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물기를 싹 뺀 바람이 불어오고 온통 푸르던 곳이 초록의 빛을 날리기 시작하면 내 안의 여름을 빼고 싶어진다.
“여보, 드라이브 가자!”
“어디로?”
“글쎄, 어디든. 나 가을 타잖아.”
“뭐? 가을만 타냐? 봄도 타고 여름도 타지. 추워서 나가기 싫은 겨울만 빼고.”
“크크크, 하하하.”
그런 것 같다. 솔직히 겨울도 탄다. 추워서 나갈 엄두가 안 나면 뜨거운 커피를 가득 담은 머그잔을 난로 삼아 창밖 계절을 즐긴다. 그럼 모든 환절기를 타는 걸까?
유독 계절의 초입에, 두 계절이 공존하는 그 시공간을 좋아하고 그리워한다. 노을이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 여름과 가을 사이 저녁엔 매미와 귀뚜라미가 같이 운다. 시작과 끝을 알리는 그들의 열렬한 구애가 애잔하다. 긴 기다림 끝에 다다른 허무와 그 것을 모른 채 마냥 기다리는 존재들이 안타깝고 또 그들 때문에 설렌다.
바깥 온도에, 풍경에 변화가 오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스카프 날리며 외출하는 게 아니라 서랍장을 정리하는 것이다. 여름옷과 얇은 긴 소매 옷으로 뒤죽박죽인 서랍에서 옷을 잔뜩 꺼낸다. 올여름으로 할 일을 마친 작은아이의 짧은 반바지, 반팔 티셔츠는 따로 분류한다. 내년까지 버텨 줄 옷은 정리함에 차곡차곡 개어 넣는다. 긴 소매, 긴 바지로 공간을 채운 서랍장 귀퉁이에 한낮의 태양을 위한 반팔 티셔츠도 몇 장 개어 둔다. 두 계절이 머무는 시간엔 모든 게 공존한다. 서랍장 안의 옷도.
거실 창가에만 걸쳐 있던 아침 햇살이 성큼 식탁 앞까지 들어와 날개에 뿌연 먼지를 얹고 있는 선풍기를 비춘다. 어정쩡하게 서 있는 선풍기를 보며 멍해진다. 잘 듣지 않던 가요도 휴대폰이 뜨거워질 때까지 틀어 둔다. 인터넷 서점에서 제목이 내 마음 같은 책을 주문한다. 달달해서 좋아하는 믹스커피보다 향이 잔잔하게 퍼지는 원두커피를 내려 마신다. 바닥에 뒹구는 빛바랜 나뭇잎 앞에 멈춰 선다. 그렇게 가을은 내게 온다.
난 가을을 타는 게 좋다. 그 계절엔 온전히 내 감정만 보고 싶다. 그러나 눈물이 또르르 흐를 것 같은 발라드를 듣다가 갑자기 급한 일 있는 사람처럼 서둘러 설거지를 한다. 저절로 눈이 갸름해지게 하는 가을 햇살 아래 향기까지 감동인 커피를 마시다 ‘띠리리리’ 울리는 소리에 부리나케 세탁기 안의 빨래를 꺼낸다. 바닥에 뒹구는 낙엽에 멈춰선 걸음은 장바구니 든 손이 무거워 빛바래 가는 가을을 집어 들지 못한다.
바깥은 가을로 일렁이는데 난 온전히 마음도 몸도 싣지 못한다. 여름과 가을 사이에 멈춰 서 있는 선풍기처럼. 선풍기 날개 위에 내려앉은 먼지를 닦고 또 다른 먼지가 앉지 않게 잘 싸서 넣어 두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여름내 있던 자리에 세워 둔다. 내게 가을을 탄다는 건 어느 순간 꼭 해야 하는 일들 사이에 잠깐 멍하게 있는 것이 되었다. 짧은 계절을 떠나보내는 나만의 의식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