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ADHD 극복기 (11)
흔히들 나이를 먹으면 감수성이 풍부해진다고 한다. 나도 그런 케이스인 것 같은데 요즘따라 눈물이 앞을 가리는 날이 많아졌다. 바로 작은 것에도 크게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인데 오늘 오전이 그런 상황이었다. 미간 사이에 왕 여드름이 나서 슬퍼졌고, 병원을 갔다 나오는 길에 공차를 들렀다. 그리고 음료를 받아 든 순간 눈물이 나오더라. 컵 뚜껑에 "사랑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 - 인어공주"라는 문구가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음료를 섞는 내내 눈물이 뿌옇게 차오르기 시작했고 한 입 마시는 순간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아니, 이게 무슨 공차 광고인가? 싶을 수 있겠지만 요는 그게 아니라, 나는 작은 것에도 감동을 받는 그런 감수성 풍부한 Girl인 걸 알려주고 싶었다.
이렇게 작은 것에도 감동하는 소녀 감성을 갖게 된 지는 사실 좀 됐다. 정신건강의학과를 다니며 약을 먹은 뒤로는 작은 감동의 물결이 쓰나미가 되어 나를 덮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예를 들면, 기대하지 않았던 친구의 깜짝 생일 선물이라던지, 엄마의 도시락이라던지. 인류애가 사라진 요즘 나는 우울했지만 이렇게 소소하고 작은 것들에서 감동을 받고 감사하려고 노력한다.
브런치 스토리의 작가가 된 것도 감사하다. 작가 신청을 떨리는 마음에 했는데 진짜 되었을 때의 그 감동이란. 화요일 오전에 근무하다가 울 뻔했다. 너무 기뻐도 눈물이 나오기 마련. 앞으로 어떤 글을 올리지 하며 들뜬 마음을 잠재우려고 나름의 애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나 눈물이 잘 나오는지 이 정도면 눈물 연기 전문 배우도 도전할 수 있을 정도로 요즘 많이 운다. 약 때문인가? 아님 해이해진 나의 감수성 때문인가? 엄청나게 걱정하고 고민한다. 나의 예민한 감정이 또 소용돌이치고 있는 건지 살펴볼 시점이 되었다.
옛날에는 들뜨기 바빠서 정말 웃을 일이 많았다. 물론, 사람으로서 정말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웃을 일 없는 시대에 웃는 일이 많다는 건 축복받은 일이니까. 하지만 그 반대로 울음이 많다는 건? 다시 건강 걱정 레이더가 발동했다. 이 이유 없는 우울함이 병적인 것이라서 치료를 필요로 하는 건 나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래서 약 먹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어차피 중독될 일도 없고, 약에 의존하는 성향도 아니거니와 약은 전문가에 의해 처방되지 않았는가 하며 믿고 복용한다.
우울이란 사람을 갉아먹는다. 내면의 한 조각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갉아먹는다. 그래서 텅 비어버린 사람을 만든다. 한동안의 내가 그랬다. 우울하고, 작은 일에도 감동받기 참 어려웠다. 오히려 잘해주는 사람들을 의심하고, 시기하고 밀어내면서 나를 더 고립시켰다. 그러다 깨달았다. 아, 나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구나.
그래서 더 감사 일기 쓰기에 매진했던 것 같다. 우울해지지 않으려고. 나는 텅 비어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느끼려고 더 매달렸다. 그래서일까. 나는 점점 밝아졌고,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 시작했다. 아, 그 사람 좋은 사람. 친절한 사람. 인정 많은 사람. 재밌는 사람.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 느끼기 시작하면서 나는 차츰 나아졌고, 자신감이 생겼다. 나도 평범해질 수 있어! 하며.
ADHD를 겪는 이들 중에는 조용한 사람도 많다. 속이 시끄러워서 겉으로는 표현이 안 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내향적이거나 친구가 없어 걱정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어느 순간부터는 나아질 것이라고 나는 응원한다. 어떠한 큰 터닝 포인트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사회에 나를 잘 스며들게 연습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내가 나를 잃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나'를 잃어버리는 순간,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고 물 위에 떠내려 가는 텅 빈 비닐봉지가 되어버린다.
'나'를 잃는 순간, 모든 것은 질병의 탓만 되어버린다. 내가 조금만 더 평범했다면, 내가 조금만 더 조용했다면, 내가 조금만 더 적정선의 감정을 가졌었더라면 하고. 하지만 나는 이야기하고 싶다. ADHD라서 좀 더 특별하지 않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