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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 Aug 26. 2016

과자 중의 과자 장충동 태극당_Since1946

오래된 것은 맛있다

일본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장충동에서 K와 만났다. K는 나보다 더 외식이나 음식에 대해 해박한 것은 물론 나와 꾸준히 몇 년간 디저트를 함께 즐겨 온 인물이다. K와 내가 이곳에서 만난 이유는 사실 태극당이 아니라 신라호텔 패스트리부티크에 가기 위해서다. 역에서 걸어 나와 신라호텔로 향하는 언덕길을 참 열심히도 올랐다.


“어이구… 역시 뭘 타고 갈 걸 그랬나 봐요”
"젊은 애가 운동 좀 하지 그러니"

패스트리부티크에서 카스테라와 클로티드 크림 같은 것들을 한가득 사서 언덕을 내려오다 뭔가에 홀리듯 태극당에 들렀다. 역시 호텔 베이커리와 이런 오너 베이커리는 또 다르지 암 그렇지! 손에 빵이 들려 있지만 중요하지 않아!
   
1946년 명동에서 처음 문을 열어 1973년 장충동으로 자리를 옮긴 태극당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옛날 호텔 로비 같은’ 이미지의 태극당은 2015년 12월 리뉴얼을 마치고 화려한 모습으로 부활했다.
사실 태극당을 리뉴얼 전에 가본 적이 없어서 뭐라고 말을 못 하겠다.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사진으로 접한 리뉴얼 전 태극당은 솔직히 빵집이라기보다는 들어가고 싶지 않은, 칙칙한 느낌이 많았으니까. 하지만 리뉴얼 이후 고풍스러우면서도 세련된 포지션을 잘 구축한 듯하다.


얘기가 좀 멀리 갔다. 나는 진열된 빵만 보면 이상하게 웃음이 난다. 실실 웃으면서 한 바퀴 진열장을 돌고, 빵을 몇 개 집어 들었다. 빵들이 대체적으로 세련되었다는 느낌보다는 몹시 투박하다. 사이즈도 크고 날렵한 장식도 없다. 맛도 크게 달지 않다.
새로운 메뉴를 많이 내놓기보다는 예전의 맛을 그대로 가져가는 느낌이 강하다. 사람들이 태극당에 대한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요인이다.
태극당 관련 기사를 읽어보면 “태극당 공장 직원들의 근속 연수는 보통 40년이 넘는다”는 대목이 있다. 나는 오랜 기간 빵을 만들어 왔다는 맛에 대한 자신감에 대한 발언이라고 해석한다.
   
대전 성심당에 튀김소보루와 부추빵이 있다면 태극당에는 모나카와 야채사라다빵, 버터크림빵이라는 시그니처 메뉴가 있다. 중간 중간 일관성 있게 태극당 모나카 등이 위생 관련 프로그램에 보도되는 불미스러운 일도 있었지만 말이다(그 때 본 장면이 잊히지 않아 지금도 태극당 모나카를 먹지 않는다). 메뉴들 모두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평가다.


빵을 계산하고 안쪽 커피숍에서 커피를 샀다. 희한하게 다들 비엔나커피를 찾는다. 그게 유명한가? 나중에 찾아보니 응답하라 시리즈에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해가 갔다.
하지만 나는 태극다방커피를 고른다. 특별한 맛은 아니다. 이름대로 차가운 다방 커피 맛이다. 원래 믹스나 캔커피 종류의 커피를 거의 먹지 않는데, 이런 데선 한 번쯤 마셔 줘야지! 하며 주문을 한다. 갈 때마다 이걸 마신다. 달달한 커피 맛이다. 단맛에 입이 짜릿하다. 늘 새롭다!



야채사라다빵은 가격도 가격이지만 속이 알차다. K와 반씩 나눠 먹었는데도 배가 든든하다. 거대하기도 해라. 햄버거나 모닝빵 같은 것들과는 또 느낌이 다르다. ‘샐러드’가 표준어지만 마요네즈에 버무린 저런 야채 샐러드는 ‘사라다’라고 불러야 입에 착착 달라붙는다.
사실 태극당에서 가장 맛있게 먹고, 다시 생각나는 메뉴는 따로 있다. 바로 태극당 몽블랑! 이름은 몽블랑이지만 밤 크림과 달게 졸인 밤, 금가루 같은 것이 붙는 밤 케이크 몽블랑과는 백만 광년쯤 거리가 있다.
태극당 몽블랑은 컵케이크에 옛날 맛이 나는 버터크림이 발라져 있고, 여기에 빨간 젤리가 올라가 있다. 세상에. 빨간 젤리라니(!) 이 빨간 젤리를 20년 만에 먹어보는 것 같다. 생일이 되면 케이크 위에 감질나게 올라와 있던 이 빨간 젤리를 아끼고 아껴 먹던 기억쯤은 다들 있는 거 아닌가요? 2016년에 빨간 젤리와 설탕으로 만든 장미를 케이크 위에 올려주는 곳은 아마 전국에 유일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태극당 빵 맛은 빵 맛보다는 추억의 지분이 크다. 요즘 베이커리에서는 새롭고 참신하며 화려한 빵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태극당처럼 1990년대에나 맛볼 수 있었던 빵을 2016년에 파는 곳은 대한민국 어느 시골에서도 찾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이것도 마케팅 전략의 일환이라면 꽤 성공적인 방편이다.

태극당은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에게는 향수, 나에게는 오히려 새로운 빵집이 됐다. 태극당은 리뉴얼 오픈한지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과자 중의 과자, 앞으로의 태극당이 기대된다.




오래된 집들은 맛있다.
   
1년 이내 문을 닫는 음식점이 50%고 5년 이상 살아남는 음식점은 30%라고 하는 시대다. 요식업계는 이렇게 경쟁이 치열하다. 그럼 이 수많은 음식점들 사이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뭘까.
식품업계에 몸담은 이들을 만나 이 질문을 던지면 한결같이 가장 먼저 말하는 핵심은 '맛'이다. 오랜 시간 동안 고객들에게 사랑받는 음식점들은 뭐가 있을까. 이 글은 이런 궁금증에서 출발한다.

글을 시작하기 전에 ‘오래된’이라는 말의 정의를 고민했다.
사전적 정의로 ‘오래되다’의 뜻은 아래와 같다.
[형] 오래-되다 ‘시간이 지나간 동안이 길다.’
   
한국에서 음식점이 15년 이상 되면 한 지역(동네)에서 터줏대감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더 오랜 시간 동안 운영된 가게들이 많긴 하지만, 일단 15년 이상 맛을 지켜온 가게들을 기준으로 삼는다. 맛과 서비스에 대한 평가는 각기 다를 수 있으나, 글의 성격상 최대한 경험에 의거해 작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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