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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가는 시간

책상

by 무심한 째까니

예쁘고 싼데 짱짱한 녀석이라야 해. 그렇게 고심 끝에 골랐다. 쇼핑 앱에서 다른 사람들이 올려 둔 사진까지 꼼꼼하게 보고 장바구니에 며칠 동안 묵힌 후에 결제했다. 내게 보기 드문 심사숙고하는 자세로. 주문서가 들어오면 만들어서 배송까지 15일에서 30일쯤 걸린단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건 아니지만 특별한 물건을 사는 것 같다. 명장이 만든 작품처럼. 인생 두 번째 책상이 어느 외국 장인의 손에서 만들어져 내게 도착할 날을 기다렸다.

지난여름 공부방을 정리하면서 10여 년 동안 내 책상이었던 커다란 탁자를 지인에게 보냈다. 일을 그만두는 것도 손때가 묻은 물건을 보내는 일도 시원섭섭했다. 거실이 제 역할을 찾으면서 자연스레 작은아이가 책상으로 쓰던 거실 탁자도 제 위치로 돌아왔다. 그래서 작은아이가 큰아이 방으로 옮기기 전까지 쓰고 나서 내 것이 될 책상을 사야 했다. 큰아이가 고3이라 작은아이가 그 방을 고스란히 물려받고 작은아이 방은 내 서재로 쓸 예정이다.

어린 시절, 단칸방에 늘 따라다니던 책상이 있었다. 그게 처음으로 온 날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내가 사 달라고 졸랐던 물건은 아닌가 보다. 집을 채우고 있는 다른 물건처럼 어느 날 불쑥 엄마의 충동에 못 이겨 생겨난 결과물일 것이다. 그래도 좋았다. 나무로 된 묵직한 책상과 의자는 내 공간이었다.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소중하고 잡다한 보물을 넣을 수 있는 수납까지 갖춘 완벽한 방이 생긴 것이다. 처음 얼마간은 신나서 책상에서 많은 일을 했겠지? 아마도. 솔직히 잘 기억나지 않는다. 밥상에서 숙제했던 기억이 더 많은 걸 보면 바라보기에만 좋은 물건이었나 보다.

외국 장인이 부지런히 손을 놀렸는지 주문하고 일주일 만에 배송한다고 문자가 왔다. 잠깐 외출한 사이 남편이 택배 왔다고 전화로 알려 줬다.

“무슨 배송비가 4만 원이나 해?”

“아, 조립하고 설치까지 해 줘서 그래.”

“뭐? 그냥 가라고 했는데.”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을 싫어하는 남편은 배달 기사의 친절이라 여겨 거절했다. 결국 남편과 내가 조립해야 했다. 배달 기사가 10분이면 끝날 일을 둘이 30분에 걸쳐 끝냈다. 조립은 어렵지 않았는데 일일이 조이고 맞추는 데 시간이 걸렸다.

작은아이 방에 놓고 보니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컸다. 너무 내 취향으로 골랐는지 아이 물건과 어울리지 않아 생뚱맞아 보였다. 어차피 내 거니까 그런 건 별 상관이 없었다.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책상을 강제 대여받은 사람이 함부로 쓰는 게 신경에 몹시 거슬렸다. 지우개 가루, 자잘한 쓰레기 뭉치에 음료수 자국까지. 아이가 학교에 가면 곧 돌려받을 소중한 책상을 닦고 또 닦았다. 조금만 기다려.


그렇게 반년 후 우린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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