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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 May 03. 2017

떡볶이계의 야수파 마포원조떡볶이_Since 1987

오래된 것은 맛있다 


떡볶이계의 야수파

마포원조떡볶이_Since 1987

의외로 격식을 따지는 인간입니다. 위스키를 마실 땐 좋은 글라스를 써야 하고, 팔도비빔면에는 참기름을 더해야 합니다. 짜장면엔 고춧가루를 뿌려야 하고 쇠고기는 앞뒤로 한 번씩만 뒤집습니다. 떡볶이는 튀김이 없으면 입도 대기 싫습니다. 특히 튀김 중에서도 딱딱하게 튀긴 야끼만두가 들어가면 금상첨화입니다.     

이런 따지는 것 많은 제게 공덕동에 있는 마포 원조떡볶이는 오아시스 같은 곳입니다. 요즘 제 취향을 완전 저격하는 떡볶이집 스타일이니까요.


몇 년 전에는 ‘미미네’로 대표되는 일식 덴뿌라 스타일의 가벼운 튀김과 가벼운 느낌의 국물떡볶이에 심취했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뒤로는 이촌동의 스마일 떡볶이같이 집에서 만드는 떡볶이와 김밥이 좋아 이촌역을 제 집 드나들 듯 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공덕역 뒷골목에는 떡볶이로 엄청나게 유명한 두 집이 붙어 있습니다. 왼쪽엔 코끼리분식, 오른쪽은 마포 원조떡볶이입니다. 두 집 다 떡볶이를 팔지만 즉석떡볶이-분식집 떡볶이로 스타일이 완전히 달라 큰 문제없이 성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이 집을 알게 된 건 회사에 다닐 때였습니다. 회사 사람들이 주꾸미 숯불구이를 먹으러 가자며 저를 데리고 간 곳이 멀고 먼 공덕의 이 골목이었습니다. 주꾸미를 먹으러 갈 때마다 매번 지나치는 곳이었는데, 매번 주꾸미를 먹고 난 뒤라 배가 불러 떡볶이는 그저 스쳐 지나갈 뿐이었습니다. 

어찌나 아쉽던지. 매번 입맛만 다셨습니다. 회사 선배들이 ‘이 떡볶이집들 유명한 집이야, 맛있더라’라고 얘기만 전해들을 때마다 속이 더 쓰렸습니다.


하지만 아쉽기만 할 뿐 생활권과 겹치지 않는 곳이었기에 섣불리 찾을 일도 없었습니다. 이후 공덕에 갈 일이 많아진 뒤로는 한풀이(?)를 실컷 해댔습니다. 여러 사람들과 참 열심히 드나들었습니다. 누굴 데려와도 맛있게 먹는 걸 보니 뿌듯하기만 합니다.


좁은 가게에는 열 개가 되지 않는 테이블과 문 밖으로 테이크아웃 줄이 길게 늘어서 있습니다. 도매상에서 사오는 튀김도 봉지 채 널려 있습니다. 가게가 딱히 깔끔하진 않지만 이마저도 분식집에서는 용인됩니다. 뭐, 오래된 분식집이라는 느낌이 폴폴 납니다.


안에는 ‘진짜’ 시크한 할머니들이 김밥을 말고 떡볶이를 휘젓고 순대를 썰고 있습니다. 떡볶이를 휘저을 때도, 계산을 할 때도 참 시크합니다. 만 원을 내면 “거스름돈은 여기 알아서 가져가”라고 말하며 다시 바쁘게 손을 움직이십니다. 하지만 불친절한건 아닙니다. 웃는 얼굴은 아니지만 툭툭 던지는 인사들은 정겹습니다.

가격도 참 착합니다. 떡볶이 순대 김밥에 튀김, 오뎅까지 먹어도 만 원이 되지 않습니다. 아, 물가 높고 팍팍한 서울 시내에서 이런 가격을 만나볼 줄이야. 그야말로 감동의 도가니입니다.      


이곳의 떡볶이는 새빨갛습니다. 물엿을 잔뜩 써 끈적거리고 걸쭉합니다. 펄펄 끓는 떡볶이 국물은 용암 같습니다. 그야말로 떡볶이계의 야수파랄까요. 와일드한 사이즈의 가래떡에 바로 싸는 김밥, 딱딱한 야끼만두가 어우러지면 입에 웃음이 절로 걸립니다.

떡볶이가 나옵니다. 긴 가래떡은 같이 주는 가위로 잘 잘라 먹어야 합니다. 여성스럽게 한 입 크기로 나오는 떡볶이떡은 이곳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가위로 숭덩숭덩 자르는 와일드한 가래떡의 맛이 이곳의 매력입니다.


매우면서도 달콤한 떡볶이는 첫 입, 물엿 잔뜩 들어간 시뻘건 떡볶이 양념에 김밥을 찍어먹습니다. 

단촐한 재료로 말아낸 김밥은 그냥 먹으면 뭔가 심심하지만 떡볶이와 함께라면 맛이 두 배가 됩니다. 김밥 속이 간단한 이유는 떡볶이와 어울리기 위한 안배가 아닐까 합니다.

순대가 나옵니다. 순대는 떡볶이 국물보다 소금을 찍어먹기 좋아합니다. 진한 떡볶이 맛의 중간 중간을 환기시켜 줍니다. 오뎅국물과 함께 입을 한 번씩 훑어내 떡볶이를 계속계속 먹을 수 있게 합니다. 질리지도 않고 젓가락질을 계속 하게 만드는 조합입니다.      


이곳의 떡볶이는 좋게 말하면 입에 착착 감기는 단 맛, 나쁘게 말하면 쉽게 질리는 맛입니다. 강렬한 만큼 맛에 쉽게 익숙해진다고 할까요. 

하지만 문득문득 이런 진한 맛이 사무치게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여름에 특히 더 그렇습니다. 날이 더워지고 입맛 당기는 게 없을 때에는 고민 없이 버스를 타고 공덕에 갑니다. 떡볶이집에는 떡볶이만이 줄 수 있는 뭔가 특별하면서도 안정적인, 안심되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사람에게 만 3세 이전에 먹었던 맛이 일종의 노스탤지어로 자리잡듯이 초등학교에서부터 지금까지 먹어온 떡볶이에도 그런 게 있지 않나 싶습니다.


안경원과 편의점을 끼고 골목을 돌면 보이는 이 떡볶이집이 보이면 매의 눈으로 자리를 스캔합니다. 오늘은 줄 안 서고 앉았습니다. 아싸.     



오래된 것은 맛있다

사실 오래된 집들은 기본 이상의 맛을 보여준다. 1년 이내 문을 닫는 음식점이 50%고 10년 이상 살아남는 음식점은 30%라고 하는 시대다. 식품업계에 몸담은 이들은 물론 일반인들도 음식 장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맛’이라고 말한다. 오랜 시간 동안 고객들에게 사랑받는 음식점들은 뭐가 있을까. 이 글은 이런 궁금증에서 출발한다.     

글을 시작하기 전에 ‘오래된’이라는 말의 정의를 고민했다. 사전적 정의로 ‘오래되다’의 뜻은 아래와 같다.

[형] 오래-되다 ‘시간이 지나간 동안이 길다.’ 

한국에서 음식점이 15년 이상 되면 한 지역에서 터줏대감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더 오랜 시간 동안 운영된 가게들이 많긴 하지만, 일단 15년 이상 맛을 지켜온 가게들을 기준으로 삼는다. 맛과 서비스에 대한 평가는 각기 다를 수 있으나, 글의 성격상 최대한 경험에 의거해 작성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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