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예술적 재능이 있다는 말은 믿어봐도 되겠죠?
사주팔자(四柱八字).
‘사주란 사람을 집에 비유할 때, 생년·월·일시를 집의 네 기둥으로 본 것이다. 간지는 두 글자씩 짝이 되므로 사주팔자(四柱八字)라고도 한다. 보통 운명이나 숙명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사주는 10 간과 12지를 조합하여 계산하므로 60 갑자, 즉 육갑으로 표현된다. 사주가 그 사람의 운세를 나타낸다고 보는 것을 명리(命理)라 하고, 사주를 분석·종합하여 그 사람의 길흉화복을 짚어보는 것을 추명(推命)이라 한다. '사주를 본다'는 것이 바로 추명이다. 추명을 통해서 그 사람의 숙명을 판단하고, 그 결과에 따라 흉을 피하고 길을 취하는 개운법(開運法)을 쓴다.’
백과사전에 사주팔자를 찾아보면 위와 같이 나온다. 나는 사주팔자니, 점이니 하는 것들을 믿지 않는 사람이다. 내가 태어난 일과 시간에 따라 이미 내 운명이 정해져 있다는 이야기를 쉽게 믿을 수 없는 것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믿기 때문이다. 사주팔자를 믿는다면 내 인생의 방향이 이미 정해졌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므로 지금까지 내가 해온 모든 노력들이, 지금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의 목적이, 의미가 무색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동생이 유명한 점집에서 점을 보았다. 동생이 생년월일과 이름을 말하자 그분이 대뜸 이렇게 말했다.
“아니, 본명을 말해줘야지. 바꾼 이름 말고 원래 이름을 말해”
내 동생은 몇 년 전에 개명을 했다. 개명한 이름에 익숙해져서인지 개명한 이름을 말했더니 바로 원래 이름을 말하라고 하더란다. 놀란 동생이 어떻게 알았냐고 되묻자 그분은 태연하게 "이것도 못 맞추면 어떻게 이걸로 밥 벌어먹고살겠냐"라고 대답하더란다. 동생이 잔뜩 흥분해서 내게 전화를 했을 때 나도 약간 소름이 돋았더랬다. 그래도 세상엔 별 일이 다 있고, 별 사람이 다 있구나 하고 넘겼더랬다.
올해 여름이 시작되기 전에 동생은 인터넷에서 유명하다는 사주풀이 전문가에게 사주를 보았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나는 바로 그 사주풀이 전문가에게 예약 문자를 보냈다. 인생에 대한 고민은 없지만, 내 앞날에 딱히 궁금한 게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혀 호기심이 생기지 않은 건 아니었다. 사주를 보기 며칠 전 동생이 겨우 임신테스트기로 임신을 확인했을 뿐인데 그분은 동생에게 아기가 보인다고 했고, 아빠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기지만 이제 더 이상 큰 사고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동생은 몇 주 뒤에 산부인과에서 임신을 확인했고, 정말 아빠는 올해 여름 여러 건의 사고를 당했었으니까 말이다. 여하튼 동생의 사주풀이를 듣고 난 후에 나도 예약을 했는데, 엄청나게 유명한 곳이라서 그런지 몇 달을 기다렸더랬다.
드디어 며칠 전, 내 차례가 왔다. 예약한 시간이 다가올수록 혹시나 안 좋은 이야기를 듣게 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되었다. 괜히 사주풀이를 한다고 했나 하는 고민을 했다. 동생은 나에게 결혼을 하는지를 물어보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나는 결혼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것에 대한 궁금증이 전혀 없었지만 내 주변인들은 궁금한 모양이었다. 어쨌든, 내 사주풀이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나의 유년시절과 십 대, 이십 대에 어려웠던 시기를 지나 삼십 대부터 조금씩 인생이 무난히 흘러가고 있으며 사십 대에, 오십 대에, 그 후의 인생은 흔히 말하는 말년복이 있는 사주라고 했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재산은 없어도 혼자 잘 벌어서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은 없는 사주라는 것이다. 다가올 미래의 이야기야, 좋게 이야기하기는 쉬우니까 내심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이 정도 이야기는 나도 하겠다는 반감을 가지고 듣고 있었다. 이년 전쯤이 마지막 연애였다는 것도, 사오 년 전에 결혼을 하려고 했다는 것도, 내가 건강상의 이유로 올해 초에 수술을 받은 부위와 이유까지 정확히 이야기를 꺼내자 나는 소름이 돋았다. 아, 정말 사주팔자라는 것이 있는 것인가. 내가 태어난 해와 달, 일시에 따라 내 운명이 이미 정해진 것인가. 이게 마냥 허황된 이야기는 아닌 건가. 혼란스러워졌다.
