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것은 맛있다
참새가 방앗간 지나가랴. 빵이 그렇게 좋은 빵덕후는 대전역에 들르면 꼭 성심당에 들른다. 항상 대전역 개찰구 앞 성심당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다(심지어 튀김소보로 결제 줄은 따로 있다). 대전역을 떠나는 이들 중 열에 다섯은 손에 따끈한 튀김소보로 한 상자씩을 들고 있다.
여름에 성심당을 찾으면 빙수도 같이 판매한다. 컵빙수는 속이 알찬 편이다. 기차 타고 올라가며 먹기 딱 좋은 사이즈에 바삭한 과자가 위에 올라가 씹는 맛도 있다. 더운 날, 서울 가는 기차 안에서 빙수는 좋은 주전부리다.
흔히 성심당을 얘기할 때 ‘프랜차이즈보다 더 대단한 빵집’이라는 말들을 많이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이야기가 있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2000년대 초반 성심당은 프랜차이즈 사업을 진행했던 적이 있다. 결말은 물론 배드엔딩이었지만(프랜차이즈 사업에 실패한 이후 성심당은 직영점을 운영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말이다.
내 초등-고등학교 내내 동창인 J는 ‘성심당집 딸’이었다. 대전 은행동의 성심당 본점이 아니라 동네에서 J의 부모님이 성심당을 운영하셨다-그 당시에는 맛집 블로그라던가 빵집이 그렇게 각광받던 시절이 아니라-나는 성심당을 그렇게 처음 가봤다. 그때 받은 인상은 ‘그냥 빵 맛있는 동네 빵집’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내가 대전 은행동 성심당에 가본 건 훨씬 후의 이야기다. KTX를 타고 대전역에 내려 익숙하게 광장을 지나 택시를 잡는다.
“기사님, 은행동 이안경원 앞으로 가주세요”
이안경원 앞에 내려 번잡스런 골목을 조금 걷다 우회전하면 성심당이 보인다. 성심당에는 항상 사람이 많다.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장사진이다. 튀김소보로와 부추빵만이 아니라 베이커리에 있어야 할 많은 빵들이 늘어져 있다. 가게 안에 줄이 5m이하로 있는 걸 본 적이 없다.
시식도 풍족하다. 직원들이 쉬지 않고 여러 종류의 빵들을 한 입 크기로 잘라 내려놓는다.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빵 고르면서 집어만 먹어도 배가 부를 지경이다. 빵 하나하나가 사이즈도 큼직하고 맛도 제대로다. 속이 부실하다거나 약소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하나하나가 배가 부른 느낌이 크다. 튀김소보로는 하나만 먹어도 배가 꽉 찬다. 달콤한 소보로 껍질과 단팥의 오묘한 조화라니. 거기다 방금 튀겨내 고소한 기름 맛이 일품이다.
프랑스 소설 중 하나인 ‘꼬마 니콜라’시리즈에는 뚱보 알세스트 이야기가 나온다. 알세스트는 항상 크로와상을 손에 들고 있어 언제나 버터 향 가득, 기름기 가득한 손을 갖고 있다.
튀김소보로를 오래 들고 있으면 아마 알세스트처럼 되지 않을까?
이런 풍부한 빵 맛은 성심당 본관에서 담당한다. 하지만 베이커리가 어찌 이런 빵만으로 이뤄지겠는가?
보기만 해도 눈이 즐겁고 몸이 배배 꼬이는 달콤~한 디저트들은 옆의 서양식 건물인 성심당 케익부띠끄가 담당한다. 케익부띠끄는 성심당 안의 판타지며 또 다른 페르소나다. 이 아름다운 건물 안에는 케이크, 타르트, 푸딩, 쿠키 등 온갖 스위츠(sweets)들이 꽉 차 있다. 여심을 잡기 딱 좋은 화려함이 이 곳에 가득하다. 마지막으로 갔던 5월의 케익부띠끄에는 스승의 날을 맞아 카네이션 아이싱 쿠키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돼 있었다.
내게 성심당이 매력적인 이유는 들를 때마다 새로운 메뉴가 나오기 때문이다. 보통 오래된 빵집들은 한 가지 메뉴에만 ‘올인’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성심당은 언제나 새로운 이미지를 내게 보여준다.
성심당에도 물론 주력 빵이 있다. 하지만 내가 성심당에서 가장 좋아하는 빵은 판타롱 부추빵도 아니요, 튀김소보로도 아니다. 바로 보문산 메아리다. 대전 중구의 보문산 이름을 딴 참으로 ‘대전스러운’ 이름의 빵이다.
돌돌 말려 있는 패스트리를 찢어서 먹다 보면 산 정상에서 휘감겨 오는 메아리가 절로 연상된다. 맛은 달콤하면서도 많이 달지 않다. 크기도 큼직해 나눠 여럿이 먹기도 좋다. 대전에서 떠날 때마다 꼭 사는 빵이다.
정신없는 빵 지름을 끝냈다. 성심당-케익부띠끄를 찍고 양 손에 빵과 디저트가 들렸다. 이제 근처 강가로 간다. 켜진 분수의 흩날리는 물보라를 보며, 삼삼오오 앉아 있는 커플들을 바라보며 푸딩을 뜯는다. 바닐라 맛 푸딩에 쌉쌀한 캐러멜 맛이 입안에 감겨든다.
무조건 달콤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쓰지만도 않다.
내 일도 좀 그랬으면 좋겠다. 사는 게 왜 이렇게 쓴맛만 나는지 요즘은. 하지만 푸딩도 쓴 맛의 캐러멜이 있기에 단맛이 더욱 두드러진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면서 기운을 낸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항상 변하고 새롭기에 더 맛있게 느껴지는 거겠지. 성심당의 빵도, 내 사는 모습도 그렇다.
오래된 집들은 맛있다.
1년 이내 문을 닫는 음식점이 50%고 5년 이상 살아남는 음식점은 30%라고 하는 시대다. 요식업계는 이렇게 경쟁이 치열하다. 그럼 이 수많은 음식점들 사이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뭘까.
식품업계에 몸담은 이들을 만나 이 질문을 던지면 한결같이 가장 먼저 말하는 핵심은 '맛'이다. 오랜 시간 동안 고객들에게 사랑받는 음식점들은 뭐가 있을까. 이 글은 이런 궁금증에서 출발한다.
글을 시작하기 전에 ‘오래된’이라는 말의 정의를 고민했다.
사전적 정의로 ‘오래되다’의 뜻은 아래와 같다.
[형] 오래-되다 ‘시간이 지나간 동안이 길다.’
한국에서 음식점이 15년 이상 되면 한 지역(동네)에서 터줏대감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더 오랜 시간 동안 운영된 가게들이 많긴 하지만, 일단 15년 이상 맛을 지켜온 가게들을 기준으로 삼는다. 맛과 서비스에 대한 평가는 각기 다를 수 있으나, 글의 성격상 최대한 경험에 의거해 작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