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에 청와대라니!
경주로 수학여행을 가 본 적이 없다. 내 또래의 대부분은 경주로 수학여행을 갔었다지만 산동네 출신인 나는 서울로 수학여행을 갔다. 서울에 친인척이 없는 이상, 또 서울에 친인척이 있더라도 서울은 자주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고,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곳도 아니었다. 그건 우리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간혹 서울에서 열리는 결혼식에 참석할 일이 있었지만 동네 사람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올라갔다 내려오는 일정이므로 서울을 여행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지금 내가 서울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서울과 가깝다면 가깝다고 할 수 있는 경기도에 살고 있으므로 부모님은 우리 집에 오실 일이 있으면 나와 함께 서울을 가기를 원하신다.
코로나 이전에 나는 부모님과 둘째 동생 부부와 함께 서울 여행을 했더랬다. 우리 집에서 강남까지는 30분이면 닿을 거리이고, 나의 운전 실력으로는 강남권이 그나마 다닐만했으므로 롯데타워와 코엑스에 있는 아쿠아리움을 다녀왔더랬다. 부모님의 식성을 고려해서 남한산성 쪽에 있는 꽤 괜찮은 한정식 식당을 알아봤는데 아빠의 한마디에 나는 판교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차를 돌렸다.
‘맨날 먹는 쌀밥에 나물 반찬들을 뭐하러 여기까지 와서 먹냐’
나는 내가 짜 놓은 일정 중 식당 부분을 좀 더 실험적인 메뉴로 변경을 했더랬다. 그렇게 처음 간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아빠는 입맛에 맞지 않았으면서도 본인이 한 말이 있어서 그런지 별다른 불평을 하지 않았다. 물론 불평을 하긴 했지만. 나는 아빠에게 나중에 나랑 같이 이탈리아 여행을 가려면 지금부터 이탈리아 음식도 먹어봐야 한다며 아빠의 불평을 초기 진압했더랬다. 타이 음식점도 가서 향신료 범벅인 음식도 맛보았고, 롯데타워에서는 아찔한 높이에서 사진도 많이 찍었고 아쿠아리움에서도 정말 신나는 경험을 했더랬다. 그렇게 두 사람의 즐거운 표정을 보면서 이번 여행은 성공이라고 혼자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빠는 여행 막바지에 나에게 조금은 아쉬운 듯 말했다.
“다음엔 청와대 좀 가보자.”
“...? 어? 청와대?”
그래서 이번엔 부모님과 청와대를 다녀왔다. 나의 휴가라는 말에 부모님은 신이 나서 우리 집으로 오셨다. 나는 솔직히 청와대에 가고 싶지 않았다. 아무런 준비 없이 개방을 한 방식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관광지로의 매력도 찾아볼 수 없다고 생각했더랬다. 그래서 예약이 어렵다는 말에 일말의 희망을 품었다. 예약에 실패했으므로 다른 곳을 둘러보자고 할 참이었으나 청와대 예약은 식은 죽을 먹기보다 쉬웠다. 심지어 일정을 수정해야 했는데도 아주 여유롭게 수정이 가능했다. 어쨌든 부모님께서 그렇게 가고 싶다고 하셨으므로 나는 일정을 짜기 시작했다. 우리는 우선 이천 롯데 프리미엄 아웃렛에서 쇼핑을 하고 우리 집에서 1박을 하고, 아침 일찍 광역버스를 타고 청와대로 가서 관광을 한 다음 포시즌스 호텔에서 런치 뷔페를 먹고 청계천을 둘러보고 경복궁까지 둘러본 다음 집으로 오는 일정이었다.
