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미 Aug 18. 2016

신공덕동 신성각_Since1981

오래된 것은 맛있다


우리 짜장면 먹으러 가자! 
호기롭게 말하고 비 오는 날 그녀와 공덕역에서 만났다. 
‘신…성…가…ㄱ’
스마트폰으로 짜장면집을 검색하고 현재위치부터 목적지까지의 지도를 켰다. 분명히 이 길이 최단거리가 맞다 하는데, 왜 멀쩡한 길 대신 자꾸 매우 가파른 언덕과 계단만 나오는 것인지? 
변명은 해야겠다. 내가 체력이 없어서 이 길이 힘든 건 아니다. 그냥 힘든 거다. 거기에 비가 오고 신발은 더 무겁기만 하다. 입에선 힘들어서 침이 자꾸 흐른다.
     
“아가씨, 조금만 쉬었다 가면 안 될까? 죽을 것 같아”
“얼마 안 남았대”
“이 길이 내 길이 맞긴 맞는 걸까?”
“지도상으로 이 길이 맞는데”
“토할 거 같아…”
   
그렇게 도착한 중국집은 있지 말아야 할 곳에 있었다. 효창공원에서도 완전 끝자락, 꼭대기, 숙명여대 후문하고도 한참 더 올라가는 도로 한복판에 있다. 더 억울하게도 버스가 다닌다. 지도상으로 몇m 안되기에 그냥 걸었는데, 버스 탈 걸.
     
가게 입구에서 우산을 털고 벽에 써 있는 글을 읽었다. 그 글을 원문 그대로 소개한다.


지구촌에 살고있는
어떤사람이라도
단 한그릇
먹어보고
눈물을 흘려 줄 음식을
내 혼신의 힘을 다하여
만들고 싶다
21세기가 기다리고 있기에......
88년 10月 이문길


간짜장 두 그릇을 주문했다. 
비 오는 여름 날 언덕을 너무 고되게 올라 더위가 몰려왔다. 일단 자리에 앉자마자 찬물을 벌컥벌컥 마셔댔다. 이제야 주변이 보인다. 내 뒤에 있는 물고기 없는 어항에는 온갖 오래된 물건들이 가득하다. 삐삐, 지금은 돈 주고 구해야 할 구형 휴대폰, 88올림픽 기념품, 어항 속은 시간이 그대로 멈춰있다.
     
메뉴판도 특이하다. 중국집의 단짝인 이과두주, 공부가주, 빼갈, 못하더라도 희석식 소주와 맥주조차 없다니! 술과 탄산음료를 찾아볼 수가 없다. 짜장, 간짜장, 짬뽕, 우동, 울면, 군만두, 탕수육. 여기 메뉴의 전부다. 단촐하다.
     
수요일 낮인데다가 비가 오는데 좁은 가게 안은 꽉 찼다. 옆에서는 나이 지긋한 중년 아저씨 둘이 짜장면과 탕수육을 놓고 가위로 잘라 가며 먹고 있고, 그 뒤에는 혼자 온 이가 짬뽕을 마신다. 뒤쪽에는 우리 또래의 커플이 앉아 주방에서 수타로 면을 뽑는 사장님을 촬영하고 있다. 잠깐. 수타면?
     




서울에서 면을 직접 뽑는 중국집은 별로 없는데, 오랜만에 구경을 한다. 면이 배수로 늘어나고 있다. 시작은 두 가닥, 네 가닥, 여덟 가닥, 열여섯 가닥 서른두 가닥 예순네 가닥…
이리저리 휙휙 돌리고 던지고 꼬아대면 밀가루 반죽이 면으로 바뀐다. 신기할 따름이다. 좁은 주방에서 면부터 튀김, 짜장, 짬뽕까지 모든 메뉴가 휙휙 만들어진다.
     


나온 짜장면 맛을 논해보자. 평소에 먹던 달달한 느낌의 짜장면을 원하면 이곳은 좋은 선택지가 아니다. 아무리 방송에서 맛이 있네, 서울 몇 대 짜장이네 난리를 쳐도 입이 아니면 아닌 거다. 
     
짜장 맛은 달지 않고 시큼하다. 나이가 그리 많지 않지만 옛날 짜장면 맛이랄까, 집에서 엄마가 만들어주는 짜장 맛이랄까. 수타면 또한 굵기가 제멋대로다. 끊어지기 직전의 얇은 면발부터 우동같이 씹히는 면까지… 첨가제를 사용하지 않아 그런지 면발은 미끈하지도, 고르지도 않다. 오히려 도삭면이 일정할 정도. 
야채를 듬뿍 쓰고 볶아낸 간짜장 특유의 아삭함은 좋다. 하지만 즉각적으로 ‘아! 이 맛이야!’ 하는 맛은 아니다. 집에 가서 자려고 누우면 생각 날 것 같은 맛이다. 꽤 건강하다. 자꾸 당긴다. 순식간에 숟가락까지 써서 간짜장 한 그릇을 바닥까지 비웠다. 
     


열흘 쯤 뒤 다시 한 번 신성각을 찾았다. 옆자리에서 먹던 탕수육이 눈에 아른거려 다시 한 번 이곳을 찾았다. 이번엔 탕수육에 짜장면이다. 면과 재료의 조화는 간짜장보단 짜장면이 입에 더 붙는다. 탕수육이 꽤 맛있다. 폭신폭신한 튀김옷에 케첩을 쓰지 않은 하얀 소스가 부어져 나온다. 한구석에 살포시 얹힌 양배추와 케첩이 예스럽다. 고기 사이에 튀겨진 감자도 맛있다. 하나씩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얼마 뒤 그녀와 전화를 했다. 그녀도 언니와 어머니를 모시고 신성각에 다시 방문했다 한다. 
반응이 재밌다. 그녀와 그녀의 언니는 맛있게 먹었지만 어머님이 별로라고 하셨다고. 그녀 언니의 반응이 걸작이다. 
     
“원래 옛날 사람들이 옛날 맛 싫어해” 
   
신성각은 전통의 맛이라기 보단 추억의 맛, 추억의 맛보단 정성의 맛, 정성의 맛과 철학의 맛이랄까.먹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기술이 훌륭한 장인이라기 보단 마인드가 멋있는 사장님.
                                                   







오래된 집들은 맛있다. 

     
1년 이내 문을 닫는 음식점이 50%고 5년 이상 살아남는 음식점은 30%라고 하는 시대다. 요식업계는 이렇게 경쟁이 치열하다. 그럼 이 수많은 음식점들 사이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뭘까. 
식품업계에 몸담은 이들을 만나 이 질문을 던지면 한결같이 가장 먼저 말하는 핵심은 '맛'이다. 오랜 시간 동안 고객들에게 사랑받는 음식점들은 뭐가 있을까. 이 글은 이런 궁금증에서 출발한다.

글을 시작하기 전에 ‘오래된’이라는 말의 정의를 고민했다. 
사전적 정의로 ‘오래되다’의 뜻은 아래와 같다.
[형] 오래-되다 ‘시간이 지나간 동안이 길다.’ 
   
한국에서 음식점이 15년 이상 되면 한 지역(동네)에서 터줏대감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더 오랜 시간 동안 운영된 가게들이 많긴 하지만, 일단 15년 이상 맛을 지켜온 가게들을 기준으로 삼는다. 맛과 서비스에 대한 평가는 각기 다를 수 있으나, 글의 성격상 최대한 경험에 의거해 작성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