“선생님 혹시 지금 사무직이신가요? 그런데 선생님은 사무직보다는 창의적인, 예술적인 일을 하는 게 좋다고 나오거든요? 그런 일을 하면 대박이 날 거예요. 지금 선생님 사주를 보면 마흔 중반에는 대박이 한번 들어오거든요. 그건 무언가 예술적인 일을 해야 대박이 나는 거예요.”
“에? 제가요? 제가 지금 사무직이긴 한데, 취미로 글을 쓰긴 해요.” 떨리는 목소리로 내가 대답하자 그분은 경쾌하게 대답했다.
“그러니까요! 선생님. 계속, 꾸준히 하셔야 해요. 선생님은 창의적인 일을 해야 하는 것으로 나오거든요. 계속 하시면 성공하실 거예요!”
바쁘다는 핑계로,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내 재능에 대한 의심으로 글쓰기에 대한 의욕을 상실했었는데 내 사주에 예술적인, 창의적인 일에 대한 긍정적인 시그널이 있다는 해석에 나는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선생님, 선생님은 남자한테 기대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선생님은 혼자 살아도 전혀 문제 될 게 없는 팔자예요. 남자를 만난다면 남자를 키울 팔자예요. 흔히 말해서 남자 덕보고 사는 팔자는 아니라는 거죠. 그래도 내년이랑 내후년에 남자가 들어올 수 있어요. 선생님은 겨울에 태어난 남자를 만나면 좋아요. 연하를 만나실 것 같은데 좀 답답한 사람을 만나는 게 좋겠어요. 그리고 결혼을 한다면 자식 복도 좋아요. 근데 자식을 낳으면 선생님이 가진 재능, 즉 창의적인, 예술적인 재능은 빛을 못 봐요.” 나의 지난 연애를 되짚어보면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나는 나보다 연봉이 높은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고,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만난 적도 거의 없었다.
그분이 풀어준 내 사주팔자에 대한 해석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혼자 살아도 잘 살 팔자라는 것, 말년 복이 좋다는 것, 금전운이 있다는 것, 예술적인, 창의적인 일을 꾸준히 한다면 성공할 것이라는 이야기에 나는 최근 무언가를 잃어버린 기분에서 왜인지 곧 벗어날 것만 같았다. 나는 이 기쁜 소식을 엄마에게 전했다. 역시 엄마의 관심사는 내가 결혼을 하느냐 마느냐였다.
“엄마 나는 남자한테 기댈 팔자가 아니래. 남자를 만나면 남자를 키울 팔자라는 거야. 그러니까 결혼에 대한 기대는 접어.”
“야. 그거 순 거짓말 아니냐?”
“근데, 그 사람이 나 그때 아파서 수술한 것도 맞췄어! 그리고 내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내 재능이 빛을 못 본대. 엄마는 내가 자식 때문에 지금 내 재능이 바래지는 게 좋아?”
엄마는 말이 없었다. 생길지 안 생길지 모르는 손주 때문에 엄마 딸의 재능이 빛을 보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에 그건 싫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엄마! 나 말년 복이 있대. 그러니까 엄마 아빠는 내 옆에 붙어있어! 내 복을 나눠주겠어!”
“아이고, 지랄하네. 혼자 늙을 년이 뭐가 말년복이 좋아. 좋기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엄마도 내심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나는 아직도 사주팔자 풀이를 믿지 않는다. 내 사주에 어떤 좋은 기운이 있더라도, 어떤 재능이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그것에 대한 준비가 없다면, 내가 노력하지 않으면, 인생의 기로에서 나의 선택이 그 방향이 아니라면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태어난 날과, 시간에 따라 정해졌다는 운명보다 여전히 내 자유의지가 주어진 운명을 이기게 하고, 혹은 그 운명조차 쫓아가지 못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호기심으로 본 사주팔자 풀이에 기대지 않을 테지만, 나에게 예술적인 재능이 있다는 이야기에는 조금 기대 보려 한다. 조금 더 자신감을 가져보려 한다. 그리고 이전처럼 자주 글을 써보려 한다. 노력 없는 재능은 있으나마나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