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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 Aug 23. 2016

문배동 육칼_Since1980

오래된 것은 맛있다



온 세상의 술을 사랑한다하지만 있는 대로 다 마시는 건 아니다희석식 소주는 분위기 따라 일 년에 두어 번카스 같은 국산 맥주는 일 년에 열 번위스키와 칵테일전통주브랜디와인중국 술 까지… 가리지 않고 참 술을 좋아한다내가 봐도 나는 술을 참 맛있게 잘도 마신다세상사는 낙이 딱히 없는 사람이라 술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이상하게 술을 마시면 다음 날 쓰린 위장에 격렬하게 매운 것이 먹고 싶어진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수많은 술꾼 유전자에 '해장은 매운 걸로'라고 각인된 게 아닐까.
     
칼칼하고 빨간 국물이 땡긴다이럴 때 문배동 육칼집은 가장 완벽한 해답이라고 말할 수 있다대파 듬뿍 들어간 국물에 새빨간 기름이 떠 있다보기만 해도 위가 꿈틀거린다어젯밤 알코올로 적셔진 내 위의 개비스콘 같은 존재랄까(물론 의학적으론 절대 아니겠지만).
토요일 아침숙취에 찌든 부스스한 얼굴을 하고 집 밖을 나선다늦게 나가면 줄을 서야 한다꼭 개점 시간 맞춰 움직여야 한다. 아,걷기 정말 싫다이 날씨에 줄을 서면 숙취고 뭐고 기절해버릴지도 모른다. 어서 가야지.
  
허름한 건물 1층에 새롭게 단 간판만 이질적이다위치상으로 볼 때 이런 곳에서 장사가 되나?’라는 생각이 들 만큼 입지가 좋지 않다.심지어 옆에서는 엘리베이터 설치를 위한 공사를 한다하지만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곳에서 아침점심저녁을 해결한다조금만 늦어도 대여섯 명씩 줄이 생긴다대개 아저씨들이 많다여의도랑 삼성동마포에도 분점이 있고, 오래된 집이지만(가족 분들이 나눠 하신다고정작 다른 지점은 갈 일이 없었다포장도 가능한지라 들고 가는 사람들도 많다
  


들어서서 혼자 앉아 주문을 한다혼자 와서 북적대는 식당에 그냥 앉을 수 있나혼자 오신 아주머니와 합석을 했다
  
육개장 하나 주세요
  


꼭 육개장이라고 해야 한다육칼이라는 말 자체가 육개장+칼국수의 줄인 말이지만육개장을 주문해야 맛보는 면에 밥이 따라온다.이곳에서 육칼을 주문하면 밥이 안 나온다데쳐져 나온 칼국수 면을 빨간 육개장에 담근다뜨거운 츠케멘 같은 느낌이랄까
후추를 총총 뿌리고 후욱후욱후룹후룹고독한 미식가에 나오는 고로 씨가 이런 느낌일까후룩후룩 마신다면 한 입에 배추김치 한 입다시 면 한 입에 깍두기 한 입
  
면이 사라졌다그리고 공깃밥을 흔들어 육개장에 과감히 말아낸다국물을 대접 채로 들고 마신다국물은 새빨갛지만 맛은 의외로 마일드하다부드러운 고기 국물과 대파의 단맛이 느껴진다짭짤하고 얼큰한데 부드럽다니웃긴 말이지만 더 이상 나은 표현을 못 찾겠다
  
이제 통통하게 밥알이 분 육개장을 해치울 시간이다일단 자리에서 일어나 깍두기를 다시 셀프 리필한다우적우적우적우적후후,우적우적반복한다토요일 아침모르는 아주머니와 마주앉아 육개장을 먹는다
  
아가씨는 뭐 하는 사람이야?”
  
아주머니가 묻는다이야기를 들어보니 용산구 일대에 사는 미군 가족들에게 집을 렌트해주시는 일을 한단다딸이 꼭 내 또래라며 딸도 친구가 되면 좋을 것 같다고 하신다짧은 시간동안 이민을 다녀오고 딸을 키워내신 이야기를 쭉 들었다
다들 들어보면 평범한 삶은 없는 것 같다평범한 얼굴을 하고 길을 걷고 밥을 먹지만 그 안에는 각자 드라마 한 편씩이 들어 있다얘길 듣다 전화번호를 받았다부모님 연령대의 어른이 친구가 되자며 연락처를 주셨다기분이 묘하다.
  
물 몇 잔과 깍두기 두 접시로 육개장 풀코스를 마무리했다으어하는 목 깊은 곳에서 나오는 감탄사도 절로 나온다얼큰하다얼큰한데 뱃속이 따끈해진다육개장 국물이 쓰린 속을 살살 어루만진다
  
역시 술 마신 다음날의 개비스콘이다





오래된 집들은 맛있다. 
  
1년 이내 문을 닫는 음식점이 50%고 5년 이상 살아남는 음식점은 30%라고 하는 시대다. 요식업계는 이렇게 경쟁이 치열하다. 그럼 이 수많은 음식점들 사이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뭘까. 
식품업계에 몸담은 이들을 만나 이 질문을 던지면 한결같이 가장 먼저 말하는 핵심은 '맛'이다. 오랜 시간 동안 고객들에게 사랑받는 음식점들은 뭐가 있을까. 이 글은 이런 궁금증에서 출발한다.

글을 시작하기 전에 ‘오래된’이라는 말의 정의를 고민했다. 
사전적 정의로 ‘오래되다’의 뜻은 아래와 같다.
[형] 오래-되다 ‘시간이 지나간 동안이 길다.’ 
  
한국에서 음식점이 15년 이상 되면 한 지역(동네)에서 터줏대감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더 오랜 시간 동안 운영된 가게들이 많긴 하지만, 일단 15년 이상 맛을 지켜온 가게들을 기준으로 삼는다. 맛과 서비스에 대한 평가는 각기 다를 수 있으나, 글의 성격상 최대한 경험에 의거해 작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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