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흰둥이에게 누렁이라고 해야 한다
우리 누렁이는 다음 생에 사람으로 태어 날 거다
나는 차라리 겨울이 나았다. 여름은 온 동네가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사니까 아줌마 부부가 우리 집에 와있는 날은 지나가던 온 동네 사람들도 우리 집으로 들어왔다. 겨울은 내 공간이 독립적이었고 그래서 안정감이 들었다.
5학년 겨울 방학이었다. 이쪽 남부 지방에 이례적으로 펑펑 함박눈이 내렸다. 설날에 전주의 할아버지 댁에나 가야 눈 구경을 할 수 있었다. 우리는 태어나 처음으로 우리 집에서 함박눈을 보았다. 언니와 동생은 진작에 마당으로 뛰쳐나가 눈을 먹고 던지며 방방 뛰었다. 둘이서 맨 손으로 눈사람을 만들겠다고 설치는 걸 2층 내 방에서 내려다 보고는 한심해서 혀를 찼다.
아줌마 집 누렁이도 신이 나서 아줌마 집 창고의 계단을 몇 번이나 미친 듯이 뛰어오르고 뛰어내렸다. 나는 개 눈에도 눈이 보이는 게 신기해서 한참 동안 누렁이를 관찰했다. 아니 저렇게 헐떡거릴 만큼 힘들면서 도대체 왜 저렇게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바보 누렁이.
아줌마 집 개는 무려 새하얀 흰색이었는데 이름이 '누렁이'였다. 이건 이 개의 정체성을 너무나 무시한 처사가 아니냐며, 아저씨가 술 취해서 장난으로 지은 줄 알았던 이름을 따진 적이 있었다. 아저씨는,
"지은아. 요요, 우리 누렁이 한 번 자세히 볼래?
야가 귓속까지 하~~~얗다. 니 이게 무슨 말인고 아나?
우리 누렁이처럼 개가 온몸이 하얗다는 거는 다음 생에는 사람으로 태어난다는 뜻이다. 근데 이기 또 하늘이 알면 시샘을 한다꼬. 그래서 야가 흰 개라는 걸 동네 사람들도 모르게 해야 한다 이 말이다. 그래서 절대로 니 야아한테 '흰둥이'라꼬 부르지 마래이!
원래 '오늘은 안 바빠서 참 좋네?'이래 말해뿌면 안 바쁠 일도 갑자기 바빠지그든? 입이 방정이라꼬, 입이 보살이어야 우리 누렁이, 다음 생에 사람으로 태어난데이. 긍께 니도 나쁜 말을 하면 안돼! 그기 다 니 복이 된다! 알았제?"
흰 양말에 모래 한 톨이라도 묻을까 봐 운동장을 빙빙 돌아서 돌길로만 걸었고, 옷에 물 한 방울이라도 튀면 당장 갈아입어야 했던 까칠하고 예민했던 나를 아줌마네 식구들만 예뻐했다. 엄마가 대노한 날은 어김없이 아줌마가 출동해서 내 손을 잡아끌고 아줌마 뒤에 숨겨놓으며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하이고! 숙희야! 사람이 허허거리기만 하는 기 좋은 긴 줄 아나?! 지은이처럼 따지고 성깔 있고 정확하고 욕심이 있어야 사람이 뭐가 돼도 되는 기지! 야 까탈시럽다고 뭐라 하지 마라! 나는 보는 것도 아깝구만. 내 딸 하자! 지은아, 느그 엄마 오늘 안되겠다! 가자! 현자 언니 방에서 자그로."