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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단걸 May 10. 2020

한 달에 두 번 꽃을 삽니다.

이 모든 시작은 코로나 19 때문이었다.



그랬다. 시작은 코로나 19 때문이었다. 이전에도 종종 꽃을 사긴 했지만 코로나 19 사태가 시작되고 난 이후, 졸업식 등 각종 행사들이 취소되면서 화훼농가가 직격탄을 받았다는 기사를 보고 바로 회사 앞 꽃집으로 향했던 것이 그 시작이었다. 나의 부모님도 시골에서 사과농사를 짓고 있기 때문에 화훼농가들이 처한 그 막막함을 쉽게 가늠할 수 있었다. 어차피 난 꽃을 좋아하니까, 가격이 좀 내려간 꽃을 사서 집안에 두면 나의 기분도 좋아질 테니까 말이다. 


이전에 만났던 남자 친구는 나에게 꽃 선물을 자주 했다. 무슨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꽃을 사서 나를 찾아오거나 회사로 꽃을 보내는 일이 잦았다. 스치듯 했던 ‘나는 꽃을 좋아한다’는 말을 기억했었다. 그와 연애 중에 받은 꽃들 중 일부는 말려서 드라이플라워로 오랫동안 간직하기도 했다. 그와 헤어지고 난 이후, 나는 한 해가 저물고 새해가 시작되면 화원에 가서 심플하게 장미를 샀고(한 해동안 수고했다는 의미로), 내 생일이면 회사 앞 꽃집으로 달려가 나를 위해 꽃을 샀다. 


꽃 선물을 받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면 먹지도 못할 것을 뭐하러 사냐고 핀잔을 주던 남자 친구들도 있었다. 그때는 어색해지는 게 싫어서 ‘그건 그렇지’하며 얼버무렸더랬다. 하지만 이제 한 달에 두 번씩 나를 위해 꽃을 사면서 선물은 무언가 유용하게 쓰이기 위하는 것도 중요할 테지만 그것의 존재만으로 나를 행복하게 한다면 그것 또한 어떠랴 하는 생각이다. 거실 소파 옆 테이블 위에 놓인 꽃을 출퇴근 길에 보며, 매일 물을 갈아주면서 어제보다 조금 더 피어난 꽃의 변화에, 혹은 어제보다 조금 시든 이파리 색에 소리 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느끼게 된다. 


처음은 평소에 비싸서 엄두도 못 내던 튤립 한 다발이었다. 이전에 코엑스에서 세 송이에 2만 8천 원 하던 튤립을 보고 튤립은 비싸다는 생각에 한 번도 사본 적이 없었지만 코로나 19 사태로 꽃값이 내려갔단 기사를 보고 찾은 꽃집에서 사장님은 한단에 만원에 가져가라며 시름을 얹어 이야길 했고 거기에 더해 팔리지 않던 수입 장미 세 송이도 그냥 가져가라고 싸주셨다. 그 이후에 나는 적어도 2주에 한 번씩은 그 꽃집을 찾았고 이제는 한 단으로 묶어서 사기보단 여러 꽃을 섞어서 예쁘게 조합해서 사고 있다. 이제 꽃값은 좀 올랐지만 여전히 꽃집을 찾는 나를 보면 사장님은 내 취향에 맞는 꽃들을 추천하신다. 내가 잘 모르는 꽃들에 대해서 친절히 알려주시면서 덤으로 상품가치가 떨어지는 꽃들도 몇 송이씩 더 얹어주시기까지 한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가끔씩 지루하기도 하고, 친구들과 만나서 예전처럼 재미있게 놀고 싶기도 한 요즘, 내 공간에 어여쁜 꽃이 있어 어여쁘지 못한 나의 일상이 조금 더 꽃다운 빛을 가진 것 같다. 물론 꽃을 산다고 해서 나의 삶이 이전과 비교해서 훨씬 다채로워진다거나 나의 감정이 더욱 풍부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꽃을 살 때마다 내가 나를 아주 조금 더 아끼는 것 같아 기분이 조금 더 좋아지는 것이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나쁜 생각을 품는 사람이 적다고 믿는 나는 집안 한편에 자리 잡은 아름다운 꽃을 보며 비록 좋은 생각을 하지 않더라도 나쁜 생각을 품지 않게 되어 그것 또한 내 삶의 한 시간을 유용한 게 쓰는 것 같다. 


꽃은 그 자체로 꽃이 듯이, 내 인생도 그 자체로 꽃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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