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단걸 Jan 10. 2021

'얼죽코'를 포기했다.

RDS 구스다운 패딩을 입습니다.




나는 흔히 말하는 ‘얼죽코’파다. ‘얼어 죽어도 코트’를 고수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아무래도 출근할 때 복장이 오피스 룩인 데다 대중교통이 아닌 내 차로 출퇴근을 하기 때문에 아무리 추운 겨울일지라도 나는 코트를 입고 다닌다. 내 옷장 속에는 다섯 개의 코트가 있는 반면 패딩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그 하나뿐인 패딩 조차도 6년 전, 북유럽 여행을 앞두고 동생이 산 패딩을 빌린 것인데, 아직 반환하지 않은 패딩이었다. 한참도 전에 유행이 지난 패딩을 입는 일은 강아지들과 산책할 때뿐이었기에 굳이 패딩을 살 이유가 없었다. 또한 패딩 하나를 만들기 위해 스무 마리의 거위들의 털이 소요된다는 이야기에, 살아있는 거위의 털을 뽑아 극한의 고통을 주며 생산을 한다는 이야기에 그런 방식으로 생산된 패딩을 입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더군다나 나는 한 겨울에도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지 않으면 둘째 동생이 경찰학교에 있을 때 받았던, 십 년도 더 지난 점퍼만 입고 산책을 나가는 사람이니까 다른 패딩이 필요하지 않았다. 여름은 조금 더워야 하고, 겨울은 조금 추운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말이다. 그랬던 나에게 얼마 전 새 패딩이 생겼다. 


욕심이 많기로 유명한 셋째 동생이 웬일로 나에게 패딩을 선물해주었다. 동생의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겨울 패딩을 하나씩 지급한다고 했고, 동생은 이미 패딩이 있었던 터라 본인은 필요 없다며 나에게 패딩을 선물해주겠다고 했다. 공짜라고 하니 이게 웬 떡이냐 하며 하나를 받았는데 그것은 수지가 입었다는 일명 ‘수지 패딩’이었다. 물론 내가 그 패딩을 입는다고 수지가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6년 전에 동생이 샀지만, 내가 소유하고 있던 무거운 패딩에 비하면 무척 가벼웠고 더 따듯했다. 요즘 나는 강아지들과 산책을 나갈 때는 수지 패딩을 입고 나간다. 물론 회사에 갈 때는 얇은, 흰색 모직 코트를 입고 다녔다. 아무래도 내가 추운 겨울 날씨에 노출되는 것은 아파트 현관문을 나서서 주차장까지 가는 백여 미터, 회사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회사 로비까지 가는 이십 미터가 고작이니 정장치마에 블라우스를 입고 그 위에 얇은 코트 하나면 견딜만했다. 얼마 전, 한 달여의 재택근무를 끝내고 회사로 출근을 하니 한 달 전보다 겨울은 더 깊어져 있었고, 아침에 현관문에서 주차장까지 가는 그 길이, 저녁에 다시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집으로 오는 그 길이 못 견디게 추워졌다. 결국 나는 ‘얼죽코’를 포기했다. 그로 인해 나는 조금 더 따듯한 사람이 되었다.


기존에 내가 생각했던 패딩은 ‘등골 브레이커’로 이야기하던 그 뚱뚱한 패딩이었다. 입으면 움직임이 무뎌지고, 입고 있으면 내 몸이 두배는 커지는 그런 패딩만 생각했더랬다. 그러나 요즘 나오는 패딩은 두껍지 않으면서 가벼운 패딩이 많았다. 또한 산채로 거위털을 뽑아 동물에게 고통을 주는 방식으로 생산되던 기존 구스다운 패딩들 뿐만 아니라 거위나 오리에게 고통을 주는 방식으로 털을 뽑지 않고, 윤리적인 방식으로 거위털을 채집하는 구스다운 패딩도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동생에게 선물 받은 패딩도 RDS(Responsible Down Standard) tag가 달려있었다. RDS인증이란 살아있는 상태에서의 깃털(우모) 채취, 강제급식 등 동물학대와 관련된 행위를 하지 않은 원재료만을 가공하고 있음을 인증하는 것이다. 식품으로 사용하기 위해 사용, 도축되는 거위의 부산물인 털을 버리지 않고 재활용해 생산하는 것이다. 즉, 식품 산업 기준에 따라 적합한 방법으로 사육, 도축되는데 도축 후 불필요한 부분인 털을 제거하여 이를 세척-분류-가공 과정을 거쳐 중전재에 적합한 우모로 생산하는 것이다. 패딩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스무 마리의 거위에게 고통을 주는 기존 방식으로 생산하는 패딩이 아닌 RDS방식으로 생산하는 패딩이라면 조금 비싸더라도 기꺼이 소비하여 이런 방식으로 생산된 제품들이 가치가 있다는 것을 패션 기업들에 알려주어 기업들이 나아갈 방향에 방향지시등을 켜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채식주의자가 아니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고기이며, 회사에서 회식 메뉴를 정하라고 하면 지체 없이 고깃집을 선택한다. 가족들과 외식을 할 때도 무조건 고깃집인 사람이다. 고기를 즐겨 먹는 사람이 동물에게 고통을 주는 방식으로 생산한 패딩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표리 부동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내가 고기를 좋아하는 만큼 내가 먹는 고기들이 조금 더 건강한 환경에서, 행복한 삶을 살던 동물들에게서 생산된 고기였으면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입고 다니는 구스다운 패딩이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원가절감이라는 이름으로 동물에게 고통을 가하면서 생산된 제품이 아니길 바라는 것이다. 유난히 춥던 이번 주에 나는 정장 스커트에 구두를 신고 RDS방식으로 생산한, 수지 패딩을 입고 출근을 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적어도 내가 입고 있는 이 따듯한 패딩을 생산하기 위해 스무 마리의 거위들이 고통을 당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나의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조금 더 따듯해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래서 성형을 하란 거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