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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정병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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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a Lee Apr 09. 2020

카페인 탐닉

정병일기 4

정병도 역시 먹고 살아야한다. 나로서는 숨만 쉬고 밥 먹고 약만 먹어도 엄청 노력하는 거 같은, 그 밥도 약도 하늘 아래 공짜는 없다. 언제나 남들 박자에 맞추어 굴러가지는 못한다 해도, 적어도 매번 노래를 망치지는 않고 작동하는 부속품이 되려면 역시 카페인뿐이다.


술이 내 생각의 속도를 낮추어서 어쨌든 밥 먹고 살자고 살살 달래는 동안 커피는 내 몸의 속도를 높여서 그 밥부터 일단 가져오도록 등짝을 후려친다. 안 그래도 날카로운 신경인데 틈만 나면 커피한테 추가로 귀가 멍멍할 때까지 얻어맞는 게 정신건강에 좋을 리는 없다. 그렇다고 나 좋은 말만 해주는 술이랑만 친하게 지내면 정작 마음이 동했을 때 먹을 밥도 약도 없어진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또 머릿속이 버석버석하다. 이대로는 마감을 맞출 수 없을 것이다. 한번 더 삑사리를 내는 건 진짜로 남들 노래까지 망치는 짓이다. 아무리 나대로 내 사정이 있다지만 고장 난 차를 몰고 고속도로 한가운데 하염없이 서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할 수 없이 3시간 전의 커피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는 지저분한 머그잔에 다시 인스턴트 커피가루를 붓는다. 잇몸이 무너져도 어쨌든 씹어먹고는 살아야 되니까 임플란트를 박는 것처럼, 의욕이 없다면 커피라도 많이 마셔서 인공적으로 의욕을 대신할 물질을 집어넣어야 한다. 어쨌든 밥도 약도 아직 계속 필요하니까.


커피가 들어가면서 머릿속에 다시 피가 돌면서 촉촉해지기 시작한다. 진하게 탔더니 머리 두피까지 하나하나 신경이 곤두서는 느낌이다. 오늘 다섯 번째 잔. 카페인이 잊고 있었다는 듯 새삼 나를 두들겨 패기 시작한다. 맞은데 또 맞으니까 살이 먹먹하고 이제는 될 대로 되라, 지긋지긋한 이 느낌. 그래도 당장은 늘어져 있던 신경이 빳빳해지고 눈에 힘이 들어간다. 내가 그동안 무슨 작업을 하고 있었는지도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이것만 끝내면 새 밥도 약도 그리고 술도 들어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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