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채원아, 예린이는 잘 만나고 들어갔어?
엄마는 점심때쯤 집에 왔어. 추워서 쑥은 많이 못 캤어. 찬바람이 산비탈로 계속 몰아쳐 불어서 눈도 시리고 콧물도 나서. 산에 매화가 벌써 지고 벚꽃이 여기저기 보여. 그런데도 춥다. 엄마는 이상하게 겨울보다 3월이 더 추운 거 같아. 학교 다닐 때가 생각나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어. 새 학년이 바뀌는 그 낯선 시간이, 남겨진 겨울 찬기와 만나서 더 힘들었거든.
너는 엄마와 다른 3월을 보내고 있는 거 같아서 좋아. 낯선 도시를 즐길 줄 아는 청춘이 부럽네. 그곳에 남겨 두고 올 때는 걱정이 많았는데 가벼운 포옹으로 작별하는 너를 보며 안도했어. 서운하기보다는 왠지 세상을 씩씩하게 잘 살 거 같은 듬직한 어른이 가냘픈 네게서 보였거든. 대학 보내기 전보다 네 걱정을 더 안 하는 거 같아. 전에 네가 했던 말 생각나?
“내가 집 떠나는 걸 너무 좋아하지 않았으면 해요.”
“그럼 헤어질 때 우는 게 좋아?”
“아니요! 그건 더 싫어요.”
채원아, 엄마도 그래. 네가 집을 떠나는 걸 너무 신나 하는 것도 그렇다고 혼자 살아가는 날을 무서워하거나 힘들어하는 것도 원치 않아. 그런 면에서 우린 거울처럼 똑같은 듯 또 아주 다르지. 엄마는 너희들을 키우면서 내 약한 부분을 닮지 않았으면 했어. 엄마와 아빠의 유전자를 안고 태어났지만 너는 우리와 다른 새로운 존재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 노력했어. 그래야 아프지 않을 거 같았어. 나와 다르게 살아갈 테니까. 엄마가 되고 알았어. 아이가 몸이 아픈 것보다 마음이 다치는 일이 더 견디기 힘들다는 것. 그러나 너는 그 시간을 묵묵히 보냈어.
저번 주에 시의회 의원 재선거 인명부가 왔는데 내 이름 아래 네가 있는 거야. 신기하더라. 2.3kg로 세상에 태어난 아기가 시민이 된 거잖아? 인간이 동물 중 가장 늦게 독립하는 개체라는데 20년이 왜 이렇게 빠르지? 네게는 엄청나게 길었을 시간을 보내고 건강한 시민이 된 걸 축하해. 그리고 고마워.
네가 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어서 깜짝 놀랄 때가 있어. 내게서 내 엄마가 그리고 네게서 내가 보이는 일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몰라. 하지만 그런 일은 가끔이면 좋겠어. 엄마는 외할머니처럼 살고 싶지 않았어. 현명하고 다정한 엄마가 되고 싶었는데 이제 돌아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은 거 같아. 내 일이 아니면 무심하고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할 때 씁쓸해지곤 해. 닮고 싶지 않았는데. 알고 있으니 다행인가?
네 거울에는 내 좋은 모습만 보였으면 좋겠어. 너와 똑같이 생긴 예쁜 입술 같은 것들만. 하하. 이번 주는 춥다니까 옷 따뜻하게 입고 다녀. 3월은 심란하게 추운 달이야. 감기 조심하고 조만간 만나.
사랑해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