 마실 수 있었다)와 남대문과 광장시장까지. 특히 남대문 주류상가와 마트 등을 헤집으며 오만 종류의 술을 구해다 마셨다. 학생 때만 그랬을까. 취직 후에는 기자로 살아가며 또 전통주를 왕창 마실 수 있었던 일을 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스무 살 이후 주(酒)님은 내 곁에 항상 있었던 것 같다. 몇 년 주기로 주종을 바꿔서 말이다.     


필연적이랄까. 주종을 바꿔 가며 열심히 마시던 나는 자연스럽게 칵테일에 빠져들었다. 1+1이 2가 아닌 10이 될 수 있는 블렌딩의 묘미란!


스무 살 이후 여러 바에 꾸준히 바에 다녔는데, 그 중 각별한 바가 있다. Bar&Blues라는 이름을 가진 이 바는 나를 칵테일과 ‘falling in love'하게 만든 바다. 


친한 오빠가 자기 여자친구에게도 알려주지 않던 곳이라며 생색을 잔뜩 내며 데려간 종각역 근처의 지하 바는 나를 칵테일과 사랑에 빠지게 했다. 처음 가 본 클래식 바가 이렇게 오랜 단골이 될 줄 그때는 몰랐다. 이곳에는 백 가지가 넘는 칵테일이 적힌 두꺼운 메뉴판이 있다. 하지만 사장님이라는 네비게이션을 이용하는 것이 베스트다. 그때나 지금이나 단정한 보타이를 맨 사장님이 묻는다.      


‘단 맛이 좋으세요? 술맛이 좀 나는 게 좋으세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시작으로 수많은 갈래가 생겨난다. 과일의 달콤함이 좋은지, 새콤함이 좋은지, 도수가 좀 느껴지는 게 좋은지, 좋아하는 기주가 있는지. 


기성복 대신 맞춤 정장을 입으면 수많은 가봉을 거쳐 내 체형과 몸에 꼭 맞는 옷이 나오듯, 많은 질문을 통해 내 입과 기분에 꼭 맞는 나를 위한, 단 한 잔의 칵테일이 내 앞에 놓인다. 이게 진짜 아트 아닌가. 죽인다.  


    

게다가 더 멋있는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이곳의 모든 칵테일은 스탠다드 레서피(Standard recipe)가 아니다. 백 종류가 넘는 칵테일 모두 몇 개월씩 이곳을 찾던 주정뱅이들의 검수를 거쳐 조금씩 가감되고 변형된 맛을 자랑한다.      


주로 마시는 칵테일인 ‘모스코뮬(Moscow mule)’의 예를 들어보자. 바마다 개성을 뽐내는 칵테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어느 단골 바에서는 가니시로 로즈마리를 올려주고, 다른 바에서는 말린 인삼을 갈아 넣어주기도 하고, 또 다른 단골집에서는 직접 만든 생강 리큐어(?)를 이용한 모스코뮬이 나온다.      

이렇게 다양한 레서피를 가진 칵테일이지만 내게 비앤비에서 마시는 모스코뮬의 맛은 각별하다. 청량하다. 더운 여름날 몸에 쏟아지는 청량한 소나기 같다. 답답하고 텁텁하기 짝이 없는 내 기분을 단번에 적셔주는 청량함은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느낌이다. 황금빛의 색상은 회색이었던 내 기분까지도 들뜨게 한다. 

물론 다른 바들의 모스코뮬도 맛있지만 길들여진 입이랄까, 기준점이랄까. 한 입 머금으면 ‘아 이 맛이야’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얼마 전 비앤비를 찾았을 때에는 파우스트를 마셨다. 색상이 정말 매혹적이다. 괴테의 ‘파우스트’라는 이름에 걸맞은 매혹적인 색과 화끈한 도수를 가진 칵테일이다. 바카디151을 베이스로 만들었지만 목넘김은 의외로 달콤하다. 하지만 술은 정직하게 취기가 오르는 칵테일이다. 독하지만 맛있어!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이곳에서 마신 수십 종류의 칵테일들은 누구와 마셨는지, 언제 마셨는지, 하나하나의 칵테일들이 기억을 되살리는 매개체가 된다. 파우스트는 처음 맛본 날 석 잔을 마시고 기억을 잃었다. 

그때 글렌피딕을 먼저 마시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하…     



이곳을 다닌 시간만큼 사연도 참 많고 같이 온 사람들도 참 많다. 특히 혼자 술을 마시는 일이 몹시 잦은 터라 셀프로 만들어낸 흑역사(?)도 참 많다. 같이 술을 마시던 이들 중에 내 옆에 있는 이는 또 줄어들고 바뀐다. 평생 안 볼 것 같았던 사람들도 어느새 또 다시 만난다. 


더 예민하고 상처받았던 그때의 일들도 사람들도 돌다 보면 어느새 다시 마주해있다. 다시 보면 마음은 다시 복잡해진다. 그 마음의 풍파도 반복되면 진자 운동처럼 점차 그 폭이 줄어든다. 그러다 어느 날 덤덤해지겠지.

바에 앉아 얘기를 나눈다. 잡담을 한다. 내 마음은 좀 더 무던해진다. 변한다. 계속 제자리에 있지 않다.     

 

하지만 비앤비와 칵테일, 사장님과 보타이는 계속해서 합정에 있다. 있는 순간을 즐긴다.          




주: 비앤비는 종로구 관철동에서 몇 년 전 합정역 감싸롱 지하로 이전했습니다. 

글에서는 시점이 뒤섞여 있습니다.           





오래된 것은 맛있다     

사실 오래된 집들은 기본 이상의 맛을 보여준다. 1년 이내 문을 닫는 음식점이 50%고 10년 이상 살아남는 음식점은 30%라고 하는 시대다. 식품업계에 몸담은 이들은 물론 일반인들도 음식 장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맛’이라고 말한다. 오랜 시간 동안 고객들에게 사랑받는 음식점들은 뭐가 있을까. 이 글은 이런 궁금증에서 출발한다.     

글을 시작하기 전에 ‘오래된’이라는 말의 정의를 고민했다. 사전적 정의로 ‘오래되다’의 뜻은 아래와 같다.

[형] 오래-되다 ‘시간이 지나간 동안이 길다.’ 

한국에서 음식점이 15년 이상 되면 한 지역에서 터줏대감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더 오랜 시간 동안 운영된 가게들이 많긴 하지만, 일단 15년 이상 맛을 지켜온 가게들을 기준으로 삼는다. 맛과 서비스에 대한 평가는 각기 다를 수 있으나, 글의 성격상 최대한 경험에 의거해 작성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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