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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단걸 Jul 31. 2022

영어는 어째서 이토록 어려울까.

영어 소설을 읽을수록 영어가 더 어려워지는 마법.


영어 소설을 읽기 시작한 지 몇 달이 되었다. ‘Normal People’이 처음이었다. 우연히 드라마를 보았고, 나는 바로 그 드라마의 원작 소설 번역본을 주문해서 읽었다. 그 책을 두 번 읽고 나자 나는 원문이 궁금해졌고 결국 원서를 사서 읽었다. 외국계 회사를 다닌 지 십 년이 넘었지만 나의 영어 수준은 외국계 회사를 다닌 시간만큼 늘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 한 문장 안에 내가 아는 단어보다 모르는 단어가 많은 문장도 있었고 여러 번 읽어도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문장들도 많았다. 그렇지만 나는 원서도 두 번을 읽었다. 모르는 문장이 나오면 이전에 나온 문장과 다음에 나오는 문장을 통해 대충 뜻을 유추할 수 있었고, 번역본도 이미 두 차례나 읽었기 때문에 어떤 뜻인지 대강 알 수 있었다. Normal People을 시작으로 ‘Wonder’, ‘Daddy Log Legs’, ‘The Midnight Library’, ‘Me Before You’ ‘Pachinko’를 읽었고 지금은 ‘The Thursday Muder Club’을 읽고 있다. 


여전히 모르는 단어가 많고,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문장들이 많지만 그런 단어를 볼 때마다 사전을 찾아보지 않는다. 같은 단어가 계속해서 나오는 경우라면 자연히 눈에 익어 문득 생각이 난 순간에 사전을 찾아볼 뿐이다. 눈에 익은 단어를 영어 기사를 읽다가, 다른 책을 읽다가 만나게 되면 그 안에서 뜻을 유추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오랜 시간 영어공부를 해왔지만 한 번도 영어 소설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아일랜드 출신의 젊은 작가인 Sally Rooney가 쓴 책을 만나고 읽고 자신감이 생겼다. 


나는 미국 회사를 시작으로 독일 회사를 거쳐 지금은 영국계 회사에 다니고 있다. 미국 회사에 면접을 봤을 때 영어를 한 마디도 하지 못하는 내가 합격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다행히 내가 맡은 포지션은 굳이 영어를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기에 토익 시험 점수만으로 합격하게 되었다. 그러나 일은 내가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전임자와 달리 회사에서는 아시아팀 미팅에 나를 보내기도 했고, 외국에서 손님이 오면 나에게 관광을 시켜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렇게 여러 기회를 통해 나에게도 외국인 친구들이 생겼고, 나는 그들이 사는 나라를 여행하기도 했다. 여전히 나의 영어 수준은 간단한 회화에 머물렀지만 다들 영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아서인지 단어만 나열해도 내 새로운 친구들은 내가 하는 말을 기똥차게 알아들었다. 


자신감이 생긴 나는 혼자 배낭여행을 떠나기도 했고, 그곳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었고, 또 남자 친구를 만나기도 했더랬다. 남자 친구를 만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스톡홀름에 갔을 때였다. 6년간 직장생활을 했던 내게 갑자기 주어진 자유시간은 무척 어색했고, 이 기회에 영어공부를 하겠다고 근처 대학교의 한 영어 강좌에 등록했다. 스웨덴에서 영어 공부라니! 내가 등록한 영어 강좌는 스웨덴에 여행을 온, 혹은 일 때문에 잠깐 머무는 외국인들이 주로 등록했었는데 브라질, 코스타리카, 칠레, 러시아, 프랑스 등 다양한 곳에서 온 사람들이 많았다. 남자 친구를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던 나는 수업 내내 입을 꾹 다물고 묻는 말에만 단답형으로 억지로 대답했더랬다. 그리고 얼마 뒤, 영어 듣기 시험을 쳤는데 이미 한국에서 토익 시험을 여러 번 치고 온 내게 중고등학교 수준의 영어 듣기 시험은 너무 쉬웠고, 어쩌다 보니 1등을 차지하고 말았다. 영국인 영어 선생님은 나에게 다크호스라는 별명을 붙여주었고 다음 수업부터 나에게 더 많은 말을 시켰다. 겨우 두 달 동안 영어 수업을 들었지만 다른 언어로, 충분치 못한 수준으로도 대화가 가능하다는 사실은 나에게 더 많은 자신감을 부여해주었다.


