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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단걸 Sep 27. 2021

당신의 밤은 어떤가요?

부디 잘 자요.




이런 썅.


불면의 밤이 시작되었다. 십여 년 전부터 시작된 불면증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나의 평온한 밤을 헤집어놓고 말도 없이 사라지곤 했다. 그러니까 십여 년 전부터 일 년에 한두 번씩은 잠을 자지 못하는 밤들이 나에게 찾아오곤 했다. 나처럼 앞날을 걱정하지 않으며, 떠나간 과거에 미련두지 않는 사람에게, 현재 직장생활에 대체적으로 만족하고, 가족들과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사람에게, 또 혼자 사는 삶에 만족하는 나에게, 강아지 두 마리와 함께 매일 평화로운 일상을 유지하고, 적당한 운동을 꾸준히 하는 사람에게 어쩌면 가장 어울리지 않는 것 중 하나인 불면증이 불현듯 찾아온 것이다.


아마 나의 오랜 친구들에게 내가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하면 다들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의 어린 시절은 잠과의 싸움이었다. 좁은 기숙사 방에, 이층 침대 8개가 꽉 들어찬 기숙사에서 함께 생활하던 내 친구들은 늦잠을 자서 기말고사 1교시 시험을 치지 못한 나 때문에 담임 선생님께 불려 가서 얼마나 고초를 겪었었던가. ‘같은 방 친구가 늦잠을 자면 깨워서 함께 학교에 와야지 어떻게 너희만 올 수 있냐’고 정작 늦잠을 자서 시험을 못 본 나보다 더 많이 혼났던 친구들에게 내가 불면증 때문에 잠을 자지 못한다고 한다면 얼마나 놀랄까. 대학교 때는 또 어땠나. 이제부터 달라지겠다면서 야심 차게 1교시 수업을 스케줄에 넣고도, 매일 지각하고 수업에 빠지는 나 때문에 대리출석을 해준 나의 동기들도 믿지 못할 것이다.


매년 몇 번씩 겪는 일이라 이번에도 가벼이 여겼다. 일주일쯤 뒤척이면 곧 불면의 밤은 끝이 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나고 이주일이 지나도 불면의 밤은 쉬이 물러가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검색한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보았다.


   

숫자 세기


    - 침대에 누워 나는 숫자를 세기 시작한다. 숫자를 세면서도 자꾸 실패를 걱정한다. 곁가지로 빠져나가는 생각들을 단도리하며 숫자 세기에 열중한다. 300쯤 세었을 때 나는 이 방법이 실패했음을 깨닫고 욕을 하고는 일어나 앉는다.  냉장고를 열고 이럴 때를 대비해서 사둔 우유를 전자레인지에 데워 마신다.


2. 심호흡 하기


  - 다시 침대에 누워 심호흡을 한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7초를 참았다가 다시 천천히 숨을 내뱉는다. 이번엔 실패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초조해진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숨을 들이마시고 참았다가 천천히 내뱉는다. 반복해서 심호흡을 하다 보면 머리가 몽롱해진다. 아, 이때 잠들 수 있다면! 잠깐 딴생각을 하는 사이에 다시 정신이 맑아진다. 썅. 이것도 실패.


3. 상상하기


  - 두 가지 방법을 모두 실패한 나는 마지막으로 상상을 시작한다. 나는 지금 잔잔한 호수에 누워있다. 내 온몸에 힘을 뺀 채로 오직 바람의 힘으로 호수에 떠있는 것이다. 눈을 감고 들리지 않는 바람소리와 새소리를 떠올린다. 내 귓가에 찰랑이는 물소리가 들려온다고 상상하는 것이다.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으므로 나는 아주 편안한 상태이다. 갑자기 꽃님의 코 고는 소리가 아주 크게 들려온다. 정신이 번쩍 났다. 후아. 시계를 보니 새벽 두 시. 젠장. 오늘도 4시간 이상 잠을 자는 것에 실패. 다시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냉장고를 열고 맥주를 마신다.


