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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할게

운동

by 무심한 째까니

‘하루 만보 걷기, 84 걸음, 2kcal, 45m’ 핸드폰 액정에 뜬 문구를 가만히 들여다 본다. 지금 시간이 오후 다섯 시 23분이니 좀 심하긴 하다. 입원 환자보다 더 안 움직인 거 같다. 일요일이라 늦게 일어났다. 핸드폰을 들고 거실 소파에 다시 누웠다. 다른 식구들은 자는지 조용하다. 창밖에 배추흰나비처럼 하얀 꽃잎이 날아오른다. 바람 따라 솟아올랐다 부드럽게 떨어지는 벚꽃잎이 햇살에 선명하다. 날씨 좋네.

밥 먹고 집안일하고 나니 나가기 어중간한 시간이 되었다. 둘레길이라도 한 바퀴 돌걸. 때늦게 후회한다. 파스를 붙인 어깨를 몇 바퀴 돌리고 목도 이리저리 움직여 본다. ‘숨쉬기 운동 말고 진짜 운동 좀 해.’라고 만날 때마다 잔소리하는 친구 말이 맴돈다. 운동, 정말 싫어한다. 내 돈 내고 등록한 운동은 20년 전 헬스클럽과 몇 년 전 저 친구 따라 다닌 요가 학원이 다다. 두 운동을 다닌 기간이 아마 3개월이 좀 못 될 거 같다. 그리고 계절별로 서너 번 둘레길을 돈다.

요즘 그럴 나이가 되었는지 모임에 나가면 다들 운동 하나쯤은 하고 있다. 열을 내며 운동 얘기하는 이들 사이에서 나는 숙제를 미뤄 둔 사람이 된다. ‘지금부터 근육을 만들어 늙을 때 쓰는 거지.’, ‘근력 운동을 해야 해.’, ‘갱년기를 잘 보내려면 운동이 필수야.’ 그런 얘기를 듣고 있으면 내 근육에 미안해진다. 마음과 몸이 함께 움직이면 좋을 텐데. 미안한 마음과 달리 몸은 좀체 그럴 생각이 없으니.

운동 안 하고 건강하게 사는 방법은 없을까? 없다. 그래서 섬진강 꽃길 마라톤 5km에 참가 신청서를 냈다. 몇 년 전에 해 보니 걸어도 돼 가벼운 마음으로 신청했다. 일주일 내내 운동하는 것과 일주일에 2, 3일 하는 것이 효과 면에서 별 차이가 없다고 한다. 듣던 중 반가운 말이다. 나는 꾸준히 하는 것에 약하다. 그게 운동이라면 더욱 더. 다음 주에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니 5일은 내 근육에 사과하지 않아도 되겠다. 그 다음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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