전화영어를 시작한 지 3년이 되었다. 내가 만난 전화영어 선생님 중에는 한국을 너무 잘 알아서 내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내가 나열한 단어만으로도 내가 어떤 상황인 지 딱 알아듣는 사람도 있었다. 이를테면 내가 저녁으로 김밥을 먹었다고 하면 이내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Oh poor thing. You had a busy day.” 내가 김밥이 무엇인지, 보통 어떨 때 김밥으로 저녁을 때우는지 설명하려고 머릿속으로 문장을 구성하고 있는데 이렇게 대답을 해오면 김이 빠지는 것이다. 또 어떤 선생님은 가십만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 2년째 함께 공부하고 있는 선생님과는 정치, 경제, 사회, 역사, 문화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일주일에 세 번 수업을 하고 있으니 최근 2년간 나와 가장 많이 통화한 사람이기도 하다.


몇 년 전 동생과 함께 런던과 아일랜드를 여행한 적이 있었다. 우리는 주로 에어비앤비를 이용했었다. 아일랜드 둘린에서 만난 호스트는 내게 영어 공부를 어디에서 했는지 물었다. 나는 한국에서 공부했다고 대답했고 그녀는 놀라워했는데, 수줍어하는 내게 나의 영어 실력이면 아일랜드에서 일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후하게 이야기해주었다. 그리고 런던에서 만난 할머니 호스트도 내게 같은 질문을 했었다. 내 짧은 영어실력으로 렌터카도 빌리고, 데이터를 다 써버려 내비게이션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렌터카 반납도 성공적으로 했더랬다. 


언어란 약속이다. 사과라는 물체를 한국어에서는 '사과'로, 영어에서는 'apple'로, 일본어에는 'リンゴ'(링고)로 표현하기로 한 것이다. 다른 언어에서 물체를 표현하기로 약속한 단어들만 많이 안다고 해서 그 언어를 잘할 수는 없다. 이를테면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는 표현을 영어에서는 'Time goes by so fast.'로 할 수도 있지만 'Time flies so fast'로 표현하기도 한다. 'Time flies.'라는 표현을 처음 접했을 때 '시간이 날아간다고? 시간이 빨리 간다는 뜻'인가라고 유추할 수 있었지만 이렇게 바로 유추가 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언어란 사회적 약속이기에 단어와 단어로 이루어진 문장의 약속까지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다른 언어가 어려운 것은 단순히 단어를 몰라서, 문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 사회적 약속을 몰라서일 수도 있다. 단어를 안다고 해도, 문법을 알고 있다고 해도 그 문장이 표현하기로 한 약속을 알지 못하면 이내 막혀버리기 쉽기 때문이다. 


여전히 나는 내가 영어 공부를 한 시간만큼 실력이 늘지 않는 것에 어쩌면 내가 바보는 아닐까라는 생각에 한껏 초라해진다. 오히려 지금보다 영어 단어를 몰랐던 때의 나는 ‘내 모국어가 영어가 아닌데, 나보다 영어를 잘하는 상대방이 내 말을 못 알아듣는다면 상대방의 문제’로 생각하며 근거 없는 자신감에 하고 싶은 말을 더듬거리며, 하지만 주저함 없이 내뱉었는데 지금은 단어의 뉘앙스까지 생각하며 머릿속으로 단어를 고르고 고르게 된다. 그럴수록 머릿속은 하염없이 엉켜버리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알고 있다. 지금의 이 단계도 조만간 뛰어넘을 것이란 것을. 내가 영어를 공부한 시간만큼 실력이 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직 실력이 늘 만큼 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꾸준히 영어소설을 읽고, 자막 없이 드라마를 보고, BBC 라디오를 듣고, 영어 신문을 읽는 일을 계속하면 언젠가는 내 영어 실력이 늘어날 것이다. 문제는 그게 언제쯤일까 하는 것. 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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