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아와 랄라 Jun 29. 2020

나의 분노는 징조 없는 화산 같아요

일평생 점잖게 화내는 법을 연구합니다

작가 『김랄라』


분노하다
어떤 사람의 깊이를 가능해 볼 수 있는 행동. 함께 싸울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사람들 앞에서 분노를 쏟아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항상 생각에 잠겼다. ‘오늘의 분노는 꽤 쿨(Cool)했나?’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화를 점잖게 표현하지 못하는 편이다. 분노가 차오를 때면 감정에 앞서 언성을 높이거나 얼굴 표정부터 바뀐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피부와 한껏 찌푸린 미간으로 화난 상태임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이런 분노 표현은 언제나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낫쿨(Not cool)한 분노를 보여준 날엔 문득 중학생 때 국어를 가르쳤던 학교 선생님이 떠오른다. 그분은 내가 만났던 사람 중에 분노를 멋지게 표현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평소에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수업을 가르치시다가 학생들이 도를 넘는 행동을 하면 수업을 멈추고 가만히 뒷짐을 지셨다. 그러면 교실의 온도는 이전과 달라져 있다. 그 무섭다는 중2 학생들을 말 한마디 없이 눈빛만으로 제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분이셨다. 암흑기였던 사춘기 시절, 선생님은 나의 롤모델이었다. 그녀처럼 멋지고 쿨하게 분노를 표출하고 싶었다. 얼굴이 붉어지지도, 목소리가 쓸데없이 커지지도 않고 덤덤하지만 강하게. 그녀의 분노는 불보다 거대한 파도 같았다. 조용히 몰려와 모든 걸 덮쳐버리는. 그때부터 나는 멋지게 분노를 표현하는 법을 고민했다.


학창 시절에는 분노를 있는 그대로 표출하는 대신 일단 참기를 선택했다. 어설프게 표현하는 것보다 참는 것이 친구들에게 미움을 덜 받을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욱하는 본성 때문에 말투나 표정으로 화가 삐죽 튀어나오는 날이 많았다. 참다가 한 발 늦게 터지는 분노는 오히려 뒤끝 있는 쪼잔한 사람으로 보이기 쉬웠다. 전략을 바꿔 ‘화난 뒤 정색’하는 것을 선택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쉬운 게 아니었다. 타고난 ‘웃상’ 때문에 친구들이 내가 정색을 하고 있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당시에는 아주 절망스러웠다. 동글동글한 얼굴과 눈을 고치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 이번 생에는 눈빛만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카리스마를 가질 수 없는 팔자인가.


사주를 봐주는 어플에선 내가 화가 없는 사주라고 했다. “감정과 이성이 조화로운 사주”라고 친절하게 부연 설명까지 해줬다. 화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한 번 분노가 차오르면 그냥 쏟아내 버린다. 평소에 화를 잘 내지 않다가 한 번에 몽땅 분출하는 것 같았다. 이런 분노의 모양은 기승전결도 없어 상대가 당황스러워할 때가 많다. 서론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글처럼 동기와 목적이 비어 보인다.


간헐적으로 폭발하는 화산 같은 나의 분노는 특정한 다수에게 향한다. 초등학생 때는 학교 교문 앞에 종종 출몰하는 소위 ‘바바리맨’이라고 불리는 남성들에게 향했다. 이 성도착증 환자들을 처음 마주했을 때는 분노보다 무서움이 컸다. 이런 상황에도 내성이 생기는지 몇 번 더 보고 나니 공포가 참을 수 없는 분노로 변해 있었다. 사춘기 시절에는 분노의 방향이 일진 무리에게 향했다. 무리 지어 다니면서 친구들을 괴롭히고 금품을 갈취하는 그들을 참을 수 없었다. 성인이 돼서는 이 분노가 사회로 향했다. 여성 혐오로 얼룩진 가부장제,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되풀이하고 있는 21세기 자본주의. 무엇보다 혼자 힘으로 이 상황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에 크게 분노했다. 그들 앞에서 나는 그저 나약한 한 사람일 뿐이었다. 그런 기분에 사로잡히는 날에는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하나 다행인 게 있다면 지금은 화를 식힐 수 있는 방법 하나를 찾았다는 것이다. 바로 나의 분노에 함께 화내 줄 수 있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서로의 분노를 공유하며 함께 싸워줄 수 있는 인생의 동료들과 함께 이야기하다 보면 일시적이지만 분노가 해소되는 느낌을 받는다. 다수의 힘을 빌어 개인이라는 나약함 속에서 빠져나올 수도 있다. 그들과 함께 분노하고 온 날에는 지치지만 희망이 느껴지는 이유기도 하다.         


여전히 ‘극대노’를 점잖게 표출하는 건 내겐 아주 어려운 일이다. 뉴스에서 말도 안 되는 사건이 연달아 보도될 때는 혼자 씩씩거리며 TV에 대고 욕을 퍼붓기도 한다. 그러면 동생은 “흥분하지 좀 마”라고 어느 성균관 유생처럼 점잖은 목소리로 내게 말한다. 그러면 나는 저걸 보고 어떻게 화를 내지 않을 수 있냐고 더 화를 낸다. 아, 이번 생에 점잖게 화내는 일은 이미 망한 게 아닐까.


드넓은 바다에 분노를 던져놓고 오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작가의 이전글 부드러움과 강인함이 공존하는 외유내강형, 미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