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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단걸 Aug 12. 2020

젠장, 오늘도 흰머리를 발견했다.

악! 아직은 안된다고. 아직은.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면 나는 엘리베이터에 설치된 거울을 본다. 블라우스에 양념장이 튀지는 않았는지, 화장을 고쳐야 할 만큼 게걸스럽게 먹은 날은 어느 부위의 화장을 고칠까 하며 무슨 의식처럼 매일 거울을 본다. 그러다가 가끔씩은 내 정수리 쪽에 난 흰머리를 발견한다.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하면서 거울을 볼 때엔 보이지 않던 흰 머리카락은 왜 회사에서는 유난히 잘 보이는 것일까. 그것도 정수리 쪽에 말이다. 아침에 없던 흰머리가 4시간 만에 자랐을 리는 없을 텐데. 흰머리를 발견하고 나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빨리 뽑아버리고 싶은 마음이지만 눈도 침침한 나는 흰머리 하나를 뽑자면 적어도 십 분은 넘게 걸릴 텐데 대체 어디에서 뽑는다는 말인가. 유난히 밝은 회사 엘리베이터 조명이 문제인 걸까. 나도 이제 마흔이 코 앞이니까 흰머리가 나는 것도 당연하겠지만 왜 하필 회사에서 이렇게 발견하고 지랄인 걸까. 그런 날이면 그날 오후는 도무지 업무에 집중이 되지 않는다. 빨리 집에 가서 흰머리를 뽑아내고 싶은 마음뿐이니까. 


동생은 나를 만나면 내 흰머리를 뽑아 준다. 

“악! 언니, 흰머리 있다!”

“웃기지 마. 나한테 무슨 흰머리야. 거짓말하시네.”라고 응대하면 동생은 내 숱 많은 머리칼을 뒤져 흰머리카락 대여섯 개를 찾아 뽑아내어 내 무릎에 살포시 얹어둔다. 분명 내 머리카락인데 나는 부인하며 노려본다. 아니, 이럴 리가 없어, 이게 내 머리카락 일리가 없다고. 

“힝, 우리 언니 늙었네” 하며 동생이 위로를 가장하여 나를 놀리는 말에도 뭐라 대꾸하지 못한다. 나는 정말로 늙어가는 중이니까.

어렸을 때, 어쩌다 엄마 머리에 있는 흰머리를 발견하고 “엄마, 흰머리 있네”라고 말하면 엄마는 “야, 엄마 놀릴래?”라며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때의 엄마 나이와 지금의 내가 같은 나이라는 것을 내 정수리에 있는 흰머리를 보고 새삼 깨닫게 되었다.


나의 할아버지는 백발이셨다. 다른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마흔이 되기 전에 이미 백발이었다고 했다. 나는 삼십 대의 백발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의 젊은 시절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에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으로 징용을 끌려갔다 오셨고 겨우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분이셨으니까. 쉽게 겪을 수 없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십 대에, 이십 대에 겪으신 분이니까. 그렇지만 할아버지의 백발은 무척이나 멋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백발이었던 것처럼 꼭 어울렸다. 그에 반해 할머니는 염색을 하지 않아도 흰머리가 별로 없는 분이셨다. 아흔이 넘으셨지만 아직도 군데군데 검은 머리카락이 있는 분이기에 나는 어릴 때부터 믿어왔다. 할아버지는 고생을 많이 하셔서 백발이 되신 것이고, 할머니는 염색을 하지 않아도 흑발이었기 때문에 나는 흰머리가 나지 않을 것이라고. 유전자가 그러하다고. 후훗, 믿고 싶은 대로 믿어버리는 어리석었던 어린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넌 마흔이 되기도 전에 매일 밤마다 흰 머리카락을 뽑게 될 거라고. 젠장’ 


대체 흰머리는 왜 생기는 것일까. 모낭에 있는 세포에서 멜라닌 색소 합성을 하는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멜라닌 색소를 합성하는 세포의 수가 줄어들고 그 기능도 약화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서양인은 30대 중반, 동양인은 30대 후반, 아프리카인은 40대 중반부터 흰머리가 생기기 시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니까 이런 통계에 근거하면 나에게 흰머리가 생기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도 싫은 건 어쩔 수 없다. 물론 나는 지금의 나의 모습에 딱히 불만은 없다. 목에 주름이 잡혀가도, 팔자주름이 진해져 가는 것도, 기초대사량이 떨어지는 것도 다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무척이나 지루한 일이 될 테니까. 이십 대보다 주름은 늘었지만, 체력이 떨어졌지만, 소화력이 예전 같지 않지만 나는 그때보다 건강해졌고,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시야가 넓어졌고, 연봉이 높아졌으며, 인생을 대하는 태도도 여유로워지지 않았던가. 그런 내가 왜 유독 흰머리를 발견하면 우울해지고 빨리 없애 버리고 싶어서 하루 종일 마음이 조급해지는가. 아마 목주름은 목폴라 셔츠로 가릴 수 있고, 팔자주름도 화장으로 어느 정도 커버할 수 있지만 내 머리에 난 흰머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나이를 가늠할 수 있게 할 수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나이가 들어가는 게 좋지도 싫지도 않다고 생각해왔던 나이지만 내가 나이가 들어가는 것을 남들이 알아채는 건 싫은 건 뭐람. 


 언젠가 내 머리에서 발견되는 흰머리를 모두 뽑기에 부담이 되는 날이 오면 그제야 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마음이 불편해지는 일을 그만둘 수 있겠지. 아마 절반쯤 흰머리카락으로 뒤덮이는 그날쯤이면 말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처럼 흰머리와 어울리는 시원한 웃음을 지을 수 있는 날이 오게 되면 이 모든 수고를 그치겠지. 박연준 시인은 정수리에 난 흰 머리카락을 발견하고는 ‘삶이 내게 준 한 가닥 스크래치’라고 표현했었지. 나도 매일 한가닥쯤의 스크래치는 감당할 수 있을 텐데, 어젯밤엔 글쎄 여덟 가닥의 스크래치를 제거하지 않았나. 이왕 흰머리가 날 거라면 정수리는 피해서 나주기를, 그게 안된다면 어느 날 갑자기 한 번에, 한꺼번에 흰머리가 나주기를. 그래서 아, 이렇다면 어쩔 수 없지 하며 나의 흰머리를 수용할 수 있지 않을까. 백발마녀전의 임청하처럼 하룻밤에 백발로 변해버린다면 나는 그제야 흰머리를 뽑는 수고스러움을 포기할 수 있겠지.(앗, 백발마녀전의 임청하를 예로 들다니, 정말 흰머리가 나는 게 이상하지 않은 나이이구나. 젠장) 하지만 아직은, 아직은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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