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일 보다 더 어려운 엄마들의 세계
유치원 시절 우리 아이는 또래보다 유난히 호기심이 많았다.
좋게 말하면 탐색적이고 솔직히 말하면 ADHD 특유의 충동성이 엿보이는 아이였다.
“손대지 않아요.”선생님의 말에도 아이는 단지 궁금하다는 이유로 몰래 블라인드를 내려보거나 줄을 설 때 옆으로 빠져나가는 행동을 하곤 했다.
처음엔 다들 가볍게 주의를 줬다.
하지만 점점 ‘주의’로는 넘기기 어려운 순간들이 찾아왔다.
축구를 하던 중 아이는 친구 세모와 부딪쳤고 세모가 계속 공을 넘겨주지 않자 아이는 결국 화를 내며 밀치고 손이 나갔다.
원인이야 어찌 되었든 손이 나간 건 무조건 잘못이라 사과 전화를 하고 훈육도 했다.
하지만 감정은 늘 내 마음에 남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해 보기도 전에 이미 가해자로 낙인찍힌 기분이었다.
그 일 이후에도 아이와 세모는 아주 잘 지냈지만 세모 엄마는 서서히 우리를 피했다.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는 놀이터 모임에서 우리 아이가 빠지는 일이 몇 번 생겼다.
세모 역시 큰 동작으로 잡아당기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예 대답조차 안 하고 무시하는 방식으로 들었을 때 앗! 싶은 상황을 만들 때가 몇 번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 역시 또래의 미숙함이라 여겼다.
선생님이 알고 나에게 일러주셨고 주의 주면 될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이도 그걸로 많이 불편해하지 않았기에 일일이 반응하지 않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아이들의 사소한 미숙함에도 엄마들이 더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일이 많았었다.
색칠하기 시간 같은 그림을 색칠하던 아이가 자리를 비웠다 돌아왔다.
같은 그림만 보고 그 그림이 자기 것인 줄 알고 “내 거야”라며 친구 네모와 실랑이를 벌였다.
네모도 자기 그림이라고 하다 아이를 밀쳐 아이가 넘어지며 부딪쳐 살짝 얼굴에 상처가 났다.
상처는 크지 않았고 아이도 화해했다고 괜찮다 했다. 네모 엄마도 미안하다 연락을 주셨다.
나는 우리 아이도 오해한 잘못이 있었다고 사과하고 서로 아이들이 사과의 쪽지를 써 사진으로 주고받았다.
둘은 오히려 더 돈독한 친구가 되었다.
지금도 우리 아이의 최애이다.
이런 일을 겪으며 부모의 태도가 아이들 관계의 온도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다시 한번 느꼈다.
아이들은 실수하며 배운다.
작은 다툼과 오해 그리고 용서를 배우고 익힌다.
그런데 어른들은 오히려 그걸 잘 못한다.
"저 아이는 거칠어서 좀 멀리 해주세요.”
“짝은 안 시켜주셨으면 해요.”
내 아이의 최애 친구인 네모를 두고 돌고 돌아서 내 귀에 어쩌다 들려온 말이었다.
내가 경험한 네모는 솔직하고 또래 아이처럼 다소 투박하게 표현할 뿐 문제 있는 아이가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그 아이의 엄마가 예민하다고 느꼈다.
결국 나도 똑같이 우리 아이에게
"그 친구랑은 말할 때 조심해 아예 가까지 가지 마"라고 말하고 말았다.
그게 옳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예민한 엄마에게 사소한 일조차 만들기 싫었다.
알면서도 선을 긋고 돌아서는 나는 점점 비자발적에서 자발적 아웃사이더가 되어갔다.
그런데 아이는 다른 아이와 놀고 싶어 할 때 오는 딜레마. 정말 너무 답답했다.
어느 날, 아이와 친한 친구가 함께 다니는 운동학원에 유치원 동기였던 아이가 같은 시간대 수업으로 들어오게 됐다.
얼마 후, 그 아이의 부모에게서 연락이 왔다.
“우리 아이가 차에서 내릴 때 표정이 안 좋고 인사도 안 해서 물어보니, 애들이 자기 사이에 두고 앉아 놀렸다고 하더라고요.”
나는 일단 상황을 확인해 보겠다고 했고 만약 그랬다면 주의를 주겠다고 답했다.
아이와 다른 친구 엄마에게 확인해 보니 학원 선생님이 그 아이 이름을 잘못 불렀고 아이들이 역사 속 인물 이름을 부르며 웃었던 상황이었다.
그 아이 역시 웃었고 차량 안에 선생님도 함께 있었다.
그저 웃고 넘길만한 작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 엄마는 학원 선생님께 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불쾌감을 드러내며 연락을 했다.
같은 전화를 받은 친구의 엄마는 오히려 화를 냈다.
그 아이가 평소 게임에 지면 안경을 던지고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지만 그런 일로 한 번도 문제 삼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나는 우리 아이에게
“걔랑 너무 가까이 다니지 마”
라고 말하게 됐다.
남의 아이에게는 엄격해 잣대를 들이대며 자기 아이의 실수는 모르거나 감싸는 엄마들.
그들의 말과 시선은 엄마들 사이의 관계를 점점 피곤하게 만들었다.
또 우리 아이는 집중력이 부족하지만 그에 비해 결과가 괜찮았고 그게 또 다른 질투의 시선으로 다가올 때도 있었다.
말 많은 엄마들이 있는 자리에선 잘한다는 말도 안 반가웠고 어떤 말로 되돌아올지 늘 신경 쓰였다.
결국 말은 돌아 돌아 내 귀에까지 오기 마련이었다.
말엔 발이 달려 있으니까.
이런 일을 겪으며 난 비자발적 또 자발적 아웃사이더가 되었다.
아이들은 실수하고 배우고 용서한다.
하지만 어른들은 감정을 놓지 못했다.
아이들 일로 시작해 결국 어른의 감정싸움이었다.
그리고 싸움의 무대엔 아이들이 있었다.
아이의 작은 일에 너무 일희일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실수도 배우는 것이고 다툼과 용서도 성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