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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단걸 Aug 17. 2020

어른의 상상력

상상력 부재의 어른은 되고 싶지 않아요.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이 무척이나 좁았던 어린 시절, 내가 모르는 세계는 상상력으로 넓어졌다. 내가 살고 있는 마을과 오일장이 서던 날이면 할아버지 손을 잡고 다녔던 읍내 너머의 세계는 내 상상의 세상이었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도시의 모습은 시공간을 초월해야만 도달할 수 있는, 내가 속한 세계와는 다른 어떤 세계였다. 봉화 읍내에서 버스를 타거나 기차를 타야만 그곳으로 건너갈 수 있으며 그곳에 가면 봉화에서 쓰던 말투는 하루아침에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들이 쓰는 표준어로 바뀌고 내가 이곳에서 입고 있는 옷은 그곳으로 건너가면 도시 아이들처럼 원피스에 구두까지 짠! 하고 변신하는 것이라고 상상하곤 했다. 


내가 매일 밟고 다니는 이 땅은 어쩌면 잠들어있는 거인들의 등이거나 팔이거나 허벅지일 것이라 상상했다. 산에 있는 나무들은 거인의 머리카락이며 동네 앞산에 있는, 봉우리가 네 개인 산은 거인이 주먹을 쥐고 있는 모습이라고 상상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니 걸어 다닐 때는 거인을 깨우지 않도록 조심조심 걸어야 하고 산에 있는 나무들을 뽑으면 나중에 거인이 잠에서 깨어나서 슬퍼할 거라 상상했다. 그러므로 나에게 식목일은 거인의 비어있는 머리카락을 다시 심어주어 거인이 긴 잠에서 깨어났을 때 슬퍼하지 않도록 하는 날이었다. 즐길거리가 없는 나의 고향마을에서 어린 나에게 가장 재밌는 놀이는 내 머릿속에서 내가 아는 세상 너머의 세상을 상상하는 일이었다. 


좀 더 커버린 나는 유년시절의 동화 같은 상상력에 조금 더 나의 소망을 넣어 상상하기 시작했다. 아빠에게 먼지 나도록 맞은 날이면 나의 진짜 부모님은 따로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며 나를 달랬다. 아빠에게 읍내에 있는 도서관에서 공부하겠다며 점심값을 받아 친구들과 영주에 있는 롤러스케이트장에서 몇 시간이나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땀에 전 모습으로 햄버거를 사 먹기 위해 영주시내를 누비다가 아빠를 정면으로 마주친 날 저녁, 파리채와 빗자루로 번갈아가며 아빠에게 맞은 밤이면 나는 그렇게 상상했다. 나의 진짜 부모님에게 사정이 생겨서 이곳에 맡겨졌을 거라고. 그러니 오늘 이렇게 맞은 것을 기억해두었다가 다 일러주어야지 하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상상 말이다. 나는 엄마를 꼭 닮았다는 사실은 무시한 채로 말이다. 그래서 동생들이 나를 도발해도, 엄마에게 맞거나 아빠에게 맞아도 나는 이 사람들과 다른 사람이다. 나의 부모는 돈을 아주 많이 벌어서 나를 곧 데리러 올 것이니 그때까지 씩씩하지 버텨봐야지. 그래서 궁전 같은 집으로 입성하게 되면 나를 놀리던 동생들도, 나를 때리는 부모님도 모두 모른 체해버려야지! 하는 현실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십 대가 할 만한 상상을 했었다. 


이런 뜬 구름 잡는 상상들이 모두 유익하거나 유해한 건 아니었다. 유년시절의 심심했던 나의 일상을 채워주었고, 불행하다 느꼈던 십 대의 나를 잡아주었다. 나는 상상력으로 유년시절과 십 대 시절을 견뎌왔던 사람이라 그런지 화면으로 보는 세상보다는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세상이 더욱 재밌다. 중학교 때 친구들과 이슈, 윙크, 밍크 등 순정만화 잡지를 구독했었더랬다. 격주간지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책 가격이 3,000원이면 모임을 주도하는 친구가 1,500원을 내고 나머지 친구들이 그 반액을 부담하고 함께 돌려보고 난 이후에 1,500원을 낸 친구가 소유하는, 이를테면 순정만화 구독자 모임을 했었다. 원수연, 한승원 등 유명한 만화가들이 그린 순정만화는 너무 재밌었다. 하지만 다시 읽고 싶지는 않았다. 소설책은 언제고 다시 읽어도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주인공의 모습과 그 배경, 작가가 묘사한 풍경은 언제나 내가 채색할 수 있었지만 만화는 그렇지 않았다. 이미 작가가 이야기를 쓰고 이미지를 그렸기 때문에 상상할 거리는 많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영화보다는 책이 더 좋다. 


이제 곧 마흔이 되는, 서른 후반의 나에게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세상은 좁아졌다. 물론 그 자리는 경험과 지식으로 대체되었다. 이제는 상상력보다 나의 경험에, 내가 쌓아온 지식에 근거하여 생각을 확장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어른이 된 나에게 더 이상 상상력이 필요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를테면 이런 일에는 아직도 상상력이 필요하다. 본인보다 스무 살 가까이 많은 팀장에게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서 하는 직원을 볼 때면 아, 쟤는 왜 저럴까 가 아니라 저 직원 왜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서 하게 되었을까? 그래, 무슨 이유가 있을 거야. 야근을 하지 말라는 팀장님 말에도 기어이 야근을 해 놓고서 다음날 아침이면 야근했다고 징징거리는 직원을 볼 때면 아, 또 왜 저래? 가 아니라 그래 내가 이해하지 못할 어떤 이유가 있을 거야 하는 식의 상상력이 필요하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니라는 것, 나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한다는 것이 이제까지 내가 경험한 사실이라면 여기에 약간의 상상력을 발휘해 이해하기 힘든 사람들을 보며 그럴 수도 있지 하는 것. 그게 어른의 상상력은 아닐까. 


가끔 우리 형제들은 만나면 이야기를 한다. 우리는 무조건적으로 서로를 지지하지 말자고. 한 가지에서 나고 자랐기에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한 편이 된 우리들이더라도 각자 다른 사람들이라는 것을 인정하자고. 즉, 우리 형제자매들이 나와 다른 생각을 하더라도 어른의 상상력을 발휘해서 이해하고, 상식에 어긋난 일을 하는 경우에는 한 편이기에 더욱 따갑게 지적해주자고 이야기한다. 어설픈 오지랖으로 서로를 옭아매지 말고 경우에 어긋난 일에는 지적을 해주는 그런 어른이 되자고 말이다. 네 편 내 편으로 갈라 서로 싸움을 조장하는 그런 유치한 어른이 결코 되지 말자는 것이다. 세상 모두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으니까, 나의 생각을 다른 이에게 강요하는 것은 결코 어른이라면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니까 말이다. 물론 이해되지 않는 모든 행동에 ‘그럴 수도 있지’하는 것은 결코 상상력을 발휘해서 이해하는 행위는 아니다. 상식과 경우에 어긋난 일에는 단호히 지적하고, 상식과 경우에 어긋나지 않음에도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행동과 말에 ‘그럴 수도 있지’ ‘무슨 이유가 있겠지’ 하며 상상력을 발휘하여 이해하는 것이 어른의 상상력일 테니까. 옹졸하고 편협한 어른이 되지 않도록 어른의 상상력을 좀 더 키워나가는 것, 내가 원하는 어른의 모습으로 나이 들어가는 것, 쉽지 않지만 멋지게 늙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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