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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단걸 Jan 11. 2021

MRI 스캔 후,

조금 더 괜찮아질 터이니. 



장면 1. 


온몸에 문신이 새겨진 죄수가 있다. 교도소 내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진단의학과로 컨설팅이 제안이 왔다. 이 죄수의 병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MRI 스캔을 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 죄수의 문신이 문제다. 싸구려 잉크를 사용한 문신이라 그 안에 철이 섞여있을 수 있으므로 MRI 스캔을 할 경우 극심한 통증이 뒤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러나 진단의학과 과장은 MRI 스캔을 지시한다. 결국 MRI 스캔을 받게 된 죄수의 문신은 불타는 듯한 통증을 유발한다. 


장면 2.


한 남자가 있다. 가벼운 뇌진탕 증세가 있어서 MRI 스캔을 해야 하지만 남자는 어린 시절 우물에 빠진 경험 때문에 폐쇄공포증이 있다. 남자는 파트너의 손에 이끌려 병원에 가지만 MRI 기계에 들어가자 극심한 공포에 도망을 치고 만다. 파트너는 그를 찾아 병원 곳곳을 누빈다. 결국 병원 옥상에서 남자를 찾는다. 파트너에게 어린 시절 우물에 빠진 경험을 이야기하며 보라색 냄새가 난다고 이야기한다. 우물에 빠져있을 때 다들 다른 여자아이를 먼저 구조해주었고, 자신은 숙모님이 계속해서 발을 만져주었기에 견딜 수 있었다고 그게 얼마나 무서웠는지 아느냐며 MRI는 절대 할 수 없다고 한다. 결국 파트너는 남자가 MRI 스캔을 받는 동안 발을 만져줄 수 있는 기구를 설치했고, 남자는 폐쇄공포증을 이겨내고 성공적으로 MRI 스캔을 받는다. 


장면 3.


한 여자가 있다. 주사 바늘에 공포를 가진 여자다. 복부 통증 때문에 병원을 찾은 여자에게 담당의사는 MRI 스캔을 권유한다. 한때 메디컬 드라마를 많이 봤던 여자는 잠시 생각한다. 드라마에서 MRI 스캔을 하기 위해서 주사를 맞는 장면은 없었으니 여자도 주사를 맞는 일은 없을 것이라 짐작하고 쉽게 동의한다. 그러나 여자는 MRI 스캔을 위해서는 조영제를 투여해야 한다는 것을 검사 당일에야 알게 되었다. 절망에 빠진다. 조영제 알레르기 중 하나인 불쾌한 열감을, 이전에 CT 스캔을 하면서 이미 경험한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별수 없이 주삿바늘을 꽂고 MRI 기계에 눕는다. 이어 플러그를 하고도 헤드폰도 꼈다. 그리고 여자는 생각한다. 이 안에 누워 어떤 글을 쓸까 고민을 해야겠다고. 한동안 바빴던 여자는 에세이를 쓰지 못했다. 그래서 이 기회에 다음 글을 구상하자고 생각한다. 그러나 MRI 기계의 소음은 헤드폰을 뚫었고, 이어 플러그마저 쉽게 뚫은 채로 그녀의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다. ‘침착하자. 40분은 금방이다. 침착하자. 40대도 금방이다’ 의미 없는 생각으로 기계 소음을 밀어내어보지만 쉽사리 밀려가지 않는다. 여자는 또 생각한다. ‘왜 이렇게 시간이 더디게 가는 거지? 나를 이 기계 속에 넣어두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퇴근해버린 건 아닐까? 내가 이곳에 홀로 남겨졌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는 건 아닐까?’ 20분이 지나고 조영제 투여하고 다시 기계 속으로 밀려들어간다. 점점 커져가는 기계 소음 속에 여자의 몸에 퍼져가는 조영제도 느끼지 못한다. 또다시 기계 소음과 함께 혼자라는 공포가 밀려온다. 여자는 계속 눈을 깜빡이며 내가 이곳에 있음을 알린다. 누군가가 여자를 구해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계속해서 눈만 깜빡인다. 



장면 1은 ‘닥터 하우스’의 한 장면이다. 나는 한때 이 드라마를 무척 좋아했었는데, 나의 뇌리에 가장 깊게 남은 에피소드 중 하나였다. 장면 2는 ‘모던 패밀리’에 나오는 에피소드이다. 그 에피소드를 보며 생각했더랬다. 저 안에 가만히 누워있는 게 뭐가 그리도 무섭다고 그러는 것일까. 가만히 누워만 있으면 되는데, 참으로 미국 사람들은 호들갑스럽구나 했던 것이다. 그리고 장면 3은 당연히 나다. 지난달, 의사의 권유로 난생처음으로 MRI 스캔을 했다. 주사만 맞지 않으면 무슨 검사든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무척이나 싫어하는 조영제를 투여해야 한다는 사실에 반쯤은 넋이 나간채로 기계에 누웠더랬다. 그래도 그냥 누워만 있으면 되는 것이니 그리 어려울 것 같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그간 경험해보지 못했던 공포가 나를 짓눌렀다. 결국 나는 수술을 받기로 했다. 당장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언젠가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에 나는 당장 수술을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그 언젠가 수술을 받게 되면 나는 또다시 MRI 스캔을 해야 했기에 그 불쾌한 경험을 다시 한번 더 할 바에는 그냥 이번 한번 경험으로 끝내는 게 여러모로 나을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 몸의 변화에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이 나이가 되면 내 의지로 새로운 경험을 선택해서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내가 원하지 않아도 새로운 경험을 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그런 경우 새로운 경험이 신나는 일인 경우가 별로 없다는 것이 슬프고 애처롭다. 특히 이렇게 내 몸이 아파서 해야 하는 경험인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어쩌랴. 이 불쾌한 경험들로 더 이상의 통증이 없다면야. 통증이 없는 몸으로 무언가 새롭고 신나는 경험들을 기꺼이 해볼 테다. 영원히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MRI 기계 속에서의 40분도 결국 지났으니, 수술 후 회복하는 과정들도 결국은 지날 터이니. 


조금 더 괜찮아질 것이다. 

그렇게 믿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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