마침내 청와대 투어를 하는 날 아침이 밝았다. 나는 광역버스의 배차시간과 출근시간의 교통체증이 걱정이 되어 지난밤 잠을 설쳐 피곤했으나 아침 일찍 일어나 씻고, 박막례 할머니의 비빔국수 삶아서 부모님과 간단히 아침식사를 마쳤다. 화장을 하면서 연신 핸드폰으로 광역버스 배차 시간을 확인했다. 모든 준비를 끝내고 지금 집에서 나가면 오래 기다리지 않고 버스를 탈 수 있을 것 같아서 이제 나가면 된다고 말했는데 갑자기 아빠가 화장실을 간다고 일어섰다. 아빠는 지난밤 치킨에 소주 한 병을 드셨는데 그게 탈이 난 것인지 광역버스 시간이 다 되었는데 화장실에서 도통 나오질 않았다. 초조했지만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으므로 다음 버스를 타도 되긴 했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더워지기 전에 나가고 싶었다. 그런데 아빠가 화장실 문이 안 열린다고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참고로 우리 집 문은 손잡이를 끝까지 돌려야만 열리는 방식인데 당황한 아빠는 문이 안 열린다고 잠금 버튼을 눌러버렸고, 나는 문 밖에서 문을 열려고 시도했으나 잘 열리지 않았다.
“아빠 잠금 버튼을 당기고 다시 손잡이를 끝까지 돌려보세요.”
“야야, 이게 안열리다니까네. 문이 왜 이모양이로.”
당황한 나와 아빠를 두고 엄마는
“야, 열어주지 마. 우리끼리 가자”며 농담을 했다. 겨우겨우 당황한 아빠를 진정시키고 다시 찬찬히 문 여는 법을 알려드렸다. 아직 광역버스는 정류장에 도착하기 10분 전이었다. 빨리 걸어가면 탈 수 있을 참이었다.
결국 바로 앞에서 광역버스를 놓쳤다. 우리는 정류장에 앉아 30분 넘게 수다를 떨었다. 달리 무언가를 할 수 없었으므로.
청와대에는 사람들이 넘쳐났고 너무 더웠으나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쉴 수 있는 공간이 없었고, 화장실 숫자는 너무 적었다. 준비 없이 개방한 흔적이 곳곳에 보였다. 내가 기대했던 포시즌스 호텔의 런치 뷔페는 첫 경험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이 뷔페가 10만 원 정도라는 것은 이미 알고 계셨지만 식사 막바지에 내가 13만 원 정도라고 하자 엄마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왜 진작에 말 안했냐”라며 서둘러 접시 가득 랍스터를 담아오셔서 나를 웃게 했다. 처음 가본다는 청계천도, 경복궁도 두 사람은 아이처럼 좋아했다. 입고 간 티셔츠가 땀으로 흠뻑 젖을 만큼 더웠지만, 너무 오래 걸어서 나조차도 다리가 아팠지만 서울 시내버스도 타보고, 서울 택시도 타본 경험은 부모님께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주었을 것이다. 다시 광역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빠는 뒷자리에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엄마가 뒤를 돌아보며 아빠에게 장난 삼아 말했다.
“자면 놔두고 내린다!” 아빠는 두 눈을 번쩍 뜨고는
“자기는 누가 잔다고 그래. 나 안자!” 그리고 이내 코를 골며 잠에 빠져들었다.
광역버스 값이 2700원이라는 것에 엄마는 저렴하다고 감탄했고, 현금을 내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으며, 경부고속도로에 버스전용차로가 있어 옆 차선 차들이 막히더라도 버스는 쌩쌩 제 갈길을 간다는 것에 신기해했다. 아빠는 세종대왕 동상 청소를 하는 것을 보아서 운이 좋다고 했고, 경복궁을 방문한 외국인들의 다수가 이 더운 날에도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는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아빠는 조만간 시간이 되면 친구와 함께 안동에서 KTX를 타고 청량리역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고 다시 KTX를 타고 안동으로 내려가는 KTX 여행을 할 것이라고 했다.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KTX를 타겠냐며. 나의 부족한 운전실력으로 이번 서울 여행 동안 내차로 편안하게 모시지 못하고 광역버스를 타고, 시내버스를 타고 이동하게 해서 좀 미안한 마음이 많았는데 의외로 이런 경험들이 부모님께는 여행의 또 하나의 장면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빨리 코로나가 종식되어 부모님이 그렇게 가고 싶다고 하는 하와이에도 내가 모시고 다녀올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우리가 저번에 가려고 했던 데가 남산이야? 남산타워인가 뭔가 거기에는 케이블카도 있지?”
어쩐지 다음 서울여행은 남산과 명동 일대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