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제주편>>을 읽다가 강요배의 <<풍경의 깊이>>에 실린 그림까지 보고 있으니 제주에 가고 싶다. 언제 가도 좋은 곳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다. 어느 11월에 그곳에 갔다가 종잡을 수 없는 날씨에 된통 당하고는 한동안 가고 싶지 않았다. 정신없이 부는 바람은 늦가을보다는 겨울에 더 가까웠다. 바람에 흩날리는 빗방울이 닿을 때마다 체감 온도가 1도씩 내려갔다. 하지만 날씨보다 더 힘든 건 낮게 내려앉은 어둠이었다. 흐린 날씨로 낮인데도 하늘과 바다가 온통 새까맸다. 파도에 닿아 반들거리는 먹빛 바위가 곧 무언가를 삼킬 것처럼 다가왔다. 며칠을 그렇게 보냈더니 나도 자꾸 가라앉았다. 그곳을 쉽게 떠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답답했다. 어딘가에 갇힌 것처럼. 그 기억이 오래 남아 제주는 가고 싶은 여행지에서 잠시 물러나 있었다. 그 후 모임에서 몇 번 가긴 했지만 내게는 유명한 관광지일 뿐이었다.
제주를 조금 다르게 만난 건 작년 가을이었다. 친구가 한라산에 가자고 했다. 나는 산을 타는 걸 싫어한다. 주위에 산을 좋아하는 이들이 많아 할 수 없이 다니긴 하지만 헉헉거리며 땅만 보고 올라가 잠깐 정상을 찍고 또 구르다시피 내려와야 하는 일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한라산은 지금 아니면 안 될 거 같아 찬성했다. 산을 좋아하는 o 샘이 한 말이 떠올랐다. 카톡 프로필에 올린 사진을 보고 주말마다 산에 가느냐고 물으니 “저 요즘 산을 정리하는 중이에요.”라고 한다. 자신이 지금 오를 수 있는 높은 산부터 차례로. 참 쓸쓸하면서도 멋있는 말이다.
나는 정리할 것도 없는 하수 등산객이지만 한라산은 가 보고 싶었다. 등산 준비는 출발 전부터 요란했다. 히말라야에서도 끄떡없을 등산복, 발목을 잘 감싸주는 등산화에 스틱까지 샀다. 그리고 중년의 몸을 받쳐줄 갖가지 진통제와 압박 테이프를 가방에 잔뜩 넣었다. 여자 다섯 명의 등산 수준이 상중하로 다 달랐다. 난 당연히 하중의 하였다. 그래도 그들이 날 끼워 주는 건 중도에 포기하지 않는 것이 대견해서다. 도착 첫날은 너무 피곤할 거 같아 둘째 날 산에 오르기로 했다. 등산 수준 최상위가 새벽 네 시에 출발한다고 알렸다. 우리는 부담감에 좋아하는 술도 거르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여기저기서 울리는 알람에 일어나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빈속에 다들 진통제를 털어 넣고 발목, 무릎에 압박 보호대를 하고 종아리에는 배구선수들처럼 테이프를 덕지덕지 붙였다. 뼈가 부러져도 꼿꼿하게 서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멀어도 완만한 한라산 동쪽 코스인 성판악 탐방로에서 출발하기로 했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벌써 주차된 차가 많았다. 입구에서 신분을 확인하고 어두운 숲길을 헤드 렌턴에 의지한 채 걷기 시작했다. 지난밤 비가 왔는지 바닥은 물기가 많았다. 그러나 현무암의 오돌토돌한 표면 때문에 미끄럽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니 어둠 속에서 들리는 작은 소리가 점점 모습을 드러냈다. 팔에 스치며 사그락거리던 조릿대가 초록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한라산은 돌부터 나무까지 육지의 산과는 결이 달랐다. 둘레길을 걷듯 느긋하게 보고 싶었지만 코스마다 도착 시간이 정해져 있어 걸음을 재촉해야만 했다. 높이 올라갈수록 기온이 낮아져 백록담 정상 부근에서는 패딩점퍼를 입고도 몸이 떨렸다. 안개가 잔뜩 끼어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거의 기다시피 정상에 도착하니 정상 표지석에서 기념 촬영을 하려는 사람들의 줄이 족히 100m는 넘어 보였다. 줄 서는 걸 포기하고 백록담을 보러 갔다. 아무것도 없다. 하얗다. 검은 섬이 하얀 물방울에 들어가 버렸다.
그때 사람들의 박수 소리와 환호성이 들렸다. 표지석 앞에서 남자가 무릎을 꿇고 여자에게 반지를 내밀고 있었다. 와, 프로포즈를 한라산 정상에서 한다고? 멋지다. 멍하니 보고 있는데 “미친년, 왜 울고 지랄이야?”라며 옆에 있던 언니가 한마디 한다. “슬프잖아.” 의지와 상관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너무 좋아서 슬펐다. 그런 기분이 있을까? 이제 내게 제주는 그런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