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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 Sep 04. 2016

추억을 관음하다, 화곡동 목동분식 Since_1986

오래된 것은 맛있다



지하철을 타고 간다. 집에서 애매하게 먼 화곡동까지 왔다. L을 만나기 위해 화곡동의 낯선 길을 걷는다. 운전을 할 줄 아는 그녀는 나를 픽업해서 그녀의 집까지 데려갔고, 덕분에 언덕을 오르며 욕을 내뱉는 일은 없었다.


L은 내게 본인 집 근처의 떡볶이 집을 소개했다. 가게 이름은 목동분식. 여기가 목동이 아닌데 왜 목동분식인지는 잘 모르겠다. 우장산역 근처다.      


그녀가 이곳을 추천하는 목소리가 자신이 넘친다. 나는 주기적으로 떡볶이를 먹지 않으면 입에 두드러기가 돋고 스트레스를 받는 떡볶이 중독자이므로 아무 말 없이 조수석에 오른다. 좁은 골목을 구석구석 돌아 분식집 앞 미용실에 아슬아슬하게 주차를 하고 떡볶이집에 들어섰다.     


여기 좀 특이하다. 시크한 이모님들이 우리를 맞이하고 옆에서는 끊임없이 칼질 하는 소리가 들린다. 중식용 식칼을 들고 단무지를 종잇장같이 얇게 써는 아저씨가 가장 먼저 보인다. 계속 썰려나오는 단무지는 투명하기까지 하다. 거기에 가게가 복층이다. 천장이 무지무지 낮다. 계단 공포증이 극심한 사람이지만 아래에 자리가 없어 옆을 붙잡고 기다시피 위로 올라간다.      



가게 천장에는 ‘철수♥영희’ 따위의 낙서가 가득하다. 저 낙서들은 누가 저렇게 좋다고들 쓰는지 항상 궁금하다. 서로가 그렇게 사랑하는 관계가 저런 낙서로 증명될까? 그리고 저런 낙서를 썼던 이들은 지금도 사랑하고 있을까?     



“떡볶이 두 개요”     



서빙도 재미있다. 위층으로 직접 갖다 주지 않고 가게 아래층에서 팔을 쭉 뻗어 음식을 올려준다. 그걸 위에서 받아야 한다. 위에서 부글부글 즉석떡볶이가 끓을 동안 수다를 떤다. 자주 만나는 편이지만 왜 이렇게 얘깃거리는 무궁무진한지.


L이 이 가게를 소개하는 말을 듣고 있으려니 고등학교 앞 떡볶이집이 오랫동안 장사를 하는 이유를 알겠다. 엄마와 딸이 오고, 딸이 또 자기의 딸을 데려오는 대(代)를 잇는 다단계 마케팅이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이 이 맛을 잊지 않고 꾸준히 찾으니까 장사가 되는 게 아닐까.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군부대 근처였던 덕에 근처에 분식집이 없었다. 당연히 학교 앞 추억의 맛 같은 게 있을 리가 없다. 매점에서 먹던 빵과 컵라면이 전부니 더 할 말이 없다. 


나와 동갑인 L의 추억을 빌어 여고생이던 그녀를 상상한다. 그녀의 추억을 관음한다. 교복 입은 날라리 여고생이 친구들하고 떡볶이를 먹으러 오던 모습이 훤하다. 얼마 안 된 세월이지만 상상하니 웃음이 나온다. 참 귀엽다.   

   


아, 얘기하는 사이에 떡볶이가 다 익었다. 얘기하는 내내 신경 써서 숟가락으로 섞어 줘야 한다. 즉석떡볶이는 타이밍이 생명이다. 사리를 건져 먹고 말캉한 밀떡을 먹는다(다년간 떡볶이를 먹으며 표본 조사를 했는데, 떡볶이 좀 먹는다 싶은 사람들은 밀떡을 선호한다). 


즉석떡볶이집이 대개 그렇듯 매운 맛보다 단맛이 많이 난다. 고춧가루를 많이 써서 깔끔하고 거부감 없는 맛이다. 

뜨겁고 달콤한 떡볶이 맛이 질릴 때쯤 얇게 썰어 오독오독한 식감이 나는 단무지를 먹는다. 후후 불어 먹는다. 삶은 계란도 맛있다. 반으로 쪼개 떡볶이 국물과 함께 떠먹는다. 밥을 비빌까 하다가 디저트를 먹기 위해 한 번 미뤘다. 다음에 또 오지 뭐.      



가격도 참 착하다. 1인분에 2500원이라니. 가게와 맛만 타임머신을 탄 게 아니라 가격도 타임머신 레벨이다. 요즘 죠스떡볶이가 1인분에 3000원인 시대인데… 

만 원 한 장으로 배불리 먹는다니 착한 가격이 아닐 수 없다. 돈 내면서 이렇게 기분 좋은 게 얼마만인가!      


떡볶이를 먹고 근처 시장으로 향했다. 시장을 한 바퀴 돌며 구경하고 방금 튀긴 꽈배기를 하나씩 물었다. 뜨거운 꽈배기에 설탕을 한 바퀴 굴리고 종이컵에 넣어준다. 먹으며 주차한 장소까지 어슬렁어슬렁 걸어간다.   


   

엄청 괜찮은 화요일이다.      






오래된 집들은 맛있다. 
   
1년 이내 문을 닫는 음식점이 50%고 5년 이상 살아남는 음식점은 30%라고 하는 시대다. 요식업계는 이렇게 경쟁이 치열하다. 그럼 이 수많은 음식점들 사이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뭘까. 
식품업계에 몸담은 이들을 만나 이 질문을 던지면 한결같이 가장 먼저 말하는 핵심은 '맛'이다. 오랜 시간 동안 고객들에게 사랑받는 음식점들은 뭐가 있을까. 이 글은 이런 궁금증에서 출발한다.

글을 시작하기 전에 ‘오래된’이라는 말의 정의를 고민했다. 
사전적 정의로 ‘오래되다’의 뜻은 아래와 같다.
[형] 오래-되다 ‘시간이 지나간 동안이 길다.’ 
   
한국에서 음식점이 15년 이상 되면 한 지역(동네)에서 터줏대감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더 오랜 시간 동안 운영된 가게들이 많긴 하지만, 일단 15년 이상 맛을 지켜온 가게들을 기준으로 삼는다. 맛과 서비스에 대한 평가는 각기 다를 수 있으나, 글의 성격상 최대한 경험에 의거해 작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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