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현자 언니와 훈이 오빠

아줌마의 딸과 아들

by Mia Kim

아줌마는 하루에도 수 차례 우리 집을 들락거렸지만, 화요일과 수요일 밤 8시는 더 특별했다. 주간 행사처럼 무슨 반상회도 아니고 그 시간은 우리 외할머니까지 가세해서 모였다. 화요일은 드라마 '전원일기'를 하는 날이었고, 수요일은 '경찰청 사람들'을 하는 날이었다. 이걸 왜 이렇게 모여서까지 봐야 하는지 누가 만든 규칙인지 알 수도 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모여서 마시고 먹고 같이 티브이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끔은 지나가던 옆집 가족들도 우리 집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들어와서 같이 술 한 잔을 기울이고 갔다. 나는 거의 매일 심통이 나있었고 성질을 부렸다. 엄마와 외할머니는 무슨 초등학교 5학년짜리가 고시 공부라도 하는 거냐며 나만 보면 공부 좀 그만 하라고 했다. 언니와 동생은 사이에 껴서 잘만 노는데 왜 유독 가운데 낀 너만 까탈이냐며 핀잔했다.



차라리 내가 아줌마 집으로 가는 게 나았다. 아줌마 집 마루에 걸터앉아 한옥 기둥 끝에 달린 등불에 비추어 책도 읽고 공부도 하고 워크맨에 이어폰을 꽂아 드라마도 들었다. 어쩌다 등불로 달려드는 박쥐만 한 나방이 펄럭이고 날아다니면 나는 '꺅' 소리를 질렀고, 그럼 훈이 오빠가 방에서 쿵쿵 나와 에프킬라로 시원하게 죽여줬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박쥐만 한 나방이 죽어가는 걸 훈이 오빠 뒤에 숨어서 지켜봤다. 마치 건전지가 다 된 장난감의 마지막 진동 같은 여린 날갯짓이 징그러우면서도 자꾸 보게 됐다.



서서히 줄어들어 꺼져 가는 촛불처럼

날개짓이 서서히 느려지는 나방을 보며

사람도 저렇게 서서히 쇠약하며 죽어가겠지 라고 생각했다.



훈이 오빠는 아줌마의 아들인데 어릴 때 사고로 다리를 절었다. 바지를 항상 저 아래까지 내려 입어서 훌러덩 벗겨지면 어쩌나 불안했다. 훈이 오빠는 말이 거의 없었고 아저씨가 일하시는 부대에서 같이 일을 하고 있었다. 훈이 오빠는 내가 아줌마 집에 갈 때마다 신기한 미국 과자를 줬다. 나는 훈이 오빠의 무심한 애정이 좋고 편안했다. 미국 과자가 있으면 아줌마가 진작에 나한테 줬을 텐데, 훈이 오빠는 그걸 꼭 오빠의 서랍에서 꺼내 왔다. 오빠는 내가 내 친구들과 오빠 방을 들락거려도 싫은 내색 한 번을 안 했다.



왜 내 방에는 에어컨을 안 달아주냐고 시위를 했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는 '가정환경 조사서' 같은 걸 적어서 냈는데 거기에는 부모님의 직업, 직급, 월급, 집에 있는 가전제품까지 조사를 했었다. 우리 반에 에어컨이 있는 집은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에어컨이 있는 거실에서 상을 펼쳐놓고 방학 '탐구생활' 숙제를 하는 시간이 제일 좋았다. 엄마가 가끔 만들어 줬던 대형 카스텔라 크기만 한 '컬러 학습 대백과 사전'을 펼쳐 놓고 알록달록 색색 볼펜으로 예쁜 글씨를 꾸며가며 실험 결과 같은 걸 쓰는 걸 가장 좋아했다. 나에겐 그게 힐링 시간이었다. 아줌마 부부와 우리 엄마, 아빠, 가끔은 작은 외숙모까지 거실을 차지하고 있으니 방학 숙제를 하려면 내가 도망가야 했다.



그럴 땐 현자 언니 방으로 갔다. 현자 언니는 아줌마의 큰 딸인데 아줌마와 똑같았다. 아줌마처럼 목소리가 크고 호쾌하게 웃었고, 아줌마처럼 덩치도 크고 아줌마처럼 따뜻했다. 언니는 아가씨였다. 내가 언니 방에 가면 언니는 내 얼굴에 예쁘게 화장을 해주었다. 그때는 야유회나 가족 나들이가 아니면 사진을 찍을 일이 없었다. 언니는 아줌마와 똑같이 말했다. "아이고. 우리 지은이, 와 이래 예뿌노? 사진 찍어놓고 싶네. 나중에 크면 남자들이 졸졸 따라다니겠다!" 마지막 문장만은 달랐다. 아줌마는 그런 말 하면 팔자가 사나워진다고 언니한테 입방정 떨지 말라며 혼을 냈다.



아줌마 집 냉장고에는 늘 아줌마 표 단술이 있었다. 그게 어찌나 맛있던지 친구들과 고무줄놀이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고 나면 냉큼 아줌마 집으로 달려갔다. 나는 신발도 안 벗고 아줌마 집 마루에 엎드려, 두 발을 들고 포복하며 냉장고 문까지 기어갔다. 그럼 훈이 오빠가 말없이 방에서 나와 식혜를 컵에 따라서 바닥을 기고 있는 내 코 앞 바닥에 툭 놓고 들어갔다. "흔들어야지!" 내가 몇 번을 말했는데도 훈이 오빠는 매번 병을 흔들지 않고 식혜를 따랐다. 그럼 훈이 오빠는 시익 웃으면서 다시 나와 식혜 병을 슬슬 흔들어 또 따라 줬다.



어떤 날은 내가 훈이 오빠 방에 들어가서 서랍을 열고 미국 과자들을 내 치마에 잔뜩 담아 보자기로 싸듯 들고 나와서 아줌마 집 마당의 평상에서 친구들과 같이 나눠 먹었다. 가끔은 내가 아줌마 같을 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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