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귀뚜라미가 사는 것 같은데….”
어제저녁 남편의 뜬금없는 말에 ‘무슨?’하며 흘러 넘겼다. 5층 높이까지 나는 녀석이라면 모를까? 하긴 얼마 전엔 건조대 빨래에 나뭇가지 같은 게 붙어 있어서 손으로 집으려다 흠칫 물러났다. 자세히 보니 갈색 사마귀였다. 옷걸이에 옮겨 붙게 해 창밖으로 톡 털어내니 날개를 펼치고 한참을 날아갔다. 날개가 생각보다 커서 놀랬는데…, 귀뚜라미도 날개가 있던가?
‘찌르르 찌르르 찌…….’
그런데 이상하다? 해질 무렵이면 울어대던 녀석들인데 아침부터 익숙한 소리가 들려온다. ‘설마?’하면서 소리가 들리는 안방 베란다로 향했다. 내 발소리에 아니면 움직임이 내는 진동에 놀랐는지 소리가 뚝 멈춘다. 조심히 쪼그려 앉아 화분들 틈 사이를 유심히 쳐다봤다. 움직임이 없자 또 울어대기 시작한다. 넓은 잎사귀를 꼿꼿이 세운 고무나무 뒤인 것 같아 확인하려고 일어서니 소리가 멈춘다. 귀신같은 녀석이다. 다시 앉는다. 또 운다. 그러길 몇 차례 쪼그려 앉은 발에 쥐가 나려 할 때쯤 녀석도 나도 포기했다.
귀뚜라미가 다시 나타난 건 저녁 설거지를 하고 있을 때였다.
“엄마, 이리 와 봐요.”
딸아이가 다급하게 안방에서 불렀다. 방으로 들어가자 안방 화장실 앞은 대치 상태다. 남편은 칫솔을 든 채 안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고 딸은 화장실 문을 사이로 바깥쪽에, 그리고 그 사이 발판 위에 그 녀석이다.
새끼손가락 두 마디 정도로 작은 녀석이다. 아침에 날 쪼그려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시킨 녀석치고는 너무 꼬꼬마다. 남편과 딸은 녀석이 어디로 튈지 몰라 얼음 상태이고 녀석은 사랑스러운 강아지가 주인을 기다리는 모습으로 남편을 보고 있다.
귀엽다. 이 상황이, 그리고 녀석이!
햇살이 그늘진 곳곳에 온기를 안기던 봄날, 새로 생긴 미용실 앞에서 아저씨가 머그잔에 든 물을 길바닥에 가만가만 붓고 있었다. 컵 안이 비자 다시 안으로 들어가더니 또 물을 가져와 조심히 붓는다. 길 건너편에 서서 그 모습을 보며 뭘 하는 건가 싶었다. 아저씨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고 나는 길을 건넜다. 아! 이거야? 가게 앞 보도블록 틈을 빼곡히 메운 자잘한 이끼가 물기를 머금은 채 물방울을 대롱대롱 매달고 있다. 물을 주고 있었던 거야? 그 순간 마음 한편이 몽글해졌다. 지금처럼….
난 티슈를 가져와 조심히 녀석을 감쌌다. 지쳤는지 녀석도 움직이지 않았다. 오므린 손 안에서 작은 몸이 부서질까 재빨리 창가로 갔다. 창문을 열고 티슈를 펼치니 작은 발로 하얀 종이를 움켜쥐고 있다. 5층 높이를 도약할 때 든든히 받쳐 줬을 튼실한 뒷다리가 한쪽만 있다. 짝을 찾아 시도한 모험에서 잃은 게 커 보인다. 손바닥 위에 펼쳐 놓은 화장지 위를 녀석은 벗어날 생각이 없는 듯했다. 다시 집안으로 튀어 들어올까 싶어 선들한 밤바람에 녀석을 날려 보냈다.
녀석이 사라져 버린 깊은 어둠을 한참 응시했지만 밤이 삼켜버린 녀석을 찾긴 쉽지 않았다.
‘밤 고양이처럼 가볍게 착지했겠지? 그랬을 거야!’
스스로를 위로하며 창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