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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주

by 무심한 째까니

월요일에 글감을 받고 일주일 내내 끙끙거렸다. 국어사전에서 정의한 ‘재주’의 의미를 보고 나니 더 난감해진다. 무엇을 잘할 수 있는 타고난 능력과 슬기라는데.

“여보, 내 재주는 뭘까?”

“사람 열받게 하는 재주가 있지.” 큭큭, 그런가? 타고난 능력?

이제껏 내게 특별한 재주가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아이들이 자신들은 공부 말고는 할 게 없다고 나와 남편의 유전자를 탓하면 좀 미안해진다. 고만고만한 능력으로 살고 있다. 별 탈 없이. 가끔은 내 능력을 넘어서는 일에 도전하지만 끈기가 부족해 그만두기 일쑤다. 책장에는 그런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매일 입고 싶은 여자아이 옷>>, <<청송 뜨개실 작품>>, <<체계적으로 배우는 목공 DIY>>, <<오늘은 어반스케치>>...

누구나 그렇듯 시작은 열정적이다. 그러나 디자이너, 목수, 화가의 자질이 없다는 걸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나마 재봉틀, 공구 사용법을 익히고 가만히 서 있는 나무를 그릴 수 있다는 데 만족한다. 이렇게 부족한 끈기로 꾸준히 하는 게 딱 하나 있다. 글쓰기. 일정하게 천을 박는 일, 표시한 곳에 정확하게 못질하는 일, 명암을 살려 채색하는 일보다 쉽지 않은데도 한다.


지난겨울 아파트 앞에 뜨개방이 생겼다. 크리스마스쯤이라 가게 안은 알록달록한 털실로 만든 산타, 커다란 눈사람 인형 등이 놓여 있었다. 도전 정신이 또 일었지만 꾸욱 눌렀다. ‘안 돼. 다른 데 한눈팔면.’ 뜨개방 소품이 눈사람에서 시원한 코바늘 가방으로 다시 병아리색 스웨터로 바뀌었다. 여전히 집에 들어올 때마다 힐끗거리지만 아직 문을 열고 들어가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글을 열심히 쓰는 것도 아닌데. 어찌 보면 참 쓸데없는 노력이다.

지하 주차장에서 나오다 보니 꿀떡처럼 하얀 것들이 몽글몽글 매달린 채 반짝인다. 부드러운 온기가 느껴져 슬며시 웃음이 났다. 자그마한 나무에서 매화가 겨울을 밀어내고 있었다. 그냥 묵묵히 한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는 재주가 부럽다. 아니지. 추위를 견디느라 무진 애를 썼겠지.

재주가 ‘잘하는 타고난 능력’이 아니라 ‘잘할 수 있는 타고난 능력’이라 다행이다. 후자에는 왠지 가능성이 느껴진다. 똑같은 매화나무도 각기 다른 꽃망울을 터트리는 것처럼. 내가 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두고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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