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 Girl Syndrome

성인 ADHD 극복기 (7)

by 란지

직장을 다니는 것도 충동적으로 정했다. 잘 출근하던 알바 자리가 지루해져서였을까. 잡코리아, 사람인을 수시로 보다가 전공을 살려 보자! 하여 이력서를 난사했고, 연락이 와서 덜컥 면접을 봤다. 그 당시의 나는 프리터족이어서 시간도 많겠다, 여러 가지 취미를 즐기던 터였다. 많은 취미 중 하나는 유리 공예였다. 일주일에 한 번 하는 즐거운 취미였는데 직장을 다니게 될 테니 유리 공예에 들이는 시간이 줄어들까 봐 면접 보는 자리에서 첫 출근 날짜도 매우 늦게 잡았다. 무려 한 달을 미룬 첫 직장의 첫 출근이었다.

나에게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은 항상 힘이 든다. 사실 ADHD를 겪는다면 분명 느낄 것이다. 무엇이 더 중요한지 생각하기까지 너무나도 힘이 든다. 무슨 일을 하든간 하나의 일을 하려면 그 과정을 모두 생각하고 실행한다. 이게 무슨 소리야? 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목이 말라 물을 마시려고 부엌에 간다고 하면 나는

1. 일어난다.

2. 컵을 잡는다.

3. 냉장고 문을 열어 물을 꺼낸다.

4. 컵에 물을 따르고 냉장고에 다시 집어넣는다.

5. 물을 마신다.

6. 방으로 돌아온다.

의 과정을 모두 생각하고 실행한다. 그래서 그 과정이 귀찮아 미룬다. 목마름은 이미 잊혀진 감각이다. 왜냐, 더 귀찮은 '일어나기'가 있으니까.


귀차니즘은 나의 베스트 프렌드. 언제나 따라다닌다. 자다가 소변이 너무 마려워 잠에서 깬다. 그러면 보통 사람들은 일어나 화장실을 다녀온다. 그리고 평온하게 다시 잠을 청하는데 나의 경우 일어나기가 귀찮아서 소변을 참고 잔다. 배가 아파도 그냥 잔다. 계속 참으며 잔다. 어떨 땐 나 자신이 미련하다고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멀티가 잘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걸 하다가 저걸 하고 다시 돌아와 이걸 하고. 하지만 결국에 돌아보면 완성된 일이 하나도 없다. 그렇다. 끝맺음이 없다. 어릴 때부터 듣던 잔소리: '유종의 미'를 거둬라. 하지만 한 번도 유종의 미가 무엇인지 느껴본 바가 없다. 일 벌이는 것은 또 얼마나 좋아하는지.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저런 취미를 시작해 볼까 하고 상담 예약을 걸어 놓거나 재료를 주문한다. 그리고 취미를 시작했다가 한 두 달 안에 흐지부지 안 가게 되거나 안 하게 된다. 어디를 가는 것도 그렇다. 방문해야지 하고 예약을 하거나 입장료를 미리 지불한다. 그리고 가야 한다는 것 자체를 까먹거나 가는 것을 미루다가 취소한다.


미루기 대마왕은 나의 타이틀이다. 아니, 보통 사람들은 미루다가 미루다가 한다면서요? 저는 미루다가 미루다가 안 하는데요… 미루다가 그 일의 존재 자체를 잊어버리거나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아예 할 일 목록에서 제외시켜 버린다. 학창 시절부터 나는 미루는 것을 좋아해 공부도 미루다가 벼락치기로 울면서 하고, 대학교 와서는 과제를 미루다가 학점을 말아먹고, 직장인이 되어서는 미루다가 야근을 밥먹듯이 했다. 아, 나 왜 살지?


변명 아닌 변명을 해보자면 나는 무언가 하나를 하더라도 많은 힘이 든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힘들고, 밥을 먹는 것도 힘들고, 친구를 만나는 일도 힘들다. 그러다 보니 연차 거나 공휴일 같은 날에는 잠을 12~15시간 자고는 한다. 과수면을 즐긴다. 약을 건너뛰게 되는 날이면 더 하다. 누가 깨우지 않는 한 나는 계속이고 잠을 잘 수 있다. 그냥 일어나는 게 귀찮은 거다. 밥도 안 먹고 잔다. 하루 종일 24시간 내내.


세상엔 다 나와 같은 패턴의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거라고 생각했지만 살아오는 동안 내 주변의 사람들은 나와 같지 않았다. 그들은 건강하다. 그리고 정신이 멀쩡하다. 걱정이 많지 않고 우울해하지 않는다. 그래서 부럽다.


하지만 웃기게도 한편으로는 나 자신은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은 나만큼 생각이 많지 않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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