 네 시간을 잔 날은 성공한 날이었다. 두 시간을 겨우 자고 일어나 몽롱한 얼굴로 출근하는 날이 늘어갔다. 출근을 하면 밀려드는 업무에 정신이 없었다. 잠이 모자란 나는 몽롱한 정신을 깨우고자 커피를 들이부었고, 진통제를 달고 살았다. 밤늦게 퇴근해서 강아지들 밥만 먹이고, 급히 산책을 다녀오고, 오늘 밤은 좀 자겠다는 의지를 담아 나는 러닝화를 신고 집 근처 산책로에서 러닝을 했다. 한여름 밤, 러닝을 끝내고 집에 오면 내 온몸은 끈적하게 땀을 뒤덮였고, 나는 서둘러 샤워를 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침실로 가 누웠다. 몸은 무척 피곤하고 머리는 무거운데 이상하게 잠이 달아났다.


거의 한 달 가까이 이런 밤을 보냈다. 이렇게 살다가는 내가 미쳐버릴 것 같다는 생각에 심리상담센터를 찾았다. 나의 증상을 들은 상담사는 이토록 심한 불면증에도 그동안 병원을 찾지 않았다는 이야기에 놀란 눈치였다. 나는 잠에 들기까지의 시간이 많이 걸리긴 했지만 한번 잠들면 쉽게 일어나지 못했으므로 나는 이것이 치료를 받아야 할 만큼의 심각한 불면증이라 생각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나의 증상은 ‘입면 장애’라고 해서 불면증의 여러 양상 중 가장 흔하고 가장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증상이라고 했다. 우선 나의 불면증이 치료를 요하는 것이라는 사실에 나는 안도했다. 어쨌든 나아질 수 있는 희망이 있다는 것이 긍정적인 신호라고 생각이 되었다.


심리검사를 진행했다. 다행히 우울증은 없으니 약을 써보는 것은 미뤄보자고 했다. 그러므로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 먼저 수면환경을 개선해보기로 했다.


   

침실은 되도록 어둡게 만들기.


실내온도는 25도 미만으로 유지하기.


잠이 오기 전까지 침대에 눕지 않기.


잠들기 한 시간 전부터는 책도 읽지 않고, 티브이도 보지 않을 것. 그리고 조용한 음악을 틀어놓고 가만히 앉아 있을 것.




불면증이 시작되고 난 이후에는 운동을 하는 것도, 책을 읽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즐겁지 않았다. 내가 운동을 하는 이유는 내 몸을 혹사시켜 쉬이 잠에 들 수 있게 하는 것이었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게 되자 글자를 읽는 일도 어렵게 느껴졌으며 특히 내 생각을 가다듬고, 이야기의 구조를 짜고 흐름을 매끄럽게 이어가는 글쓰기는 어려운 일이 되었다. 간밤에 생성된, 얼마 되지도 않은 에너지를 회사에서 소진하고 집에 들어오면 기계적으로 강아지들 밥을 주고, 산책을 하고, 운동을 하는 일상이었다. 다행히 상담을 시작하고 치료를 받으면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되면서 나의 일상은 조금 더 활력이 붙었다. 주말에 낮잠을 자고 난 후에 상담을 받을 때 ‘혹시 낮잠을 자서 밤에 잠이 오지 않는 것은 아닐까’하는 나의 불안함에 지금 나의 상태는 잠이 오면 언제든 자 두는 것이 좋은 상태라며 잘했다는 상담사의 한 마디에도 내 마음의 구김이 조금 펴졌다.


어떤 날은 쉽게 잠에 들기도 했고, 또 어떤 날은 그 어떠한 방법도 통하지 않아 가만히 소파에 앉아있는 밤도 있었다. 아직도 밤이 오면 나는 불면의 밤이 무섭다. ‘오늘 밤도 잠에 들지 못하면 어떡하지. 오늘 밤은 부디 편히 잠에 들면 좋겠는데.' 그런 생각이 짙어지는 날을 보내고 있다. 물론 이런 고통의 나날들이 언젠가는 끝나겠고 또 언젠가는 불시에 찾아올 수 있겠지만 오늘 두 시간을 겨우 잤다면 내일은 네 시간을 잘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보기로 했다. 그리하여 언젠가는 '자야지' 하고 마음만 먹으면 바로 코를 골며 잠을 잘 수 있는 밤들도 찾아오리라는 믿음을 품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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