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단걸 Jul 03. 2022

수영장에 혼자 가도 좋아!

길에서 만나면 꼭 아는 척할게요!



염소 냄새가 진하게 나는 수영장이 좋다. 아는 이 하나 없는 수영장에 쭈뼛쭈뼛 들어가 부끄러운 듯 조심조심 스트레칭을 하고, 머리에 걸쳐둔 수경을 내려쓰고, 내 차례가 되면 힘차게 수영장 벽을 발로 차 물속으로 나간다. 물속에서 코로 숨을 내쉬고 숨이 모자라면 고개를 돌려 입을 물 밖으로 내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팔을 올려 다시 물속으로 매끄럽게 넣고 물을 헤쳐나간다. 내 몸짓에 한참 집중하면 어느새 레인 끝에 도착한다. 수경 안에 물이 들어가도, 때로는 호흡 박자를 놓쳐 코에 물이 들어가 코가 따가워도 내 몸에 닿는 물의 감촉에 모난 성격의 나도 어느새 매끄러워진다.


수영 강습을 받은 지 십 년도 훨씬 지났다. 1년 넘게 수영 강습을 들었지만 나는 여전히 자유형 밖에 하지 못한다. 수영강사가 중급반으로 올려줘도 며칠 안에 또 초급반으로 내려오는 방식으로 1년 넘게 수영 초급반을 다녔다. 보통 초급반에서는 자유형을 배우니까 나는 자유형은 좀 잘하는 편 (초급반 수강생들과 비교하면)이다. 중급반에서 다음 코스인 평형을 배우면 이내 허리에 통증을 느꼈고 나는 다시 초급반으로 내려가야 했다. 처음 수영을 배우기로 결심한 것도 사무직 노동자의 고질병이라고 할 수 있는 허리 통증 때문이었다. 업무 중간에 잠깐 일어나 스트레칭을 해도 허리가 아픈 것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런 내게 수영을 권한 건 당시 회사의 이사님이었다. 허리에 좋은 지는 체감하지 못했지만 수영은 너무 재밌었다. 차가운 물이 주는 시원함이 좋았고, 물속에서 까르르 웃으며 함께 수영 강습을 듣는 수강생들과 친해지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숨 막히도록 더운 이번 주말의 한 낮, 나는 수영가방을 들고 집에서 차로 15분가량 떨어진 수영장에 갔다. 수영장을 찾은 건 거의 십 년 만이다. 자전거나 수영 같은 운동은 한 번 배워두면 평생 기억이 난다고 했던가. 적어도 나에게 그 말은 사실이었다. 처음엔 호흡 박자를 놓쳐 몇 번이나 멈춰 서서 다시 수영을 해야 했지만 이내 예전에 배운 것들이 기억이 났다. 그렇게 혼자서 대여섯 번을 왕복을 하고 났을까. 나도 모르게 수경을 올리며 “아, 힘들다.”라고 혼잣말을 했다. 내 말에 옆에 서 계시던 중년 여성분께서 웃으며 말씀하셨다.

“힘들죠? 나도 힘들어.”

“아, 네 너무 힘드네요. 제가 십 년 만에 수영장에 와서 더 그런가 봐요.”

“나도 한 오만 년 만에 온 거 같아. 자네가 먼저 출발해. 나는 자네 출발하면 뒤 따라서 출발할게.”

예상치 않게 수영 메이트가 생겼다. 그렇게  분과 나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수영을 했다.

“자네, 수영복 산거 티 내는 거야 뭐야? 택이 밖에 나왔네?”

“꺄르르르. 맞아요! 수영복 사서 오늘 첨 입었어요.!”

나는 웃으며 삐져나온 수영복 택을 안으로 집어넣었다.


“수영이 허리 통증에 좋대. 나는 몇 년 전에 허리 수술을 했잖아.”

허리 수술을 했다는 그분의 말에 곁에 있던 다른 중년 여성분들도

“저도 몇 년 전에 허리 수술했잖아요. 수영이 참 좋아.”

그에 질세라 나도 거들었다.

“저도 맨날 앉아있으니까 허리가 많이 아프더라고요.”

“다들 허리 아픈 사람들이니 이번엔 배영으로 해볼까? 자네부터 시작해.”

그분의 지도 아래 초보 레인에 있던 사람들 모두 나를 필두로 배영으로 수영을 했다.


혼자서 수영장에 가기 전에 다들 아는 사람들이고 나만 외톨이이면 좀 외롭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좀 했는데, ‘힘들다’는 내 혼잣말에 이토록 즐거운 사람들을 만날 줄이야. 후훗. 수영장 벽에 바짝 붙어서 좀 쉬고 있으면 어느새 그분은 내 옆으로 와서

“여기가 휴게소야. 그렇지? 사람들 다 여기서 쉬잖아.”

라며 말을 걸었고, 누군가가 수영을 끝내고 휴게소 구역으로 들어오면,

“휴게소에서 좀 쉬어요. 우린 이제 다시 수영해야지. 자네 먼저 출발하시게.”

하며 내 등을 떠밀었다. 그럼 나는 다시 까르르 웃으며 수영을 시작했다.


한 시간이 넘도록 물속에 있으니 더위에 지쳐 잃어버린 생기가 다시 도는 것 같았다. 나가야 할 시간이 다가와 나는 그분께 먼저 가겠다고 인사를 했더니 그분은 아쉬운 듯

“물속에서 좀 걷다가 가지 그래.”

하며 나를 붙잡았다.

“오늘은 충분히 운동을 해서요. 이만 가볼게요. 덕분에 오늘 너무 즐겁게 운동했어요!”

“그래요. 잘 가요. 나중에 길에서 만나면 우리 아는 척하기다!”

“하하핫. 넹! 그럴게요!”


수영장을 나서며 나는 뒤늦게 알아차렸다.

수영모를 거꾸로 쓰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앞으로는 수영장에 자주 가게 되리라는 것을.  



매거진의 이전글 일주일에 수박 한 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