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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단걸 Sep 26. 2019

모단 걸이 되기까지

엄마 속 터지게 하는 내가 되기까지



 “하아, 그래 혼자 사는 게 제일 편하지 뭐” 전화선을 타고 흐르는 엄마의 목소리는 가라앉아있었다.  엄마가 알고, 나도 아는 누군가의 결혼 소식을 전하다 체념한 듯 당신 딸에게, 혹은 당신 자신을 다독이듯 한숨처럼 토해냈다. “응 엄마. 나 너무 편해. 혼자 사는 게 최고야!” 눈치 없게도 나는 엄마의 말에 동의하고 말았다. “야! 개소리하지 마. 결혼을 하든 동거를 하든 조만간 결판을 내!” 엄마의 울화 섞인 욕설과 함께 전화는 끊어졌다.


 나이 먹은 자식이 혼자 사는 모습을 보는 부모의 마음은 대체 어떤 것일까. 나에게 혼자 살지 말고 누군가와 같이 살라고 협박하듯 말하곤 하는 엄마는 실은 평생 단 한 번도 혼자 살아본 적이 없다. 그러면서 혼자 살면 외롭지 않으냐고, 지금 당장은 외롭지 않을지라도 마흔이 넘으면, 쉰이 넘으면 분명히 외로울 거라고 단정한다. 나중에 누가 너를 돌봐 줄 거냐고, 동생들한테 짐이 되면 어쩌냐고 화를 내다가도 내가 드린 신용카드를 쓸 때마다 ‘사위가 있었으면 이런 것도 눈치 봤을 텐데’ 하며 카톡으로 나에게 하트를 보내기도 한다. 


 스물네 살에 한 남자를 만났다. 소 눈같이 선한 눈을 가진, 항상 웃음을 머금고 있던 사람이었다. 워낙 소심한 탓에 나에게 말도 붙이지 못하고 주변만 맴돌던 사람이었던 지라 당돌하고, 발랑 까졌던 내가 먼저 만나자고 했다. 그 이전에도 나는 계속해서 연애를 해왔건만 ‘평생 함께해야지, 이 사람 없으면 안 될 것 같아’라는 감정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 친구와는 “우리 어떻게 살지? 결혼은 몇 살에 할까? 애는 몇 명을 낳을까? 명절에는 누구네 집에 먼저 갈까?”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이 친구가 없는 내 미래 따위는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를 만난 스물네 살 이후 헤어지게 된 서른까지. 

 나에게 이별은 갑작스레 찾아왔고, 모든 것이 두려웠다. 1년이나 다른 여자를 만나왔다는 그에게 “누구나 한 번쯤은 실수를 하는 거라며 그녀와 정리를 하고 나와 계획대로 결혼 준비를 하자”라고 매달렸다. 나는 그가 다른 여자를 만나 나를 아프게 했다는 사실보다 내가 계획했던, 내가 꿈꾸었던 미래가 사라져 버리는 게 더욱 견디기 힘들었다. 


 주말이면 그를 만나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걷고,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내던 내가 내 삶에서 그를 빼버리자 이제는 할 일이 없었다. 마음먹고 봐야지 했던 드라마도 이내 시시해지고, 재밌다고 입소문 난 책을 펼쳐도 한숨이 나왔다. 밥을 먹다가도 울고, 걷다가도 울고, 친구들이나 가족들과의 통화의 끝에도 눈물이었다. 내 걱정에 매일 눈시울이 붉어진다는 엄마 이야기를 동생을 통해 전해 들었을 때 나는 짐을 꾸렸다. 떠나야 했다. 혼자서 떠나야 했다. 단 한 번도 혼자 여행을 가본 적이 없었지만 이제는 혼자 모든 것을 해야만 했다. 혼자서 살아갈 내 미래를 그릴 때라고, 서른은 그러기에 참 좋은 시간이라고 나를 다독였다. 그렇게 나는 혼자서 밥 먹고, 혼자 걷고, 혼자 웃고 울었다. 1년에 한 번 이상은 배낭을 둘러매고 여행을 떠났고, 몇 번의 가벼운 연애도 했다. 내 예상보다 혼자 사는 것은 신나는 일이었다! 


 솔직히 이제는 내가 구축해 놓은 나만의 생활양식에 누군가를 들이는 일이 두렵다. 연애를 하더라도 내 공간에 장기 체류하는 것이 불편하다. 애인이 나에게 “주말은 너네 집에서 놀까? 지난번에 보고 싶다던 영화도 다운받아서 보고, 음식도 시켜먹으면서 편하게 있을까?”라고 물으면 보통은 온갖 핑계를 대서 밖에서 보는 것으로 결론을 내곤 한다. 소파의 내 자리에 그가 앉으면, 내가 커피를 마실 때 쓰는 컵에 물을 마시는 것을 보게 되면 불편해진다. 내가 왜 이 컵으로는 커피를 내려마시고, 저 컵으로는 물을 마시고, 차는 어떤 컵에 마시는지. 내 공간에서는 내가 쌓아온 아주 사소한 생활들 모두 다 나름의 배경이 있다. 그러나 내가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그러므로 내 공간에서는 너 또한 나와 같은 방법으로 행동해줘.라고 구구절절하게 말하기에는 민망하기 그지없는 배경일뿐이다. 혼자 사는 게 세상 편한 일이라는 것을 매일 느끼는 나인지라 누군가를 만나 서로가 살아온 문화를 이해하고, 교환하고, 내 삶의 한 귀퉁이를 내어주는 일이 이제는 두렵다. 


 서른 살의 내가, 혼자인 미래의 내가 두려워 한발 앞을 내딛지 못했다면 지금의 나는 혼자여서 행복한 나를 자발적으로 묶어두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혼자이기 때문에 집안 창고에는 전기 드릴, 장도리를 비롯한 이름도 잘 모르는 공구들이 가득하고 수도가 막힐 때, 전구가 나갔을 때, 누군가의 도움 없이 척척해내는 나를 보면 스스로가 대견하기도 하고 “그래 여기까지 왔구나” 하기도 한다. 혼자이든 아니든 중요한 건 내가 내 삶에 만족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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